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원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김세환(1889)#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김세환(1889)#|]]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김세환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 |
| 출생 | 불명 | 
| 사망 | 1923년 2월 18일 (향년 불명) | 
| 평안북도 중강진 |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서훈 |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 | 
3. 리원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 |
| 출생 | 1916년 9월 12일 | 
|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용산리 | |
| 사망 | 1977년 11월 5일 (향년 61세) | 
| 서울특별시 |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서훈 | 2006년 건국포장 | 
석방 후 다시 모임을 갖고, 재차 독립운동의 전개를 결의하고, 군사교련 반대 등을 협의하였다. 6월경,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일단 모임을 해체하고 비밀리에 개인 중심의 연락을 통해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김세환은 전체 책임자의 임무를 맡아 조직의 기초를 다졌다. 1935년 2월경, 비밀결사 전교오르그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교 오르그부, 학급오르그부 등을 두고 교장의 생도처벌 반대, 수업료 인하를 요구, 수업료 체납자 정학 반대, 교련(敎鍊) 절대반대 등을 선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7년 11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김세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4. 청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 |
|   | |
| 출생 | 1884년 6월 6일 | 
| 충청도 정산군 읍면 백곡리 | |
| 사망 | 1955년 7월 14일 (향년 71세) | 
| 충청남도 청양군 |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서훈 | 2004년 대통령표창 | 
이후 체포된 김세환은 1919년 4월 22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청양헌병분견소에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그 후 청양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7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김세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