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30 05:10:03

결련택견협회


대한민국의 주요 택견 단체
4대 분파
대한택견회
구 대한택견협회
결련택견협회
구 택견계승회
한국택견협회
구 충주택견보존회
윗대태껸협회
구 위대태껸회
4대 분파 외 조직
노들택견
파일:결련택견협회_로고.jpg
명칭 결련택견협회
회장 도기현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8가길 111(동숭동)
링크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교육과정4. 여담5. 관련 인물6. 관련 서적

1. 개요


택견 협회 중 하나.

2. 역사

1980년대 초 연세대학교도기현을 비롯한 젊은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택견꾼 송덕기에게 몇년간 택견을 배웠는데, 이 사람들의 모임인 택견 계승회가 그 시발점이며 1983년 6월 1일 단체로서 결성되었다. 수련생을 체크하고 회비를 걷어 송덕기의 식사비를 대는 등 원시적이긴 하지만 단순 동아리라고 보기에는 규약과 회비를 제정함으로 단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신한승의 '충주 택견보존회'와 대비되는 이름으로 '서울 택견보존회'라고도 불렸다. 당시 회장은 송덕기, 총무는 도기현이었으며 이 당시의 이야기는 도기현의 저서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편에 잘 나와 있다.

1985년 도기현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그 와중인 1987년 송덕기신한승이 모두 타계하면서 단체의 앞날도 불투명해졌으나, 유학에서 돌아온 도기현이 남아있던 회원들을 구성해 새롭게 단체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름도 '결련택견계승회'라는 이름으로 재정립했다.

한때는 대한택견협회(현재의 대한택견회)와 협조 관계에 있었으나[1], 품밟기에서 대한택견회가 역품을 고집하고 허리를 흔드는 동작 등에서도 단체간 차이가 생겨나고 의견이 맞지 않음에 따라 결국 결별, 구 서울 택견보존회 출신 인사들과 일부 대한택견회 인사들이 넘어와 2000년 사단법인 결련택견협회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사족으로 이에 대해 이용복은 저서에서 주장하기를, 도기현은 당시 대한택견협회 서울지부의 전무이사였고 결련택견계승회는 그 서울지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도기현 이하 계승회 회원들이 대한택견협회의 전신인 한국전통택견연구회에 속해 함께 운동했다는 것인데, 애초에 이용복의 한국전통택견연구회보다 도기현 등의 서울 태껸보존회가 먼저 생겼기에 대한택견측의 주장은 오류가 있다.

결련택견협회는 1996년 무렵부터 '송덕기 옹 추모대회'라는 이름의 5:5 단체전 택견 대회를 열었고, 2004년부터는 인사동 문화마당에서 매년 천하제일 결련택견패 결정전 '택견배틀'을 열면서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 기존에 열던 송덕기 옹 추모대회도 택견배틀이 끝난 뒤 11월에 대회를 열고 있으며 이 대회의 규칙은 택견배틀과 좀 다르다.[2]

3. 교육과정

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결련택견, 즉 마을과 마을간에 겨루던 단체전 택견을 지향한다.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이 먼저라는 점에서 대한택견회, 한국택견협회와 차이가 있다.

결련택견협회는 단급제도는 따로 없고 호칭 없는 상태에서부터 시작하여 '결련택견꾼 -> 비각택견꾼 -> 옛법택견꾼' 순으로 올라간다. 대한택견회는 일본의 단급제도를 그대로 도입해서 사용하고, 한국택견협회 역시 단을 동, 급을 째라는 이름으로 바꿨을 뿐 단급제도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차이점. 옛법택견꾼 이후는 지도자 과정으로 '3급 지도자 -> 2급 지도자 -> 1급 지도자 -> 선생 -> 큰선생' 순으로 되어 있다.

결련택견꾼부터 옛법택견꾼까지 도달하는데의 총 심사횟수는 각 과정마다 5번으로, 총 15회이다. 각 과정은 기본마당-아랫마당-사잇마당-윗마당-택견꾼 심사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기본마당부터 윗마당까지는 본인이 다니는 전수관에서 심사를 보고 그 다음은 택견꾼 심사를 서울 인사동에서 결련택견협회 본부 중앙전수관에서 실시한다. 택견꾼 심사과목은 일종의 품새라고 할 수 있는 본때, 스파링인 결련, 필기 이론 심사가 있다.

이후 옛법택견꾼을 수료하면 지도자 심사를 볼 자격이 주어지며 지도자 심사에 합격하면 3급 지도자 자격을 얻는다. 지도자 심사는 매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결련택견협회 지도자 연수때 심사 대상자들이 참가하여 심사를 본다.


2018년, 황인무의 지도하에 옛법 택견반이 결련택견협회 중앙전수관에서 정식으로 수업이 개설되었다.[3] 옛법 전수자가 늘어나면 택견 손기술의 사장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여담

  • 구한말 택견꾼들이 택견을 수련했던 곳으로 알려진 감투바위 수련터를 처음 복원한 곳이 결련택견협회이다.
  • 결련택견을 서울 지역의 지역 문화재로 추진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 2천년대까지만 해도 한국택견협회대한택견회의 구성원에 비하면 아무래도 송덕기에게 직접적, 상대적으로 더 오래 사사한 인물들이 속해있었기에 정통성 측면에서 가장 앞에 있는 단체라 할만했으나[4], 송덕기에게 오랜 기간 사사한 고용우와 송덕기가 전승 후계자로 직접 지명한 적이 있는 이준서가 소속된 윗대태껸협회의 재등장으로 이 부분은 상당히 희석되긴 했다. 그래서인지 두 단체는 연대할 거리 역시 많음에도 현실에선 사이가 상당히 어그러진 편이다. 윗대측은 진출 초기 홍보를 위해서인지 기존 단체들이 (본인들 기준) 택견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며 매도하는 측면이 있었고, 이에 결련측은 윗대측과 갈등을 빚다[5] 2010년대 중반 윗대택견은 송덕기 택견이 아니라고 선언까지 해버렸기 때문에 결국 수뇌부들이 화해하기 전까진 연대의 가능성은 요원해보인다.

5. 관련 인물

6. 관련 서적


[1] 이용복이 세운 대한택견회가 충주의 한국택견협회와 마찰을 빚으면서 정통성 논란이 일자 결련택견협회를 끌어들여 이를 만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90년대 세력을 키운 대택이 뜬금없이 송덕기 택견을 잇겠답시고 한택에 정통성 시비를 걸며 무형문화재 재심사 소송을 걸었을 때 대택과 협조하던 도기현도 이를 지원사격했다. 허나 한택이 일단 이은건 신한승 택견인지라 핀치부터 잘못 잡은 소송은 대택이 무참히 패소하고 만다. 대택은 송덕기 택견 아니다란 법원의 확인 사살은 덤.[2] 사실 택견배틀은 첨 생길때만 해도 구한말 택견 복원을 모토로 일종의 무술 실험장처럼 쓰려고 만든 것이었으나, 예상 외 여러 단체들이 참여하는 흥행 대회로 거듭나면서 안전이나 출전팀 늘리려는 목적 등으로 금지 규칙들이 점점 생겨나 원 취지는 무색해졌다는 비판도 있다.[3] 사실 옛법 시범 자체는 2006년부터 장태식을 필두로 공개한걸 감안하면, 커리큘럼을 짜는데 10년 이상이 걸린걸 알 수 있다. 불완전하게 전해져오던걸 이리저리 조합해야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4] 다만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쪽은 신한승계인 한국택견협회 측이다. 송덕기쪽은 자/타의적으로 전승이 끊긴 상태. 애초에 택견이 무형문화재로 보존되어야 할만큼 맥이 끊긴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5] 애초에 결련은 도기현 회장 스스로도 송덕기 택견을 모두 배우진 못했다고 인정할 정도로, 기본 모토 자체가 송덕기 택견의 계승 + 잃어버린 것의 복원이었기에, 사실 사태 초기만 해도 결련 내부에선 복원 기대에 부풀어 운영은 그동안 고생한 도 회장이 맡되 고용우, 이준서 선생은 기술고문으로 초청하자며 환영하는 분위기도 일부 있을 정도였으나, 어느 쪽이 먼저 시작했냐를 떠나 결과적으로 비난 핑퐁 속 사이가 나빠지면서 영 끝이 안좋게 된다. 결련 내부적으론 2008~2012년 무렵 일부 전수관이나 수련생들이 윗대와 접촉했고, 지도부가 더이상 만나지 말라며 경고했지만 사실 추방 외엔 딱히 제재할 방법도 없어서 그래도 2012~2015년엔 결련택견 내부에서도 나름 수련생들끼린 학술적인 토론을 벌이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도 회장이 윗대택견을 사실상 사이비로 규정한 2015년 세미나 이후부턴 결련 내부에서도 약 2년간 내전이 발발해 결국 쁘락치로 몰린 친고용우/이준서 파는 결련을 떠나게 된다. 돌이켜보면 고용우야 미국 갔으니 그렇다 치고, 지명 전수생이었던 이준서가 90년대부터 활동했으면 도기현도 굳이 송덕기 택견 잇겠다고 고생 안하고 다른 일 했을테니 문제가 없었을 일이었는데 안타까운 일. 이시기 이준서 선생이 뭘 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진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