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30 06:05:59

김세환(독립운동가)

1. 수원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2.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김세환3. 리원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4. 청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

1. 수원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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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김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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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불명
사망 1923년 2월 18일 (향년 불명)
평안북도 중강진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서훈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
1923년 2월 18일 평북 중강진(中江津)에서 군정서(軍政署) 소대장으로서 십 수명의 병사들과 함께 일제 경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김세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3. 리원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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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6년 9월 12일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용산리
사망 1977년 11월 5일 (향년 61세)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서훈 2006년 건국포장
1916년 9월 12일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1933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비밀결사 중앙반제동맹(中央反帝同盟)을 조직한 그는 1933년 11월경에 동맹휴교를 주도하였으며, 1934년 3월 중순경에는 독립운동의 실천방안으로 첫째, 실천운동으로서 동지를 규합하고 사회주의를 선전할 것, 둘째, 자신은 유형과 함께 외부와 연락을 담당함, 셋째, 2주 1회 토요일에 회합할 것 등을 제시하였다. 그 후 동료들과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운동 방략 및 진행 상황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을 하였다. 이로 인해 경기도 경찰부에 체포되었으나 3일 만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 다시 모임을 갖고, 재차 독립운동의 전개를 결의하고, 군사교련 반대 등을 협의하였다. 6월경,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일단 모임을 해체하고 비밀리에 개인 중심의 연락을 통해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김세환은 전체 책임자의 임무를 맡아 조직의 기초를 다졌다. 1935년 2월경, 비밀결사 전교오르그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교 오르그부, 학급오르그부 등을 두고 교장의 생도처벌 반대, 수업료 인하를 요구, 수업료 체납자 정학 반대, 교련(敎鍊) 절대반대 등을 선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7년 11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김세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4. 청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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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세환2.jpg
출생 1884년 6월 6일
충청도 정산군 읍면 백곡리
사망 1955년 7월 14일 (향년 71세)
충청남도 청양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서훈 2004년 대통령표창
1884년 6월 6일 충청도 정산군 읍면 백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오후 3시경 충남 청양군 정산시장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이때 향교 직원 권흥규가 일제 헌병에게 피살당하자, 김세환은 군중과 함께 다음날 권흥규의 시신을 헌병들에게서 인수한 뒤 목면 안심리에 있는 고인의 자택으로 운구했다. 이때 군중 1,000명은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권흥규의 명정에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깃발과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내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헌병대는 이들을 공격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해 권흥규의 조카딸과 상여꾼 등 5명을 사살했다.

이후 체포된 김세환은 1919년 4월 22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청양헌병분견소에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그 후 청양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7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김세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