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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정도후(定陶侯) 鹿悆 | 녹여 | |
| 시호 | 없음 |
| 작호 | 정도현개국자(定陶縣開國子) → 정도현후(定陶縣侯) |
| 성 | 녹(鹿) |
| 휘 | 여(悆) |
| 자 | 영길(永吉) |
| 생몰 | 불명 |
| 부친 | 녹생(鹿生) |
| 본관 | 제음군(濟陰郡) 승지현(乘氏縣) |
| 국적 | 북위 → 동위 |
1. 개요
북위의 인물. 회양태수(淮陽太守) 녹생(鹿生)의 아들.2. 생애
녹여는 병법, 음양, 불교의 학문을 좋아하였고, 태사 · 팽성왕 원협이 그를 불러 관객(館客)으로 삼았다. 일찍이 녹여가 원협의 부름에 응하여 서주(徐州)에 가려 할 때 말이 전염병에 걸리자, 하는 수 없이 배를 타고 이동해 대량(大梁)에 이르렀다.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시종이 언덕으로 올라가 볏단 네 묶음을 훔쳐와 그 말에게 먹였다. 배가 수 리를 갔을 때 녹여가 깨어나 벼를 얻은 곳을 물었고, 시종이 사실대로 고하니 녹여가 크게 화를 내며 곧바로 배를 멈추고 언덕으로 올라가 벼를 취했던 곳에 이르러 합사 비단 석 장(丈)을 볏단 아래에 두고 돌아왔다.얼마 뒤, 녹여는 진정공 원자직의 국중위(國中尉)가 되었는데, 항상 충성과 청렴의 절개로써 그를 열심히 섬겼다. 또, 일찍이 오언시(五言詩)를 지어 말하였다.
嶧山萬丈樹,(역산의 만 장 나무를,)
雕鏤作琵琶。(새기고 다듬어 비파를 만드네.)
由此材高遠,(이로써 재목이 높고 원대하니,)
弦響藹中華。(거문고 소리 중화에 널리 퍼지네.)
또 말하였다.雕鏤作琵琶。(새기고 다듬어 비파를 만드네.)
由此材高遠,(이로써 재목이 높고 원대하니,)
弦響藹中華。(거문고 소리 중화에 널리 퍼지네.)
援琴起何調?(거문고를 잡아 어떤 가락을 일으키는가?)
《幽蘭》與《白雪》。(유란과 백설이라네.)
絲管韻未成,(사관의 가락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이니,)
莫使弦響絕。(거문고 소리 끊어지게 하지 말라.)
원자직은 젊었을 때에는 명성이 있었는데, 녹여는 그가 끝까지 잘하기를 바랐으므로 풍자하여 깨우쳐 준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관직을 떠났다가 상기를 마친 후 다시 복직하여 맡은 일을 다하였다. 이후 원자직이 양주(梁州)를 진수하러 나가자, 녹여가 그를 따라 그 주로 갔다. 당시 양주에는 군량을 사들이는 화적(和糴)이 있었는데, 화적을 담당하는 자치고 집안을 윤택하게 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녹여 홀로 쌀을 빼돌리지 않았고, 원자직까지 이를 강하게 권하였으나 끝내 명을 따르지 않았다.《幽蘭》與《白雪》。(유란과 백설이라네.)
絲管韻未成,(사관의 가락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이니,)
莫使弦響絕。(거문고 소리 끊어지게 하지 말라.)
무성공 원자유가 어사중위가 되었을 때, 녹여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겸하며 임회왕 원욱의 군대를 감독하였다. 당시 양나라의 무제 소연이 그의 예장왕 소종(蕭綜)을 보내 서주(徐州)를 점거하게 하였는데, 소종이 몰래 서신을 원욱에게 보내어 귀순하겠다는 뜻을 전하였다. 소종은 당시 무제의 사랑받는 아들이었으므로, 여러 사람들은 모두 그가 거짓으로 항복하는 것이라 하였으나, 원욱은 그 허실을 확인하기 위해 소종의 진영 안으로 들어갈 사람을 모집하였다. 녹여가 마침내 가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만약 소종(蕭綜)에게 성심이 있다면 더불어 맹약할 것이요, 만약 그것이 속임수라면 어찌 한 사람의 목숨을 아끼겠습니까!"
이때는 서주가 막 함락되어 변방이 소란스러웠고, 소종의 부장인 성경준(成景俊)과 호룡아(胡龍牙)가 함께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안팎을 엄히 지키고 있었다. 녹여가 마침내 말을 한 필만 타고 몰래 나가 곧장 팽성(彭城)으로 향하였는데, 미처 도착하기 전에 소종의 군주(軍主) 정병윤(程兵潤)에게 저지당하였다. 그가 온 연유를 묻자, 녹여가 대답하였다."군대가 교전 중이라도 사신은 오가는 법이니, 이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나는 임회왕(臨淮王)의 사신으로 온 것으로 거래를 제안할 일이 있다."
정병윤이 마침내 먼저 사람을 보내 호룡아 등에게 알렸는데, 소종은 이미 항복할 마음이 진실로 있었으므로, 녹여가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고 성경준 등에게 말하였다.내가 매번 원략(元略)이 성을 들어 배반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장차 그 허실을 시험해 보려 하였소. 그리하여 좌우의 사람을 보내 원략의 사신인 척 위(魏)나라 군대 속에 들어가 저들 중 한 사람을 불러오게 하였는데, 그 사신이 과연 도착하였소. 사람을 시켜 원략으로 속여 깊숙한 방에 있게 하고, 거짓으로 병든 형상을 하게 하여 문밖에서 사신을 부르게 한다면 저들이 꾸미는 계획을 전해 들을 수 있소."
당시 원략은 막 무제에 의해 양나라 수도로 소환된 뒤였다. 소종은 또한 심복인 양화(梁話)를 보내 녹여를 맞이하게 하고 은밀하게 자신의 뜻과 지금 상황을 일러주어 대답을 잘하게 한 뒤, 녹여를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 호룡아의 처소에 이르게 하였다.날이 이미 저물었는데, 호룡아가 의장대를 벌여 세우고, 횃불을 들어 녹여를 인도하며 말하기를
"원중산(元中山)[1]이 무척 서로 만나보고자 하여, 그러므로 경(卿)을 부르게 하였소."
라고 하였다. 이어서 말하기를"안풍왕(安豐王)과 임회왕(臨淮王)이 적은 장수와 약한 병사를 거느리고 이 성을 수복하려 꾀하나,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소!"
라고 하자, 녹여가 말하였다."팽성(彭城)은 위나라의 동쪽 변방이라 형세상 반드시 다투어야 할 곳으로, 얻고 못 얻음은 하늘에 달린 것이지 사람이 헤아릴 바가 아니오."
이에 호룡아가 말하였다."마땅히 경의 말과 같을 것이오."
이윽고 그들은 성경준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호룡아는 녹여를 바깥문에 멈추게 하고 한참 동안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밤이 이미 깊었는데 별과 달이 매우 밝았다. 소종의 군주(軍主) 강도(姜桃)가 와서 녹여와 더불어 말하기를"그대는 이미 나이가 많음에도 또한 이번 사신을 맡았으니, 참으로 통달한 바가 있으리라. 원법승(元法僧)은 위나라에서는 보잘것없는 자제였으나, 이번에 성을 들어 양나라에 귀순하였으니, 양나라의 주군께서는 사람을 대함에 도(道)가 있는 모양이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위를 가리키며 말하기를라고 하였다. 녹여가 대답하여 말하기를"그대는 오직 그 하나만 알고 그 둘은 알지 못하오. 원법승은 거복(莒僕)과 같은 무리이건만 양나라에서 그를 받아들였으니, 계손(季孫)에게 부끄러움이 있지 않겠소?[2] 지금 달은 순수(鶉首)에 세워져 있고, 투우(鬥牛)는 파괴를 당하고 있으며, 세성(歲星)은 목(木)인데 거슬러 이기고 있소. 오(吳) 땅에 세워진 그대 나라는 패망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이오. 또한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을 식견이 있는 자라면 하지 않소."
라고 하였다.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녹여는 이끌려 들어가 성경준을 만났는데, 성경준이 말하였다."비록 원중산(元中山)의 부름을 받았다고는 하나, 두려워하지 않고 온 것은 어찌 된 일이오?"
이에 녹여가 대답하였다."옛날 초(楚)나라가 오(吳)나라를 칠 때, 오나라에서 궐유(蹶由)를 보내 군대를 위로하게 하였으니, 지금의 내가 이곳에 온 것도 대략 그때와 같소."
또 말하기를"여러 해 동안 벼슬하며 돌아다녀 경과 이전에 서로 만난 적이 있소."
라고 하며 이어 그 연유를 서술하니 성경준이 곧 기억하였다. 이에 녹여를 이끌어 함께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경은 자객이 아니오?"
녹여가 대답하였다."지금은 사신이 되어 본조(本朝)에 명을 전하려 함이니, 찌르는 일은 나중에 다시 도모하여 점쳐 보겠소."
이윽고 성경준이 그를 위해 밥과 여러 과일을 차려 주니, 녹여가 억지로 술을 마시고 많이 먹으며 적군 몇 사람을 향해 약간 스스로 뽐내었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장사(壯士)로다!"라고 하였다.얼마 뒤, 마침내 성경준은 녹여를 원략의 처소로 인도하였는데, 한 사람이 집 안으로 그를 인도하여 평상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따로 방 안에 있다가 나와서 녹여에게 말하기를
"중산왕께서 알려주신 바가 있어 그대에게 전하겠소."
하니, 녹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사람이 녹여에게 말하기를"그대는 다만 앉으시오."
라 하자, 녹여가 말하였다."나라의 왕자(王子)이신데 어찌 앉아서 교명(教命)을 듣겠소?"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그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오. 내가 예전에 남쪽으로 왔기에 잠시 사람을 보내 부르게 하여 고향의 일을 듣고자 하였으나, 늦게나마 병환이 도져 차마 만나 뵙지 못하게 되었소."
녹여가 말하였다."잠시 소식을 받들고 위험을 무릅쓰며 공경히 나아왔으나, 뵙지 못하게 되니 마음속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작별을 고하고 물러났다.잠시 후 날이 밝자, 소종의 군주(軍主) 범욱(範勖)과 성경준, 사마(司馬) 양표(楊㬓) 등이 다투어 북조(北朝)의 군사와 말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녹여가 말하였다.
"진(秦)과 농(隴)이 이미 평정되어 세 방향이 고요하고 평안하니, 이제 고차(高車), 백안(白眼), 강(羌), 촉(蜀)의 군사 50만 명이 있습니다. 제왕(齊王), 이 진류(李陳留), 최연백(崔延伯), 이숙인(李叔仁) 등이 세 길로 나뉘어 곧장 강서(江西)로 향하고 있으며, 안락왕(安樂王) 원감(元鑒)과 이신(李神)은 기주(冀州), 상주(相州), 제주(齊州), 제주(濟州), 청주(青州), 광주(光州)의 우림(羽林) 10만 명을 거느리고 곧바로 낭야(瑯邪)를 향해 남쪽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말하기를"어찌 화려하게 꾸민 말이 아니겠는가?"
라 하니, 녹여가 말하였다."내일 아침이면 증명될 것이니, 어찌 꾸밈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해가 늦어지자 녹여를 위나라 진영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때 성경준이 녹여를 배웅하며 희마대(戲馬臺)에 올라 북쪽으로 성루를 바라보며 말하였다."이 성의 견고함이 어떠한가? 진실로 저 군사들이 도모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경은 두 왕에게 말하여 군대를 돌리고 계획을 바꾸게 하시오."
녹여가 말하였다."쇠로 만든 성벽과 끓는 못이 있으면 공성 병기와 갑옷은 더욱 정교해지는 법이며, 수비함에 있어 귀한 것은 사람이니 어찌 지형의 험난함을 논하겠습니까!"
이후 군대로 돌아오는 길에 양화와 더불어 몰래 맹약하였다. 이리하여 약속이 굳어지니 과연 열흘이 못 되어 소종이 팽성을 들어 위나라로 귀순하였다.조서가 내려져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근래에 원법승 부자가 천성적으로 완고하여 악행을 키우기를 그치지 않고, 성을 훔쳐 밖으로 배반하니 이것이 혼란의 발단이 되었고, 마침내 팽성(彭城)과 송(宋)의 이름난 번진이 도리어 적의 소유가 되게 하였다. 비록 종실의 신하와 이름난 장수들이 사수(泗水)가에서 창을 휘두르고, 용맹한 무사와 병사들이 변수(汴水)가에서 칼을 높이 들었으나, 높은 성벽과 험준한 성가퀴는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넓은 물가와 깊은 해자는 참으로 건너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해가 기울도록 식사를 잊고 한밤중에 분하고 원통해 하였던 것이다. 한데 소연(蕭衍)의 도독이자 예장왕(豫章王)인 소종(蕭綜)이 천운을 체득하고 기미를 알아 도(道)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자 하여, 몰래 증표를 보내어 도독 · 임회왕(臨淮王)에게 진심을 바쳐왔다. 그때의 상황은 야간에 빛을 보듯이 의심스러워 어찌 칼자루를 쥐고 경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 감군(監軍) 녹여(鹿悆)는 호랑이의 아가리와 같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험지를 평지처럼 여기며 바로 자원하여 들어가 허실(虛實)을 파악하였다. 맹약이 이미 굳어지니 도모하던 바가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땅을 돌려받고 성을 회복하여 우리 군대를 쉬게 한 것은 또한 녹여의 힘이로다. 만약 영예로운 녹봉으로써 보답하지 않는다면 장래의 사람들을 어찌 권면하고 격려하겠는가? 고로 그를 정도현개국자(定陶縣開國子)에 봉하고 식읍(食邑) 300호를 내리노라."
또한 녹여는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에 제수되었다. 얼마 뒤 지방으로 나가 청주(青州)에서 팽성왕 원소의 장겸사마(長兼司馬)가 되었고, 이윽고 장겸에서 해제되면서 정식으로 임명되었다.효창 3년(527년) 3월, 광천(廣川) 사람 유균(劉鈞)과 동청하(東清河) 사람 방수(房須)가 반란을 일으키니, 원소가 녹여를 보내 주군(州軍)을 감독하여 그들을 토벌하게 하였으며, 녹여는 상산(商山)에서 반란군과 싸워 여러 차례 승전을 거두었다. 장수들은 모두 원소의 측근들이었는데, 멋대로 수급을 늘려 망령되이 상으로 줄 비단을 청하니, 녹여가 그들의 면전에서 고집하며 주지 않았으나, 원소는 따르지 않고 상을 주었다. 녹여가 발끈하여 낯빛을 바꾸며 말하기를
"뜻을 다하여 말을 세우는 것은 왕을 위하고 나라를 위함이지, 어찌 녹여 개인의 집안일이겠습니까!"
라고 하며 하직 인사도 하지 않고 나가니, 원소가 뒤쫓아와 사과하였다. 이후로 공훈을 조작하려 한 자들이 말을 함부로 퍼뜨리고 수군거리며 그를 사사로이 해치고자 하였으나, 녹여는 이를 듣고 웃어넘기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이보다 앞서 양나라의 무제가 장수 팽군(彭群), 왕변(王辯)을 보내 무리 70,000명을 거느리고 낭야(瑯邪)를 에워싸고 압박하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조정의 구원군이 도착하지 않았고, 두 청주(靑州)의 군사와 말은 겨우 10,000여 명뿐이었으며, 군대가 운성(鄖城)에 머문 채 오래도록 나아가지 못했다. 원소가 이에 녹여를 보내고, 남청주자사(南青州刺史) 호평(胡平)은 장사 유인지(劉仁之)를 보내 함께 여러 장수를 감독하고 통솔하게 하니, 그들은 곧장 적의 보루로 달려가 적들을 크게 깨뜨리고 적장 팽군의 머리를 베었으며, 사로잡아서 베어낸 귀가 2,000여 개였다. 효명제가 이를 가상히 여겨 새서(璽書)를 내려 위로하였다.
효장제가 즉위하였을 때, 녹여는 조정으로 들어와 좌장군(左將軍) ·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郎)이 되었고, 또한 예전에 녹여가 서주(徐州)에서 세운 공로에 대한 포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여 식읍 200호를 더하고 작위를 높여 후(侯)로 삼았다. 그는 비록 직책은 높고 현달한 위치에 있었으나, 뜻은 겸양함에 두어 친척과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함이 예전보다 더하였으며, 스스로는 집이 없어 항상 세를 들어 살았고, 베옷에 거친 음식을 먹으며 추위와 더위에도 변함이 없었다. 효장제가 그 청렴하고 소박함을 가상히 여겨 때때로 다시 돈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영안 3년(530년) 정월, 동서주(東徐州)의 성민(城民) 여문흔(呂文欣)이 동서주자사 원대빈(元大賓)을 죽이고, 남쪽으로 양나라의 군사를 끌어들여 곡술(曲術)에 목책을 세우고 주둔하니, 효장제는 조서를 내려 녹여를 사지절(使持節) · 산기상시(散騎常侍) · 안동장군(安東將軍)로 삼고, 6주대사(六州大使)를 겸하게 하여 여문흔을 토벌하게 하였다.
영안 3년(530년) 2월, 녹여는 행대 번자곡(樊子鵠)과 더불어 여문흔의 무리를 토벌하여 깨뜨렸다. 그러나 그 잔당이 아직 강성하므로 현상금을 걸어 여문흔을 잡게 하니, 여문흔과 함께 반역했던 한단정(韓端正)이 여문흔의 머리를 베어 보내왔으며, 주모자로 여겨져 함께 죽은 자는 12명이었다. 효장제는 조서를 내려 기리고 위로하였으며, 녹여는 돌아와 진동장군(鎮東將軍) ·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제수되었다.
얼마 뒤, 효장제는 조서를 내려 녹여를 사지절 · 겸상서좌복야(兼尚書左僕射) · 동남도삼서행대(東南道三徐行臺)로 삼았다. 녹여가 동군(東郡)에 이르렀을 때, 마침 이주중원이 서연주(西兗州)을 함락하고 활대(滑臺)로 향하므로, 다시 조서가 내려져 도독 하발승(賀拔勝) 등과 더불어 이주중원을 막게 하였으나 군대가 패하여 낙양으로 돌아왔다.
보태 연간(531년 ~ 532년)에 녹여에게 정동장군(征東將軍)이 더해졌고, 위장군(衞將軍) · 우광록대부(右光祿大夫) · 겸탁지상서(度支尚書) · 하북오주화적대사(河北五州和糴大使)로 옮겨졌다. 이후 동위가 세워지자, 녹여는 양주자사(梁州刺史)에 제수되었다.
천평 4년(537년) 10월, 형양(滎陽) 사람 정영업(鄭榮業) 등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주성(州城)을 에워싸고 압박하였다. 녹여가 굳게 지키지 못하고 마침내 성을 들어 항복하니, 정영업은 녹여를 서위로 보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