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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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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순(金三純)
파일:김삼순.jpg
본관 김해 김씨
출생 1909년 2월 3일
전라남도 창평군 고현내면 고읍리
(현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대팽이골)[1]
사망 2001년 12월 11일 (향년 92세)
직업 교수
학력 창평공립보통학교 (졸업)
경기공립고등여학교 (졸업)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이과 / 졸업)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연구과 / 수료)
홋카이도제국대학 (이학부 식물학 / 학사)
규슈대학 대학원 (농학 / 박사[2])

1. 개요2. 생애3. 여담4. 가족 관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생물학자. 한국균학회를 설립한 인물이며, 1977년에 대한민국 문교부 과학기술교육행정특보위원직을 지냈고 서울여자대학교 교수직을 맡았다.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최초의 여성 과학자로 꼽힌다. 한국 여성 최초로 농학박사[3] 학위를 받았으며, 조카가 이회창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 생애


1985년 12월 3일 KBS2 <11시에 만납시다> 인터뷰 영상.

1909년 2월 3일 전라남도 창평군 고현내면 고읍리(현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대팽이골)에서 태어나 창평공립보통학교(현 창평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927년 경기공립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33년 일본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4] 이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귀국하여 1933년부터 1938년까지 진명여자고등사범학교와 모교인 경기공립고등여학교에서 수학교사화학교사를 지냈다. 다만, 학문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현,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연구과를 수료하고 1941년 홋카이도제국대학 이학부 식물학과에 입학하였다.

홋카이도제국대학에서 식물학 학사 학위를 받고 대학원에 들어가 응용균학을 연구하다가 일제강점기 말에 다시 귀국한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에서 강사로 지냈다.

1961년, 다시 일본유학을 결심하고 홋카이도대학 농학부 농예화학 연구생을 거쳐, 1966년, 규슈대학에서 농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1968년 서울여자대학교에 교수로 취임했고, 1970년부터 삼성농장 대표를 맡았다. 1972년 한국균학회를 창립하였고, 1976년까지 한국균학회 회장을 맡았다. 1976년부터는 한국균학회 명예회장을 맡았다.

1977년에 대한민국 문교부 과학기술교육행정특보위원직을 지냈다.

2001년, 9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 여담

김삼순 여사가 일본 유학을 시작한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현, 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는 당시 제국대학 첫 여성 입학자였던 '구로다 치카'와 첫 여성 박사였던 '야스이 코노가'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홋카이도제국대학으로의 진학도 이들과의 상담 후 내린 결정이라 한다.

4. 가족 관계



[1] #[2] 박사학위논문 : Photoinactivation of Taka-amylase A (1966)[3] 최초의 여성 박사는 송복신이다.[4] 현재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으로, 당시 구제전문학교 과정. 단, 당시 고등사범학교구제전문학교 중에서도 우월한 지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