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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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니콜라 아모루소 Nicola Amoruso | |
출생 | 1974년 8월 29일 ([age(1974-08-29)]세) | |
이탈리아 풀리아 주 체리뇰라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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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6cm|체중 미상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트리니타폴리 (?~1991 / 유스) UC 삼프도리아 (1991~1993 / 유스) UC 삼프도리아 (1993~1994) AS 피델리스 안드리아 (1994~1995) 칼초 파도바 (1995~1996) 유벤투스 FC (1996~2002) → 페루자 칼초 (1999~2000 / 임대) SSC 나폴리 (2000~2001) 페루자 칼초 (2002) 코모 칼초 (2003) 모데나 FC (2003~2004) ACR 메시나 (2004~2005) 레지나 칼초 (2005~2008) 토리노 FC (2008~2009) → AC 시에나 (2009 / 임대) 파르마 FC (2009~2010) 아탈란타 BC (2010~2011) |
국가대표 | 없음 |
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뛰어난 기술력과 날카로운 골 결정력으로 유명했다. 피에데 칼도(Piede Caldo, 뜨거운 발)와 디나미테(Dynamite)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세리에 A에서 총 13개 구단에서 뛰었으며, 그 중 12개 구단에서 득점을 기록한 특별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 축구 사상 최다 기록이며, 12개 구단 득점 기록은 마르코 보리엘로와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A대표팀에 한 번도 선발되지 않고도 세리에 A에서 113골을 기록한 이탈리아 선수 중 최다 득점자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체리뇰라 출신인 아모루소는 트리니타폴리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삼프도리아 유스팀을 거쳐 1993년 12월 12일 인테르 밀라노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를 했다. 첫 시즌 8경기 출전 3골을 기록하며 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했다.출전 기회를 늘리기 위해 1994년 세리에 B의 피델리스 안드리아로 이적했다. 여기서 34경기 15골의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1995-96시즌에는 파도바로 이적해 세리에 A에 복귀했다. 33경기 14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1996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유벤투스는 70억 리라에 아모루소를 영입했다. 유벤투스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절을 보냈으며, 1996-97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4골을 기록하며 팀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아모루소는 아약스와의 준결승 1·2차전에서 모두 득점했지만, 결승전에서는 교체 출전에 그쳤고 팀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1-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같은 해 1996 UEFA 슈퍼컵, 1996 인터컨티넨탈컵, 1996-97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에는 1997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와 1997-98 세리에 A 타이틀을 추가로 획득했다. 1997-98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모나코전에서 득점했지만, 결승전에서 또 다시 벤치에 머물렀고 팀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0-1로 패하며 아모루소는 2연속 준우승을 경험하였다.
1999-2000 시즌을 앞둔 아모루소는 페루자로 임대되어 25경기 11골을 기록했고, 2000-01 시즌에는 나폴리에서 30경기 10골을 기록했다. 2001-02 시즌 유벤투스로 복귀해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에서는 9경기만 출전했지만 코파 이탈리아에서 7경기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2005년 레지나로 이적한 아모루소는 3시즌 동안 96경기 40골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 2006-07 시즌에는 롤란도 비안키와 함께 환상적인 공격 듀오를 이루며 두 선수가 합쳐 35골[1]을 기록했다.
2008년 5월 4일 카타니아전에서 2골을 넣으며 세리에 A 통산 100골을 달성했다. 이는 9개 서로 다른 팀에서 득점하여 달성한 최초의 기록이었으며, A대표팀 경험이 없는 이탈리아 선수 중 최다 득점 기록이기도 했다.
2008년 토리노로 이적했지만 2009년 1월 시에나로 임대되었다. 이후 파르마, 아탈란타를 거쳤다. 아탈란타에서 유벤투스전에서 득점하며 세리에 A에서 12번째 서로 다른 팀 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1년 8월 29일, 37세 생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4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1996 UEFA 유럽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꺾었다. 또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도 예비 명단에 포함되었다.A대표팀에는 한 번도 선발되지 못했지만, 이는 당시 이탈리아 공격진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아모루소는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민첩한 중앙 공격수였다. 섬세한 볼 터치와 페인트 동작에 능했으며, 주로 중앙에서 플레이했다. 골에 대한 뛰어난 후각과 결정력으로 피에데 칼도(뜨거운 발)와 디나미테라는 별명을 얻었다.4. 은퇴 후
2011년 9월 15일 레지나의 유스팀 코디네이터로 임명되었다. 2012년 11월 코베르치아노에서 스포츠 디렉터 자격을 취득했다. 2013년 5월 팔레르모의 스포츠 디렉터로 임명되었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2013년 8월 계약을 해지했다.5. 개인사
아모루소는 세 명의 형제와 한 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형제 중 두 명도 축구 선수 경력을 시도했다. 2006년 결혼했으며, 2002년생 딸 줄리아와 2006년생 딸 마리아 루도비카를 두고 있다.[1] 아모루소 17골, 비안키 18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