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bordercolor=#230310,#665786><tablewidth=500><tablealign=right><tablebgcolor=#ffffff,#1c1d1f><#230310,#230310><color=#9ebe04,#9ebe04> The 1st Studio Album
"Across the Ceiling... A1-9" ||
"Across the Ceiling... A1-9" ||
| <colbgcolor=#541630,#541630><colcolor=#aeea06,#aeea06> 아티스트 | Nest blurim |
| 발매 | 2026년 5월 8일 |
| 녹음 | 2025년 12월 - 2026년 5월 |
| 스튜디오 | 자택 |
| 장르 | 앱스트랙트 힙합 • 익스페리멘탈 힙합 • 베이퍼웨이브 |
| 길이 | 36:14 |
| 곡 수 | 9 |
| 프로듀서 | Nest blurim |
| 레이블 | 셀프 릴리즈 |
1. 개요2. 평가3. 트랙리스트
3.1. Across the Ceiling... A13.2. Across the Ceiling... A23.3. Across the Ceiling... A33.4. Across the Ceiling... A43.5. Across the Ceiling... A53.6. Across the Ceiling... A63.7. Across the Ceiling... A73.8. Across the Ceiling... A83.9. Across the Ceiling... A9
4. 크레딧5. 관련 영상6. 인터뷰6.1. 음악 매거진 참과의 인터뷰
7. 여담1. 개요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fff,#1c1d1f>
현재 밴드캠프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앨범 소개란
||대한민국의 래퍼 Nest blurim의 정규 1집.
2. 평가
|
| '''[[https://rateyourmusic.com/release/album/nest-blurim/across-the-ceiling-a1-9//|3.41 / 5.00 {{{#!if 레이팅수 != null]]''' |
기존 한국 힙합 팬들에게 생소했던 베이퍼웨이브라는 장르를 국힙에 가져오며 꽤나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나 비트에 대한 호평이 많았으며, 2집 또한 꽤나 많이 기대가 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힙노시스 테라피는 패치룸 페스티벌 공연 도중 네스트 블루림을 무대에 올리면서까지 이 앨범을 홍보해 줬다.
Korean Indie는 초창기 바밍타이거를 연상시킨다면서 힙합을 잘 몰라도 쉽게 들을 수 있다고 호평했다.
HAUS OF MATTERS에서도 독특하다고 호평하면서 2026년 상반기 최고 국힙 앨범 리스트에 넣었다.
3. 트랙리스트
| 트랙리스트 | ||
| <rowcolor=#aeea06> # | 제목 | 길이 |
| 1 | Across the Ceiling... A1 | 3:05 |
| 2 | Across the Ceiling... A2 (feat. 격) | 5:25 |
| 3 | Across the Ceiling... A3 | 3:05 |
| 4 | Across the Ceiling... A4 | 6:07 |
| 5 | Across the Ceiling... A5 | 2:54 |
| 6 | Across the Ceiling... A6 | 2:33 |
| 7 | Across the Ceiling... A7 | 3:37 |
| 8 | Across the Ceiling... A8 | 7:13 |
| 9 | Across the Ceiling... A9 | 2:15 |
3.1. Across the Ceiling... A1
Across the Ceiling... A1 Nest blurim
|
3.2. Across the Ceiling... A2
Across the Ceiling... A2 Nest blurim, 격
|
3.3. Across the Ceiling... A3
Across the Ceiling... A3 Nest blurim (This track is Interlude) |
3.4. Across the Ceiling... A4
Across the Ceiling... A4 Nest blurim
|
3.5. Across the Ceiling... A5
Across the Ceiling... A5 Nest blurim
|
3.6. Across the Ceiling... A6
Across the Ceiling... A6 Nest blurim
|
3.7. Across the Ceiling... A7
Across the Ceiling... A7 Nest blurim
|
3.8. Across the Ceiling... A8
Across the Ceiling... A8 Nest blurim
|
3.9. Across the Ceiling... A9
Across the Ceiling... A9 Nest blurim
|
4. 크레딧
All tracks are designed by Nest blurim
Recorded by December 2025 to May 2026
Prod by Nest blurim, Artwork by Nest blurim
Mix & Masterd by Nest blurim, Sampled by Nest blurim
Lyrics by Nest blurim (Track 1 - 9), Kyuk (Track 2)
Recorded by December 2025 to May 2026
Prod by Nest blurim, Artwork by Nest blurim
Mix & Masterd by Nest blurim, Sampled by Nest blurim
Lyrics by Nest blurim (Track 1 - 9), Kyuk (Track 2)
5. 관련 영상
| "Across the Ceiling... A1-9" Lyric Video | |
6. 인터뷰
6.1. 음악 매거진 참과의 인터뷰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fff,#1c1d1f>
||
Intro.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Nest blurim입니다. 베이퍼웨이브랑 앱스트랙트 힙합을 섞은 앨범을 냈고, 앞으로도 많은 장르를 도전해보고 연구하고 싶은 래퍼입니다.
앨범이 발매된 지 약 3개월이 지났습니다. 발매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많은 일이 있었는데, 되게 좋은 편이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났고, 여러분이 음악을 좋아해 주셔서 여러 매거진에서도 소개됐어요. 어제 공연도 하고, 또 다른 공연도 잡혔고요. 좋은 삶을 살고 있어요. 작업도 하고 있고, 다음 앨범도 준비하고 있고요.
안 그래도 앨범에 대한 평이 좋고 하입을 많이 받고 계시더라고요. 다음 공연도 잡히신 건가요?
네. 아직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 불러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8월 15일에 신촌에서 진행하신 공연은 어떠셨나요?
도박수를 뒀어요. 그 공연에 같이 나온 분들은 주로 디지코어나 하이퍼팝처럼 요즘 주목받는 음악을 하는데, 저는 그쪽과는 많이 다른 곡을 가져갔거든요. 특히 ‘A8’ 마지막 부분에서는 Hijokaidan 같은 노이즈 퍼포먼스의 영향을 받아서 소리를 지르고, 드러눕고, 무대에서 구르는 퍼포먼스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은 되게 좋아해 주셨고 저도 만족은 하는데,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만족합니다.
앱스트랙트 힙합에서는 그런 퍼포먼스를 본 적이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어떻게 공연을 하셨을지 엄청 궁금해집니다.
실험을 많이 하고 싶었어요. ‘A8’이라는 곡 자체가 애초에 그런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에요. 중간에 노이즈를 비롯한 여러 사운드가 들어가 있죠.
피지컬 CD도 완판됐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소감도 간단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도, 주변 사람들도 완판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주변에서는 50장만 찍어라, 1만 1천 원에 팔아라 같은 말을 해서, 저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팔다 보니까 김밥 레코즈에도 입고할 수 있었고, 결국 100장이 전부 팔렸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저도 100장을 다 팔 줄은 몰랐습니다.
본격적으로 앨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 앨범 [“Across the Ceiling... A1-9”]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Across the Ceiling... A1-9”]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와 제가 겪었던 사건들, 그리고 그 이후로 생긴 여러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사운드적으로는 제가 가장 앞에 두고 있는 장르인 베이퍼웨이브와 앱스트랙트 힙합을 섞었습니다. 두 장르가 잘 섞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앨범 제목을 ‘Across the Ceiling’으로 정한 이유와, 각 트랙에 별도의 제목을 붙이지 않고 A1부터 A9까지 번호만 붙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람이 천장을 걷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만큼 ‘정상성’이란 것이 많이 뒤집힌 사회와 개인의 내면을 전면에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걸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반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정상성을 굉장히 추구하잖아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비정상성은 충분히 존재하고, 그런 정상적인 사회를 걷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천장과 바닥을 뒤집어서 ‘Across the Ceiling’이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트랙 제목이 따로 없는 이유는, 저는 음악을 만들 때 제목에서 드러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음악에서는 사운드도 중요하지만 노랫말,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사건과 메시지도 중요해요. 그런데 그게 제목으로 먼저 밝혀지는 게 싫었어요. 제목 때문에 곡의 첫인상이 훼손되거나, 가사에서 전달하는 내용의 방향이 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을 거의 다 지워버린 것 같아요.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인터넷 음악 사조인 베이퍼웨이브와 앱스트랙트 힙합을 섞었다는 부분입니다. 이 두 장르를 섞고 싶어 했던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말 많지만,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반복’이에요. 음악을 만들면서 서로 다른 장르를 조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어울리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실험성, 전위성을 앞세우더라도 어쨌든 이것들이 서로 어울려야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베이퍼웨이브는 Oneohtrix Point Never이 인터뷰에서 말했듯 힙합의 영향을 받은 장르잖아요. 그래서 샘플을 프레이징하고 루프하는 방식이 이질적으로 들리지 않고, 힙합스럽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사운드적으로 먼저 설득이 된 것 같아요. 물론 각각의 장르가 반복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그 근원에는 ‘반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봤어요. 베이퍼웨이브와 힙합을 섞기로 처음 결정한 계기는 그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의도적으로 결합한 것이 아니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들린 것”이라고 말하는 아티스트도 많은데, Nest blurim 님은 장르를 의식적으로 섞으셨군요.
네, 맞습니다.
앨범에는 팝적인 소울, 훵크 샘플이 많이 쓰였습니다. 베이퍼웨이브 장르가 낯선 분들에게, 이런 샘플링이 베이퍼웨이브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해도 될까요?
그렇죠. Chuck Person, 그러니까 Oneohtrix Point Never가 Chuck Person's Eccojams Vol. 1에서 팝송을 많이 샘플링했잖아요. 그밖에 여러 베이퍼웨이브 음반을 들어봐도 우리가 알고 있는 팝송을 비롯해 신스팝이나 스무스소울, 스무스재즈, 재즈펑크, 디스코 같은 것을 많이 가져오더라고요. 저도 Leon Ware의 곡 등을 샘플링하면서 팝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MIKE나 Earl Sweatshirt 같은 앱스트랙트 힙합에서도 베이퍼웨이브와 닮은 질감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이 또한 베이퍼웨이브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분들은 베이퍼웨이브가 어떤 장르인지 인식하고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아요. 동물적인 감각과 같은 것으로 그런 경향을 추구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베이퍼웨이브를 이론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입장에 가깝고요. 다만 일반적으로는 그쪽은 드럼리스에 가까운 곡이 많고, 제가 만드는 음악에는 드럼이 들어가 있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베이퍼웨이브를 좋아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Nest blurim : 아까도 강조했듯이 저는 ‘반복’을 굉장히 좋아해요. 반복이 만드는 트랜스 효과라든가, 어쨌든 반복이 중심이 되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힙합이나 베이퍼웨이브가 아니더라도 저는 Suicide의 [Suicide] 앨범도 되게 좋아해요. 그것도 굉장히 반복적인 앨범이잖아요. Steve Reich 같은 미니멀리즘 작곡가도 되게 좋아하고요. 그런 방법론 자체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저에게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특히 베이퍼웨이브는 저한테 친숙한 느낌이 있어요. .샘플 프레이징을 통해 반복을 만들잖아요. 이 반복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거랑, 샘플 프레이징을 통해 루프를 직접 변형시켜서 만드는 건 되게 다르단 말이에요. 베이퍼웨이브는 샘플을 기반으로 반복한다는 점에서 힙합이랑 되게 맞닿아 있어요. 저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꽂혔던 것 같아요.
일반적인 베이퍼웨이브 장르보다는 믹스 과정에서 공간계의 사용이 더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의 공간 자체도 넓어지게 되고 보컬과 비트 사이의 거리가 이격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통의 믹스라면 비트와 보컬을 얼마나 잘 붙이는 데 목적을 가진다면, 이 앨범의 믹스는 사뭇 다른 의도를 향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이 의도가 궁금합니다.
보컬이랑 베이퍼웨이브를 섞으려면 오히려 붙이는 방식을 쓰면 안 돼요. 붙이려고 하면 샘플이나 보컬 중 하나가 너무 자기주장을 하면서 많이 튀게 되고, 그 느낌도 안 살아요. 예를 들어서 베이퍼웨이브 음악에 보컬을 건조하게 가져가면 뭔가 이상하잖아요. 베이퍼웨이브는 기본적으로 퍼지고 울리는 질감이 큰 장르니까요. 물론 chris†††의 [No Lives Matter]처럼 아닌 경우도 있지만요.
그래서 저는 그런 장르를 가져온 입장에서, 보컬에도 공간계를 강하게 넣어 같이 퍼지게 만들면 훨씬 더 공허하고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보컬 믹싱에서 애를 많이 먹었어요. 저도 처음 시도해보는 방법이었고,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도 많이 없어서 믹싱을 공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의 한국 음악에선 이런 스타일의 앨범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셨듯, 국내에서는 직접 참고할 만한 작품이 거의 없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작업하는 과정에서는 어떠셨는지, 그리고 벽에 막혔을 때는 어디서 도움을 받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일단 할 때까지는 해보고, 아무리 해봐도 도저히 제 귀에 맞지 않게 들리면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을 들었던 것 같아요. 완전히 비슷한 앨범보다는 공간계랑 보컬을 강하게 넣은 힙합 앨범을 들었어요.
또, 의외일 수 있지만, 제 탑스터에 베이퍼웨이브나 힙합이 아닌 작품도 많거든요. 예를 들어서 저는 Coin locker kid의 [The Salmon of Doubt]라는 작품을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서 두 번째 트랙인 ‘Rise!’를 들어보면 많이 울린단 말이에요. 그 사람의 다른 작품인 [Empathica]도 마찬가지고요. 또 Suicide의 ‘Frankie Teardrop’과 같은 트랙도 보컬이 되게 울리고 소리를 막 지르는데 그게 엄청 퍼지거든요. 오히려 그런 믹싱에서 해답을 얻었던 것 같아요. 아예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다른 작품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가져오는 것이 동일한 장르만 듣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더라고요.
사운드적으로는 국내에서 누군가한테 실제로 직접 도움을 받은 건 거의 없어요. 오히려 가사에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녹음도 홈레코딩으로 진행하셨나요?
네. 작업실을 구할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홈레코딩을 하긴 했는데요, 그런데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봤을 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제 음악 자체가 로파이하기도 하고, 힙나고직 팝의 영향도 있는데, James Ferraro 같은 힙나고직 팝 아티스트 역시도 믹싱을 로파이하게 가져가고 로우를 많이 깎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스튜디오에서 깨끗하게 녹음하는 것보다 홈레코딩의 거칠고 로파이한 질감이 작품에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앱스트랙트 힙합에서 베이퍼웨이브를 적극적으로 쓰는 아티스트로는 Cities Aviv가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일 것입니다. (특히, GUM보다는 Man Plays the Horn이 더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블로그에서 언급하셨듯 ‘방향성부터가 다르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차이점을 두려고 하셨을까요?
제가 Cities Aviv의 곡을 들으면서 느낀 건, 앨범들이 하나같이 Jackson Pollock이나 Mark Rothko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품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의도보다 표현이 앞서 있고, 콜라주적인 경향이 강하단 말이에요. [Man Plays the Horn]처럼 시적이고 컨셔스한 가사를 많이 쓰는 작품도 있지만, [Electric Chair]나 [GUM]같은 앨범에서는 전위성이 제일 앞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앨범이 굉장히 압축적이에요. 또 짧은 곡을 막 던지다가 ‘Power Approaches’ 같이 40분이 넘는 긴 곡이 갑자기 나오기도 하고요.
반대로 저는 ‘전달’이 목적이에요. 이런 의도로 이 사운드를 섞었고,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쭉 밀고 가는 느낌이죠. 그리고 제 앨범은 트랙 하나하나가 되게 서로 이어져 있어서 한 트랙이라도 빠지면 설명이 잘 안돼요. 편성 자체가 굉장히 의도적이고, 그 안에서 루프도 계속 바뀌고, 약간 프로그레시브 록스러운 대곡 편성도 있고, 그런 식으로 서사적인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Cities Aviv라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 안에서만 머물면 그냥 Cities Aviv를 다시 듣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차이를 많이 두려고 했어요. Cities Aviv가 상대적으로 느긋하고 좀 진정되는 분위기를 지향한다면, 저는 퓨처 펑크 같은 장르의 영향도 받아서 좀 더 과격하고 혼란스러운 방향을 의도하기도 했고요.
말씀대로 이 장르의 음악은 1~2분짜리의 곡들을 조각을 흩뿌리듯 배치하거나, 한 곡이 완성된 송폼을 갖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각 트랙이 완성된 형태를 갖고 있고 코러스도 선명하고 다채롭다고 느꼈어요. 송폼을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신경을 쓰신 건지도 궁금합니다.
네,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트랙들이 다 이어지거든요. 저는 서사적인 경험을 중요시해요.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여기서 이런 반응이 나올 거고, 여기서는 이런 생각이 들 거고’ 하는 걸 중요하게 보는 사람이죠. 곡과 곡 사이에 암전되는 순간까지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만드는, 어떻게 보면 영화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되게 중요시하는 사람으로서, 반복을 통해 메시지를 강조하는 코러스에서 특히 음악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방금 말했듯이 Cities Aviv라는 아티스트는 되게 흩뿌리는 인상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반대로 저는 완성된 형태를 지향하는 편이거든요. 완성된 형태로 전위성을 가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전위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형태를 취한 것 같습니다.
랩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앱스트랙트 힙합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랩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신경을 쓰셨다고 느껴졌는데, 랩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래퍼를 제일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Mach-Hommy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랩 디자인이나 비음을 쓰는 방식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Cities Aviv와 MIKE의 영향도 있고요.
전반적으로 앱스트랙트 힙합 래퍼들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billy woods처럼 건조한 래퍼들보다는 Earl Sweatshirt나 Mach-Hommy처럼 느긋하고 차분한 사람들에게 더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A2’에는 가사와 맞물리는 ‘Save the Children’이라는 샘플 보이스가 등장합니다. 제목으로는 해석을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이런 장치는 특정 이미지를 분명하게 고정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까요?
앱스트랙트 힙합인 만큼 제 가사가 추상적이죠.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표현도 되게 많고, 초현실적인 가사도 많아요. 그렇지만 의도까지 엄청나게 난해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가사 안에 들어가 있는 단어가 있잖아요. 그런 단어가 있는 이상 아티스트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아티스트가 하려는 말이 된단 말이죠.
질문에 답을 하자면, 모든 트랙이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게 특정 이미지를 고정한 트랙도 있는 반면, ‘A5’처럼 아예 다른 트랙도 있습니다. 트랙 별로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썼죠. 또, ‘A7’에서 Leon Ware의 ‘Why I Came to California’라는 곡을 샘플링한 것도 ‘Save the Children’과 같은 맥락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캘리포니아에 왔다’가 아니라, ‘내가 왜 캘리포니아에 왔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왔는지’잖아요. 골드러시를 하러 온 사람도 있을 거고 아메리칸드림을 가진 사람도 있을 거고요. ‘A7’의 첫 가사가 “음악은 나를 살렸어”로 시작하는 것과도 연결돼요. 음악이 나를 살렸기 때문에 이 음악을 하고 있고, 내가 여기 왜 왔는지가 유추되게끔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또, ‘A2’에는 격 님이 앨범의 유일한 피처링으로 참여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제안하셨고, 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격 님은 가사를 너무 잘 써요. Sun Gin 님과 격 님의 패솔로지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불순물’처럼 포퓰리즘이나 캔슬 컬처를 비판하는 가사도 좋아하고, 후반부의 ‘시대에 기대어’도 어머니의 사랑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감동적이어서 듣다가 울었어요. 그 정도로 가사에 반했고, 그래서 ‘무조건 연락을 해야겠다’, ‘이분에게 이런 가사를 써달라고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격 님이 인스타그램도 없어서 어떻게 연락하는지도 몰랐어요. 메시지를 보내도 못 볼 수도 있고요. 그래서 ‘CATACOMB Vol.2’ 공연 때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날 참여를 못 시키면 자결할 거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마음먹고 갔어요. 공연이 끝나고 되게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드렸는데, 굉장히 흔쾌하게 받아주셨어요.
격 님의 가사는 되게 이론적이고 거시적인 경향도 강한데, 저는 미시적인 사회 비판을 하고 싶었어요. 어쨌든 개인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방향을 말씀드리면서 가사를 한두 번 정도 수정했던 비하인드도 있습니다.
여러 트랙 중에서도 ‘A2’에 피처링을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후의 이야기가 저만의 이야기로 좁혀지기 때문이에요. ‘A2’에는 어쨌든 실존적인 우울, 공포, 죽음 충동 같은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격 님의 가사가 포섭될 수 있을 만큼의 여지가 남아 있었어요. 뒤쪽에 넣으면 격 님의 가사가 이후 트랙의 의도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A2에 박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힙합과 베이퍼웨이브 외에는 어떤 음악을 참고하셨나요? 공개하신 탑스터에서 Pere Ubu가 특히 이질적으로 보여 궁금했습니다.
제 앨범은 베이퍼웨이브 외에도 되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사운드적인 것만이 아니라 의도 같은 것도 있잖아요. 음악이라는 게 껍질로만 구성되는 건 아니고, 그 안에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노웨이브 같은 장르도 그런 정신이 앞서는 음악이라고 보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펑크나 초기 신스팝, Kraftwerk 등의 표현 방법이나 사운드 디자인에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Pere Ubu랑 Suicide도 제가 너무 좋아하는데, 보컬이 되게 익살스럽고 웃기면서도 섬뜩하단 말이에요. Pere Ubu의 [New Picnic Time]에 있는 ‘The Fabulous Sequel’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가사가 없이 소리를 뿜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저도 그런 섬뜩한 디자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힙합 외의 음악을 들을 때도 ‘이건 참고할 만한 포인트가 있겠다’ 싶은 것을 계속 분석했어요. 그런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제 음악에 묻어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블로그에서 이 앨범이 개인의 정서와 과거의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완성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사, 폭력, 자기혐오가 은유와 직설을 오가며 등장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가사를 구성한 이유와 이를 통해 해소하거나 실현하고 싶었던 것이 궁금합니다.
가사를 구성하면서 저 개인적으로도 많이 성장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앨범을 안 낸 게 아니라 못 냈어요. 약 5년 정도 가사를 썼고, 그 과정에서 저를 되게 많이 돌아봤어요. 경험을 밖으로 꺼내 앨범의 형태로 낸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어떻게 보면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됐어요.
가사는 그냥 쓰기만 하면 아무도 못 보잖아요.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뭔가를 바꾸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것이 앨범으로 나오는 순간 달라져요. 쓰는 행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 퍼지게 돼요. 그 점이 저에게 굉장히 의미 있었고, 그렇기에 제 가장 깊은 곳에 있던 것들을 거침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앞서 말했듯 저는 개인이 곧 사회랑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가장 깊은 부분이나 행동 방식, 정서를 끄집어냄으로써 사회를 비판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사회 비판도 조금은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왜냐하면 그냥 직설적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폴리티컬 힙합처럼 직접 항의하는 형태보다는, 제가 좋아하고 본질이라 생각하는 개인적인 것과 사색이 사회비판과 연결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곡은 ‘A7’이랑 ‘A9 ‘정도예요.
그리고, 개인이 왜 사회비판을 하게 됐는지도 중요하잖아요. 영화를 볼 때도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중요하듯이요. 바깥에서 볼 수 있는 메타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가사를 사회 비판적으로 쓸 때도 왜 쓰게 됐는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고, 제 가사도 개인적이긴 하지만 결국 따라가보면 유추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복지 정책의 한계라든가, 젠더를 해체하거나 젠더에 대한 의문, 사회의 무관심, 정체성만 보고 본질을 못 보는 것들이요.
저를 이루는 정체성만 해도 20대고, 남성이고, 랩을 하고 있고, 퀴어 같은 것들이 있죠. 저는 그런 것들을 해체하고 비판하고 싶었어요. 복지 정책도 특정한 틀 안에 있는 사람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모든 개인을 돕지는 못하잖아요. 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있어도 그 옆에서 같이 힘든 가족은 도움을 못 받을 수도 있는 것처럼요.
제 가사에도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장치들이 많이 나오는데, 제 트라우마가 형성된 데에는 그런 사건 자체도 있지만 그 이후에 생긴 사회적 무관심과 같은 2차 가해도 있어요. 저는 그런 것까지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가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사랑’입니다. 사랑을 부정적인 맥락으로 묘사하면서도 결국 ‘사랑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돌아온다고 느꼈습니다. Nest blurim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방금 했던 말이랑 연결돼요. 앨범의 화자는 저랑 많이 연결돼 있지만, 어쨌든 제가 아니라 제가 쓴 가사의 등장인물입니다. 그 인물은 앨범의 제목이랑 연관되게 정상성을 비판하고, 행복 같은 감정도 뒤틀어서 표현해요. 사운드는 신나지만 가사는 신이 나지 않아요. 그런 뒤집힌 세계에 있는 화자는 타락을 합니다.
사랑은 원래 굉장히 고결하고 신성한, 긍정적인 단어잖아요. 하지만 이 앨범에서는 사랑에 굉장히 부정적인 수사를 많이 붙여요. 사랑이 자살을 낳고, 사랑이 피해를 낳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저에게 사랑은 저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면서도, 그럼에도 저를 살게 만드는 것이라서 양가적인 입장입니다. 그래서 화자에게도 저에게도 사랑은 굉장히 양가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사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과거의 향수와 이루지 못한 미래를 다루는 베이퍼웨이브의 정서와 의도적으로 결합하신 건가요?
사실 저는 제가 듣기에 가장 좋은 음악을 만들고 제가 들었을 때 가장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거예요. 이건 어떻게 하니까 둘이 잘 맞은 거긴 해요. 물론 베이퍼웨이브를 만들고 기획하는 과정에서 이 장르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미래, 과거에 대한 향수, 일본 버블 경제 같은 이미지를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장르의 정서와 철학적 입장을 이해하면서 그에 맞춰 몇몇 가사는 수정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안 것도, 한 번에 계획한 것도 아니죠. 이 앨범의 계획만 2년이 걸렸는걸요.
게다가 말만 2년이지, 사실상 테세우스의 배 같은 거예요. 테세우스의 배라는 게, 배를 계속 부품으로 바꿔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의 부품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데, 그래도 그 배를 처음의 배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이야기잖아요. 저 역시도 중학생 때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무조건 앨범을 내야겠다, 이런 가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사실상 5년 동안 계획한 거죠. 그리고 물론 테세우스의 배처럼 많이 바뀌어 왔고요. 그런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앨범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렇기에 앨범 안에 많은 것들을 함유할 수 있었다고 봐요. 베이퍼웨이브의 정신도 처음에는 제가 깨닫지 못했었지만, 만들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넣을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저의 오래된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A3’, ‘A4’, ‘A5’에는 대화나 목소리 녹음이 삽입돼 있습니다. 곡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하고, 갑자기 청자를 현실로 끌어오는 장치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어떤 의도였나요?
아까 말했듯 저는 곡 안에 장치를 넣는 걸 좋아해요. billy woods나 Earl Sweatshirt의 샘플을 들어봐도 역사적인 것들이나 가족의 목소리 같은 걸 콜라주 하잖아요. 그런 장치를 가져오고 포섭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는 편이에요.
이 스킷은 화자의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화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존재인데, 트라우마의 증상 중 하나가 플래시백이잖아요. 저도 실제로 플래시백을 많이 겪기도 했고, 그 감각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비트는 굉장히 퍼지고 우울하고 몽환적이고 느긋해서, 현실에 없는 꿈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가 건조한 스킷이 갑자기 탁 튀어나와요. 그 과정이 기억의 침투이고, 의도한 것이예요. 무의식에 있는 송곳 같은 것들이 제가 그냥 사는 와중에 갑자기 튀어나와서 망쳐놓는 느낌.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그 음성은 당시 실제로 겪은 상황을 녹음한 것인가요, 아니면 앨범을 위해 연출한 것인가요?
실제 녹음이에요. 아버지가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릴 때, 제가 맞고 있을 때 녹음했어요. 신고할 목적이 아니라 앨범에 쓰려고 녹음했습니다. 5년 동안 이 앨범을 준비했다고 했잖아요. 그때부터 녹음한 기록이 한 100개 정도 쌓여 있었고, 그중에서 3개 정도를 골라서 넣었어요.
당연히 가족 몰래 녹음했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A3’가 인터루드이고, 그 뒤 ‘A4’와 ‘A5’가 이어지는 흐름도 의도적으로 설계하신 건가요?
이걸 좀 가이드 같은 느낌으로 쉽게 설명해드리자면, 저스디스의 2 MANY HOMES 4 1 KID가 1번 트랙이 끝나고 의사를 통해서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A2’의 실존적인 공포가 끝난 뒤 ‘A3’를 통해서 꿈이나 초현실적인 세계로 접속하는 내용이에요. ‘A3’는 앨범에서 가장 베이퍼웨이브스러운 트랙이고, 마지막에 스킷이 나오면서 기억에 침투하면서 ‘A4’가 튀어나오는 거죠
‘A4’가 다시 천천히 클로즈 아웃되면서 스킷이 나오고, ‘A5’는 제 악몽을 표현한 트랙이에요. 비트도 실제로 악몽 같고 (웃음), 잘 나오다가 갑자기 막 뒤틀리고, 중간에 비트가 바뀌면서 갑자기 시를 읊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걸 굉장히 좋아해서, 그 요소들이 다 하나의 내용처럼 이어질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Outro.
2006년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힙합을 접한 계기와 처음 좋아했던 앨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당했거든요. 저를 괴롭히던 애들이 듣던 음악이 <쇼미더머니> 음악이었어요. 그때 래퍼들이 가사를 쓰는 걸 보면서 ‘왜 이렇게 솔직하게 쓰지? 왜 생각을 안 거치고 말을 하지?’ 싶은 것이 좋았어요. 힙합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되고, 도덕적인 제한이 없는 것처럼 말해도 된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다른 예술도 그렇겠지만, 제가 그걸 처음 느낀 게 힙합이었으니까 ‘힙합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하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피타입의 Street Poetry를 진짜 많이 들었고, 저스디스 1집도 많이 들었어요. Khundi Panda의 쾌락설계도나 이현준의 끓는 물의 개구리도 되게 좋아했고요. Kendrick Lamar의 good kid, m.A.A.d city도 되게 좋아했는데, 그걸 들으면서 ‘나는 무조건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2학년쯤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음 음악에 눈을 뜬 게 힙합이어서, 이후에 다른 음악을 좋아하게 돼도 제 중심에는 힙합이 계속 있었고, 자연스럽게 다시 힙합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작년에 발매했던 medley 1도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정규 1집을 준비하면서 나온 습작에 가까운 작품인가요?
네, 맞습니다. 1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트랙들이랑 탈락한 곡들을 모아둔 습작이에요. 비트는 정말 마음에 드는데, 가사나 랩은 아직 설익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 앨범도 살을 그대로 드러낸 느낌이지만 [medley 1]은 더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부끄럽기도 해요.
그래도 추억으로는 인정해요. 모든 아티스트가 처음부터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 저한테 [medley 1]은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죠. 지금은 내리긴 했지만,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나중에 리마스터를 하거나 다시 올릴 수도 있어요.
앨범 커버도 전형적인 베이퍼웨이브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 감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뜻과 감성을 담았나요?
저는 아트워크를 볼 때 뜻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보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한 없이 최소한의 의도만 있었어요. 첫 번째는 ‘장르가 드러나게끔, 베이퍼웨이브스럽게 만들자’였고, 두 번째는 ‘색깔을 무조건 초록색이랑 보라색으로 하자’였어요. 그 색들이 우울하고 병든 느낌도 주고, 독 같은 것도 연상시키잖아요.
이 ‘독’이라는 게 앨범에서는 술이에요. 술은 화자한테 굉장히 사건적인 이미지이고, 아버지의 존재랑도 연결돼요. 화자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자기혐오를 느끼게 하는 존재에요. 또 아버지와 아들을 연결시키는 매개이기도 하고요. 술을 은유할 이미지를 고민하다 독을 떠올렸고, 그래서 초록색과 보라색을 채택했습니다.
힙합의 앱스트랙트 힙합이 락에서는 포스트록과 성향이 겹친다고 생각하는데, 포스트록이나 슈게이즈에는 하나의 신과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고, 최근에는 여러 아티스트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앱스트랙트 힙합은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뚜렷한 흐름이나 커뮤니티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현재의 신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직설적으로 말하면, 저는 크루 ‘서리(30)’가 앱스트랙트 힙합 신을 만들면서 죽였다고 생각해요. 정말 만들면서 죽였어요. 가장 먼저, 손 심바가 장르를 오독했어요. 실제로는 앱스트랙트가 아니라 하드코어를 했잖아요. Khundi Panda는 제대로 했지만요. 또, 서리가 컨셔스한 앱스트랙트 힙합을 전면으로 내세웠다가 죽어버렸잖아요. 그렇게 리스너들에게 ‘이런 음악은 퇴물들이나 하는 장르야’ 하는 인식을 생기게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디지코어가 한국에 들어오고, ‘20세기 출생들은 이제 좀 꺼져봐’라는 말이 유행하죠. 저는 그 세대가 아니긴 하지만, 그 신을 동경하고 커왔던 입장에서 슬프긴 하죠. 저는 제발 앱스트랙트 신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힙합 공연을 없어서 못가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앱스트랙트 힙합 공연으로 NAVY EGO와 Xaoil (451)이 주최했던 ‘CATACOMB Vol.2’가 마지막이었어요. 다 다른 장르예요. 제가 최근에 했던 공연도 디지코어 쪽이었어요. 그 정도로 씬이 죽었어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신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는 노이즈나 하드코어 펑크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는데, 그런 공연을 보면서 솔직히 열패감이나 질투를 많이 느껴요. 한국 앱스트랙트 힙합에도 파란노을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신에서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아티스트가 있나요?
솔직히 거의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다 오래 활동한 분들이에요. 그나마 새로운 얼굴이라고 하면 저랑 Leon Tarantino 정도가 먼저 떠오릅니다. 또, 최근에는 Oyat Jeong 님이랑도 작업했고, 광태수키라는 아티스트도 주목하고 있어요.
물론 제가 모르면서 하는 모독일 수도 있어요. 있으면 제발 나와주세요. 같이 작업합시다. 저는 당신이 필요하고, 신이 필요해요. 할 수만 있으면 제가 주도하고 싶어요. 진짜 하고 싶은 사람은 연락 주세요. 신을 만들고 싶어요.
장르 자체의 매력이 부족해서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인지, 신을 만들고 조명하는 구조가 부족한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또 문제라고 생각하는게, 기존 힙합 매체나 평론이 새로운 음악을 잘 주목 안 해줘요. 저는 아까 언급했던 Sun Gin 님과 격 님의 패솔로지, KWAII의 엔트로피라는 앨범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아무도 언급해주지 않았어요. 리드머가 짧게 언급하긴 했지만… 커뮤니티에서도 당연히 없어요. 많은 평론이 이미 모두가 아는 작품을 뒤늦게 가져와서 리뷰하고 끝나는 느낌이 너무 강해요. 저는 각성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리뷰해 주세요. (웃음)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인디 아티스트를 직접 디깅해서 리뷰해야죠. 음악은 아티스트 개인으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리뷰도 그 연장이라고 봐요. 파란노을도 RYM 같은 리스너 커뮤니티의 주목이 있었고, 여러 평론가가 리뷰를 했기 때문에 더 넓게 알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좋은 음악을 발견하고 언어화하는 리뷰도 결국 신을 만드는 일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선 체급을 키워야 해요. 제가 지금 당장 다음 앨범을 만들어서 내도 솔직히 그렇게 크게 하입을 받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라는 아티스트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 훨씬 많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공연부터 열심히 다니고, 여기저기 사람들과 소통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지금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힙합 씬에 있는 사람보다는 노이즈락, EAI 등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분들이에요. 저는 그런 분들까지 다 친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힙합 쪽 분들은 수가 적어요. 그 이유는 힙합하는 분들이 디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만드는 음악도 너무 템플릿화 돼 있고요. 컨셔스 힙합도 ‘이거 녹색이념, 가로사옥 같은데?’ 싶은 식으로 정해진 형식 안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요. 질적 부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런 모독적인 얘기를 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에요. 더 많은 음악을 듣고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좋은 음악이 많거든요. 저도 아직 부족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다들 너무 디깅을 안하기 때문이에요. 당장 디지코어만 해도, SOPHIE도 안 들어보고 특정 아티스트만 좋아해서 표면만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하이퍼팝도 사실 굉장히 젠더 해체적이고 퀴어한 맥락이 있는 음악이잖아요.
근데 그런 정신은 빠지고 껍데기만 남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장르가 대중화되면서 껍데기만 남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긴 해요. 근데 당연하다고 해서 그냥 자행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런 사람이 더 많아요. 그런 질적 부족이 한국 힙합의 패착이라고 봅니다. 각성이 필요합니다. 질적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역시도 ‘미국 힙합을 숭고하게 따라야 한다’는 말에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너무 가두는 것 같아요. 진짜 ‘성공했다’라는 표현을 하려면 외국이랑 싸워야 하죠. ‘한국에서 내가 1등이다’라고 하는게, ‘그럼 외국에서는 안 먹힌다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마케팅 자체가 저에게는 스스로 한계를 가두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이라 느껴져요.
저는 Kanye West나 Kendrick Lamar를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어쨌든 경쟁자라고 생각해요. 물론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는데, 허무맹랑한 말이어도 그 정신의 차이에서 오는 게 있다고 봐요. 제가 반문화적인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팬보이스러운 문화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국이라고 무조건 칭송하고, 흑인 친구 자랑하고 하는 것들이 다 대상화이고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전유를 걱정하기 이전에, 그런 패배주의적인 생각부터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짜 한국 힙합이 한국 힙합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새로운 사운드’라고 소개되는 것들도 사실 해외에서는 몇 년 전에 다 나온 경우가 많아요. 전혀 새롭지가 않아요. 정말로 신선함을 만들고 싶다면, 공부를 해서 새로운 걸 직접 만드세요. 물론 음악에 새로운 건 없지만, 뻔한 음악과 뻔하지 않은 음악은 있잖아요. 못 만든 음악이었어도 뻔하지 않은 음악이면 좋겠어요.
K-FLIP이 ‘한국적이다’라고 하입을 받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한국 시장의 현실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은 한국을 문화 강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엔 허상이거든요. 실제의 ‘문화’로 기능을 하지 않아요. 문화라는 것은 그 안에 고유성과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KPOP은 문화라기보단 산업이잖아요. 외국의 것을 빨리 가져와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K-FLIP]을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체급을 키우고 싶습니다. 이걸로 돈을 벌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물론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면 좋죠. 하지만 저는 ‘Move the Crowd’를 하고 싶어요.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해요. 전위적인 음악을 하려는 사람이 필요해요. 록만 봐도 우륵과 풍각쟁이들처럼 과감한 팀들도 보이는데, 힙합에는 그런 전위적인 음악을 하던 분들이 크게 주목을 못 받고 오독 받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최근에 참 좋게 들은 음악이 있을까요?
최근에는 Robert Turman의 [Way Down]이라는 인더스트리얼 앨범을 되게 좋아하고, Einstürzende Neubauten의 초기 작품도 많이 듣고 있어요. James Ferraro의 [Rerex]도 좋아하고요.
힙합에서는 요즘 Dälek이랑 El-P를 많이 들어요. 저는 앱스트랙트 힙합의 왕이 El-P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최고예요. Cities Aviv의 [Electric Chair]도 요즘 많이 듣고 있고요. 이미 제 앨범을 냈으니까 영향받을 걱정이 없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좋아하는 음악을 좀 더 편하게 많이 듣고 있어요.
[Across the Ceiling... A1-9]을 참 좋게 들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밴드캠프에서 풀 볼륨으로 들으면 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다음 앨범은 또 다른 스타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단하게 스포일러해 주실 수 있나요?
전자음악이 섞인 앨범이 될 것 같아요. 누군가는 트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트랩이라기보다는 앰비언트 테크노에 더 가까워요. 트랩의 하위 장르인 트레드 리듬도 좀 섞이고, 아트모스피어릭하고, 앰비언트 플럭이나 글리치 합, 예전 LA 비트 신, Yayayi, Arca 같은 아티스트의 영향도 있고요. 그런 글리치스러운 앨범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 주의가 ‘못 만든 음악을 내더라도 새로운 음악, 재미있는 음악을 내자’이고, 이것이 예술가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해요. 예술이잖아요. 뻔하면 안되죠. 좋은 것을 못 만들더라도, 물론 만들면 좋지만, 어쨋든 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이미 들어본 음악을 한 번 더 하는 것만큼 뻔한 게 없어요. 그렇기에 저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는 것이에요. 시도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말만 들어도 이번 앨범 역시 작업이 힘들 것 같네요.
그래서 EP로 냅니다. (웃음) 샘플링이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요. 저도 물론 샘플링으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샘플링의 한계를 넘고 싶어서 도전을 한 것인데, 그래도 힘들 긴 해서 EP로 내려고요.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기 많아지고 싶어요. 인기 많아져서 새로운 시도 많이 해보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제가 힙합만 할 것도 아닐 것 같고, 밴드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디 골방에서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하고 있어도 그것 역시 저예요. 제가 무슨 음악을 하든 제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작가가 똑같은 작품을 여러 개로 나눠서 만든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무슨 음악을 하든 제 기준에서 만들 거고, 결국 저라는 사람 안에서 나올 겁니다. 모든 것이 저랑 관련이 돼있을 거예요. 남보다는 제가 먼저죠.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요. 인기가 많아져서, 아까도 말했듯 관중도 움직이고 싶고, 이 신도 좀 뒤집고 싶어요. 프라이팬처럼 (웃음)
다른 신을 보다 힙합 신을 보면 한숨만 나오고 너무 초라해 보여요. 물론 규모는 크고 유명하긴 하지만, 내실이 없어요. 너무 속물적이고 자본에 너무나도 휩쓸리는 것 같고요.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요. 진짜 도전하고 진정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인기가 없어요. 그래서 더더욱 팝스러운 음악의 비중이 늘어지고, 이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죠.
그렇기에 저는 힘을 원합니다. 화나 ‘POWER’의 가사처럼, ‘힘을 원해’요. 저는 ‘어글리 정션을 유지시킬 돈’을 만들고 싶어요. 막 차를 사고 과시할 돈이 아니라, 어글리 정션 같은 정신을 유지시킬 돈을 얻고 싶고, 이를 통해 한국 힙합 신을 재미있게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너무 노잼이에요. 다 하던 거 하고.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발 저 많이 응원해주세요. 이 시도가 시도뿐인 흔적으로만 남아도 어쩃든 계속 도전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좋은 음악이 나올 수도 있겠죠. 1집은 성공했어요. 앞으로도 그렇다면 좋겠지만 늘 좋은 음악은 만들 수는 없겠죠. 그래도 1집은 좋았으니 됐어요.
팬분들 항상 고맙고, 저 열심히 지켜봐 주세요. 제가 ‘힙합스럽지 않은 행동’을 한다고 화내지 마시고요. 사실 뭐가 힙합스럽고 힙합스럽지 않은지를 따지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고... 저를 조금 더 좋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물론 감사하지만, 저를 더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필요해요. 저는 진짜 한국 힙합을 바꾸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Nest blurim입니다. 베이퍼웨이브랑 앱스트랙트 힙합을 섞은 앨범을 냈고, 앞으로도 많은 장르를 도전해보고 연구하고 싶은 래퍼입니다.
앨범이 발매된 지 약 3개월이 지났습니다. 발매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많은 일이 있었는데, 되게 좋은 편이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났고, 여러분이 음악을 좋아해 주셔서 여러 매거진에서도 소개됐어요. 어제 공연도 하고, 또 다른 공연도 잡혔고요. 좋은 삶을 살고 있어요. 작업도 하고 있고, 다음 앨범도 준비하고 있고요.
안 그래도 앨범에 대한 평이 좋고 하입을 많이 받고 계시더라고요. 다음 공연도 잡히신 건가요?
네. 아직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 불러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8월 15일에 신촌에서 진행하신 공연은 어떠셨나요?
도박수를 뒀어요. 그 공연에 같이 나온 분들은 주로 디지코어나 하이퍼팝처럼 요즘 주목받는 음악을 하는데, 저는 그쪽과는 많이 다른 곡을 가져갔거든요. 특히 ‘A8’ 마지막 부분에서는 Hijokaidan 같은 노이즈 퍼포먼스의 영향을 받아서 소리를 지르고, 드러눕고, 무대에서 구르는 퍼포먼스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은 되게 좋아해 주셨고 저도 만족은 하는데,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만족합니다.
앱스트랙트 힙합에서는 그런 퍼포먼스를 본 적이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어떻게 공연을 하셨을지 엄청 궁금해집니다.
실험을 많이 하고 싶었어요. ‘A8’이라는 곡 자체가 애초에 그런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에요. 중간에 노이즈를 비롯한 여러 사운드가 들어가 있죠.
피지컬 CD도 완판됐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소감도 간단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도, 주변 사람들도 완판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주변에서는 50장만 찍어라, 1만 1천 원에 팔아라 같은 말을 해서, 저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팔다 보니까 김밥 레코즈에도 입고할 수 있었고, 결국 100장이 전부 팔렸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저도 100장을 다 팔 줄은 몰랐습니다.
본격적으로 앨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 앨범 [“Across the Ceiling... A1-9”]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Across the Ceiling... A1-9”]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와 제가 겪었던 사건들, 그리고 그 이후로 생긴 여러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사운드적으로는 제가 가장 앞에 두고 있는 장르인 베이퍼웨이브와 앱스트랙트 힙합을 섞었습니다. 두 장르가 잘 섞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앨범 제목을 ‘Across the Ceiling’으로 정한 이유와, 각 트랙에 별도의 제목을 붙이지 않고 A1부터 A9까지 번호만 붙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람이 천장을 걷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만큼 ‘정상성’이란 것이 많이 뒤집힌 사회와 개인의 내면을 전면에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걸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반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정상성을 굉장히 추구하잖아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비정상성은 충분히 존재하고, 그런 정상적인 사회를 걷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천장과 바닥을 뒤집어서 ‘Across the Ceiling’이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트랙 제목이 따로 없는 이유는, 저는 음악을 만들 때 제목에서 드러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음악에서는 사운드도 중요하지만 노랫말,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사건과 메시지도 중요해요. 그런데 그게 제목으로 먼저 밝혀지는 게 싫었어요. 제목 때문에 곡의 첫인상이 훼손되거나, 가사에서 전달하는 내용의 방향이 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을 거의 다 지워버린 것 같아요.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인터넷 음악 사조인 베이퍼웨이브와 앱스트랙트 힙합을 섞었다는 부분입니다. 이 두 장르를 섞고 싶어 했던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말 많지만,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반복’이에요. 음악을 만들면서 서로 다른 장르를 조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어울리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실험성, 전위성을 앞세우더라도 어쨌든 이것들이 서로 어울려야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베이퍼웨이브는 Oneohtrix Point Never이 인터뷰에서 말했듯 힙합의 영향을 받은 장르잖아요. 그래서 샘플을 프레이징하고 루프하는 방식이 이질적으로 들리지 않고, 힙합스럽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사운드적으로 먼저 설득이 된 것 같아요. 물론 각각의 장르가 반복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그 근원에는 ‘반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봤어요. 베이퍼웨이브와 힙합을 섞기로 처음 결정한 계기는 그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의도적으로 결합한 것이 아니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들린 것”이라고 말하는 아티스트도 많은데, Nest blurim 님은 장르를 의식적으로 섞으셨군요.
네, 맞습니다.
앨범에는 팝적인 소울, 훵크 샘플이 많이 쓰였습니다. 베이퍼웨이브 장르가 낯선 분들에게, 이런 샘플링이 베이퍼웨이브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해도 될까요?
그렇죠. Chuck Person, 그러니까 Oneohtrix Point Never가 Chuck Person's Eccojams Vol. 1에서 팝송을 많이 샘플링했잖아요. 그밖에 여러 베이퍼웨이브 음반을 들어봐도 우리가 알고 있는 팝송을 비롯해 신스팝이나 스무스소울, 스무스재즈, 재즈펑크, 디스코 같은 것을 많이 가져오더라고요. 저도 Leon Ware의 곡 등을 샘플링하면서 팝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MIKE나 Earl Sweatshirt 같은 앱스트랙트 힙합에서도 베이퍼웨이브와 닮은 질감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이 또한 베이퍼웨이브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분들은 베이퍼웨이브가 어떤 장르인지 인식하고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아요. 동물적인 감각과 같은 것으로 그런 경향을 추구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베이퍼웨이브를 이론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입장에 가깝고요. 다만 일반적으로는 그쪽은 드럼리스에 가까운 곡이 많고, 제가 만드는 음악에는 드럼이 들어가 있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베이퍼웨이브를 좋아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Nest blurim : 아까도 강조했듯이 저는 ‘반복’을 굉장히 좋아해요. 반복이 만드는 트랜스 효과라든가, 어쨌든 반복이 중심이 되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힙합이나 베이퍼웨이브가 아니더라도 저는 Suicide의 [Suicide] 앨범도 되게 좋아해요. 그것도 굉장히 반복적인 앨범이잖아요. Steve Reich 같은 미니멀리즘 작곡가도 되게 좋아하고요. 그런 방법론 자체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저에게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특히 베이퍼웨이브는 저한테 친숙한 느낌이 있어요. .샘플 프레이징을 통해 반복을 만들잖아요. 이 반복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거랑, 샘플 프레이징을 통해 루프를 직접 변형시켜서 만드는 건 되게 다르단 말이에요. 베이퍼웨이브는 샘플을 기반으로 반복한다는 점에서 힙합이랑 되게 맞닿아 있어요. 저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꽂혔던 것 같아요.
일반적인 베이퍼웨이브 장르보다는 믹스 과정에서 공간계의 사용이 더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의 공간 자체도 넓어지게 되고 보컬과 비트 사이의 거리가 이격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통의 믹스라면 비트와 보컬을 얼마나 잘 붙이는 데 목적을 가진다면, 이 앨범의 믹스는 사뭇 다른 의도를 향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이 의도가 궁금합니다.
보컬이랑 베이퍼웨이브를 섞으려면 오히려 붙이는 방식을 쓰면 안 돼요. 붙이려고 하면 샘플이나 보컬 중 하나가 너무 자기주장을 하면서 많이 튀게 되고, 그 느낌도 안 살아요. 예를 들어서 베이퍼웨이브 음악에 보컬을 건조하게 가져가면 뭔가 이상하잖아요. 베이퍼웨이브는 기본적으로 퍼지고 울리는 질감이 큰 장르니까요. 물론 chris†††의 [No Lives Matter]처럼 아닌 경우도 있지만요.
그래서 저는 그런 장르를 가져온 입장에서, 보컬에도 공간계를 강하게 넣어 같이 퍼지게 만들면 훨씬 더 공허하고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보컬 믹싱에서 애를 많이 먹었어요. 저도 처음 시도해보는 방법이었고,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도 많이 없어서 믹싱을 공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의 한국 음악에선 이런 스타일의 앨범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셨듯, 국내에서는 직접 참고할 만한 작품이 거의 없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작업하는 과정에서는 어떠셨는지, 그리고 벽에 막혔을 때는 어디서 도움을 받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일단 할 때까지는 해보고, 아무리 해봐도 도저히 제 귀에 맞지 않게 들리면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을 들었던 것 같아요. 완전히 비슷한 앨범보다는 공간계랑 보컬을 강하게 넣은 힙합 앨범을 들었어요.
또, 의외일 수 있지만, 제 탑스터에 베이퍼웨이브나 힙합이 아닌 작품도 많거든요. 예를 들어서 저는 Coin locker kid의 [The Salmon of Doubt]라는 작품을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서 두 번째 트랙인 ‘Rise!’를 들어보면 많이 울린단 말이에요. 그 사람의 다른 작품인 [Empathica]도 마찬가지고요. 또 Suicide의 ‘Frankie Teardrop’과 같은 트랙도 보컬이 되게 울리고 소리를 막 지르는데 그게 엄청 퍼지거든요. 오히려 그런 믹싱에서 해답을 얻었던 것 같아요. 아예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다른 작품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가져오는 것이 동일한 장르만 듣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더라고요.
사운드적으로는 국내에서 누군가한테 실제로 직접 도움을 받은 건 거의 없어요. 오히려 가사에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녹음도 홈레코딩으로 진행하셨나요?
네. 작업실을 구할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홈레코딩을 하긴 했는데요, 그런데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봤을 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제 음악 자체가 로파이하기도 하고, 힙나고직 팝의 영향도 있는데, James Ferraro 같은 힙나고직 팝 아티스트 역시도 믹싱을 로파이하게 가져가고 로우를 많이 깎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스튜디오에서 깨끗하게 녹음하는 것보다 홈레코딩의 거칠고 로파이한 질감이 작품에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앱스트랙트 힙합에서 베이퍼웨이브를 적극적으로 쓰는 아티스트로는 Cities Aviv가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일 것입니다. (특히, GUM보다는 Man Plays the Horn이 더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블로그에서 언급하셨듯 ‘방향성부터가 다르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차이점을 두려고 하셨을까요?
제가 Cities Aviv의 곡을 들으면서 느낀 건, 앨범들이 하나같이 Jackson Pollock이나 Mark Rothko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품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의도보다 표현이 앞서 있고, 콜라주적인 경향이 강하단 말이에요. [Man Plays the Horn]처럼 시적이고 컨셔스한 가사를 많이 쓰는 작품도 있지만, [Electric Chair]나 [GUM]같은 앨범에서는 전위성이 제일 앞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앨범이 굉장히 압축적이에요. 또 짧은 곡을 막 던지다가 ‘Power Approaches’ 같이 40분이 넘는 긴 곡이 갑자기 나오기도 하고요.
반대로 저는 ‘전달’이 목적이에요. 이런 의도로 이 사운드를 섞었고,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쭉 밀고 가는 느낌이죠. 그리고 제 앨범은 트랙 하나하나가 되게 서로 이어져 있어서 한 트랙이라도 빠지면 설명이 잘 안돼요. 편성 자체가 굉장히 의도적이고, 그 안에서 루프도 계속 바뀌고, 약간 프로그레시브 록스러운 대곡 편성도 있고, 그런 식으로 서사적인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Cities Aviv라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 안에서만 머물면 그냥 Cities Aviv를 다시 듣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차이를 많이 두려고 했어요. Cities Aviv가 상대적으로 느긋하고 좀 진정되는 분위기를 지향한다면, 저는 퓨처 펑크 같은 장르의 영향도 받아서 좀 더 과격하고 혼란스러운 방향을 의도하기도 했고요.
말씀대로 이 장르의 음악은 1~2분짜리의 곡들을 조각을 흩뿌리듯 배치하거나, 한 곡이 완성된 송폼을 갖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각 트랙이 완성된 형태를 갖고 있고 코러스도 선명하고 다채롭다고 느꼈어요. 송폼을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신경을 쓰신 건지도 궁금합니다.
네,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트랙들이 다 이어지거든요. 저는 서사적인 경험을 중요시해요.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여기서 이런 반응이 나올 거고, 여기서는 이런 생각이 들 거고’ 하는 걸 중요하게 보는 사람이죠. 곡과 곡 사이에 암전되는 순간까지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만드는, 어떻게 보면 영화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되게 중요시하는 사람으로서, 반복을 통해 메시지를 강조하는 코러스에서 특히 음악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방금 말했듯이 Cities Aviv라는 아티스트는 되게 흩뿌리는 인상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반대로 저는 완성된 형태를 지향하는 편이거든요. 완성된 형태로 전위성을 가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전위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형태를 취한 것 같습니다.
랩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앱스트랙트 힙합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랩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신경을 쓰셨다고 느껴졌는데, 랩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래퍼를 제일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Mach-Hommy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랩 디자인이나 비음을 쓰는 방식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Cities Aviv와 MIKE의 영향도 있고요.
전반적으로 앱스트랙트 힙합 래퍼들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billy woods처럼 건조한 래퍼들보다는 Earl Sweatshirt나 Mach-Hommy처럼 느긋하고 차분한 사람들에게 더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A2’에는 가사와 맞물리는 ‘Save the Children’이라는 샘플 보이스가 등장합니다. 제목으로는 해석을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이런 장치는 특정 이미지를 분명하게 고정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까요?
앱스트랙트 힙합인 만큼 제 가사가 추상적이죠.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표현도 되게 많고, 초현실적인 가사도 많아요. 그렇지만 의도까지 엄청나게 난해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가사 안에 들어가 있는 단어가 있잖아요. 그런 단어가 있는 이상 아티스트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아티스트가 하려는 말이 된단 말이죠.
질문에 답을 하자면, 모든 트랙이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게 특정 이미지를 고정한 트랙도 있는 반면, ‘A5’처럼 아예 다른 트랙도 있습니다. 트랙 별로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썼죠. 또, ‘A7’에서 Leon Ware의 ‘Why I Came to California’라는 곡을 샘플링한 것도 ‘Save the Children’과 같은 맥락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캘리포니아에 왔다’가 아니라, ‘내가 왜 캘리포니아에 왔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왔는지’잖아요. 골드러시를 하러 온 사람도 있을 거고 아메리칸드림을 가진 사람도 있을 거고요. ‘A7’의 첫 가사가 “음악은 나를 살렸어”로 시작하는 것과도 연결돼요. 음악이 나를 살렸기 때문에 이 음악을 하고 있고, 내가 여기 왜 왔는지가 유추되게끔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또, ‘A2’에는 격 님이 앨범의 유일한 피처링으로 참여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제안하셨고, 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격 님은 가사를 너무 잘 써요. Sun Gin 님과 격 님의 패솔로지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불순물’처럼 포퓰리즘이나 캔슬 컬처를 비판하는 가사도 좋아하고, 후반부의 ‘시대에 기대어’도 어머니의 사랑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감동적이어서 듣다가 울었어요. 그 정도로 가사에 반했고, 그래서 ‘무조건 연락을 해야겠다’, ‘이분에게 이런 가사를 써달라고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격 님이 인스타그램도 없어서 어떻게 연락하는지도 몰랐어요. 메시지를 보내도 못 볼 수도 있고요. 그래서 ‘CATACOMB Vol.2’ 공연 때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날 참여를 못 시키면 자결할 거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마음먹고 갔어요. 공연이 끝나고 되게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드렸는데, 굉장히 흔쾌하게 받아주셨어요.
격 님의 가사는 되게 이론적이고 거시적인 경향도 강한데, 저는 미시적인 사회 비판을 하고 싶었어요. 어쨌든 개인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방향을 말씀드리면서 가사를 한두 번 정도 수정했던 비하인드도 있습니다.
여러 트랙 중에서도 ‘A2’에 피처링을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후의 이야기가 저만의 이야기로 좁혀지기 때문이에요. ‘A2’에는 어쨌든 실존적인 우울, 공포, 죽음 충동 같은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격 님의 가사가 포섭될 수 있을 만큼의 여지가 남아 있었어요. 뒤쪽에 넣으면 격 님의 가사가 이후 트랙의 의도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A2에 박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힙합과 베이퍼웨이브 외에는 어떤 음악을 참고하셨나요? 공개하신 탑스터에서 Pere Ubu가 특히 이질적으로 보여 궁금했습니다.
제 앨범은 베이퍼웨이브 외에도 되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사운드적인 것만이 아니라 의도 같은 것도 있잖아요. 음악이라는 게 껍질로만 구성되는 건 아니고, 그 안에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노웨이브 같은 장르도 그런 정신이 앞서는 음악이라고 보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펑크나 초기 신스팝, Kraftwerk 등의 표현 방법이나 사운드 디자인에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Pere Ubu랑 Suicide도 제가 너무 좋아하는데, 보컬이 되게 익살스럽고 웃기면서도 섬뜩하단 말이에요. Pere Ubu의 [New Picnic Time]에 있는 ‘The Fabulous Sequel’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가사가 없이 소리를 뿜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저도 그런 섬뜩한 디자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힙합 외의 음악을 들을 때도 ‘이건 참고할 만한 포인트가 있겠다’ 싶은 것을 계속 분석했어요. 그런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제 음악에 묻어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블로그에서 이 앨범이 개인의 정서와 과거의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완성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사, 폭력, 자기혐오가 은유와 직설을 오가며 등장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가사를 구성한 이유와 이를 통해 해소하거나 실현하고 싶었던 것이 궁금합니다.
가사를 구성하면서 저 개인적으로도 많이 성장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앨범을 안 낸 게 아니라 못 냈어요. 약 5년 정도 가사를 썼고, 그 과정에서 저를 되게 많이 돌아봤어요. 경험을 밖으로 꺼내 앨범의 형태로 낸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어떻게 보면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됐어요.
가사는 그냥 쓰기만 하면 아무도 못 보잖아요.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뭔가를 바꾸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것이 앨범으로 나오는 순간 달라져요. 쓰는 행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 퍼지게 돼요. 그 점이 저에게 굉장히 의미 있었고, 그렇기에 제 가장 깊은 곳에 있던 것들을 거침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앞서 말했듯 저는 개인이 곧 사회랑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가장 깊은 부분이나 행동 방식, 정서를 끄집어냄으로써 사회를 비판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사회 비판도 조금은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왜냐하면 그냥 직설적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폴리티컬 힙합처럼 직접 항의하는 형태보다는, 제가 좋아하고 본질이라 생각하는 개인적인 것과 사색이 사회비판과 연결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곡은 ‘A7’이랑 ‘A9 ‘정도예요.
그리고, 개인이 왜 사회비판을 하게 됐는지도 중요하잖아요. 영화를 볼 때도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중요하듯이요. 바깥에서 볼 수 있는 메타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가사를 사회 비판적으로 쓸 때도 왜 쓰게 됐는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고, 제 가사도 개인적이긴 하지만 결국 따라가보면 유추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복지 정책의 한계라든가, 젠더를 해체하거나 젠더에 대한 의문, 사회의 무관심, 정체성만 보고 본질을 못 보는 것들이요.
저를 이루는 정체성만 해도 20대고, 남성이고, 랩을 하고 있고, 퀴어 같은 것들이 있죠. 저는 그런 것들을 해체하고 비판하고 싶었어요. 복지 정책도 특정한 틀 안에 있는 사람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모든 개인을 돕지는 못하잖아요. 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있어도 그 옆에서 같이 힘든 가족은 도움을 못 받을 수도 있는 것처럼요.
제 가사에도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장치들이 많이 나오는데, 제 트라우마가 형성된 데에는 그런 사건 자체도 있지만 그 이후에 생긴 사회적 무관심과 같은 2차 가해도 있어요. 저는 그런 것까지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가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사랑’입니다. 사랑을 부정적인 맥락으로 묘사하면서도 결국 ‘사랑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돌아온다고 느꼈습니다. Nest blurim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방금 했던 말이랑 연결돼요. 앨범의 화자는 저랑 많이 연결돼 있지만, 어쨌든 제가 아니라 제가 쓴 가사의 등장인물입니다. 그 인물은 앨범의 제목이랑 연관되게 정상성을 비판하고, 행복 같은 감정도 뒤틀어서 표현해요. 사운드는 신나지만 가사는 신이 나지 않아요. 그런 뒤집힌 세계에 있는 화자는 타락을 합니다.
사랑은 원래 굉장히 고결하고 신성한, 긍정적인 단어잖아요. 하지만 이 앨범에서는 사랑에 굉장히 부정적인 수사를 많이 붙여요. 사랑이 자살을 낳고, 사랑이 피해를 낳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저에게 사랑은 저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면서도, 그럼에도 저를 살게 만드는 것이라서 양가적인 입장입니다. 그래서 화자에게도 저에게도 사랑은 굉장히 양가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사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과거의 향수와 이루지 못한 미래를 다루는 베이퍼웨이브의 정서와 의도적으로 결합하신 건가요?
사실 저는 제가 듣기에 가장 좋은 음악을 만들고 제가 들었을 때 가장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거예요. 이건 어떻게 하니까 둘이 잘 맞은 거긴 해요. 물론 베이퍼웨이브를 만들고 기획하는 과정에서 이 장르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미래, 과거에 대한 향수, 일본 버블 경제 같은 이미지를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장르의 정서와 철학적 입장을 이해하면서 그에 맞춰 몇몇 가사는 수정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안 것도, 한 번에 계획한 것도 아니죠. 이 앨범의 계획만 2년이 걸렸는걸요.
게다가 말만 2년이지, 사실상 테세우스의 배 같은 거예요. 테세우스의 배라는 게, 배를 계속 부품으로 바꿔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의 부품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데, 그래도 그 배를 처음의 배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이야기잖아요. 저 역시도 중학생 때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무조건 앨범을 내야겠다, 이런 가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사실상 5년 동안 계획한 거죠. 그리고 물론 테세우스의 배처럼 많이 바뀌어 왔고요. 그런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앨범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렇기에 앨범 안에 많은 것들을 함유할 수 있었다고 봐요. 베이퍼웨이브의 정신도 처음에는 제가 깨닫지 못했었지만, 만들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넣을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저의 오래된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A3’, ‘A4’, ‘A5’에는 대화나 목소리 녹음이 삽입돼 있습니다. 곡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하고, 갑자기 청자를 현실로 끌어오는 장치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어떤 의도였나요?
아까 말했듯 저는 곡 안에 장치를 넣는 걸 좋아해요. billy woods나 Earl Sweatshirt의 샘플을 들어봐도 역사적인 것들이나 가족의 목소리 같은 걸 콜라주 하잖아요. 그런 장치를 가져오고 포섭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는 편이에요.
이 스킷은 화자의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화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존재인데, 트라우마의 증상 중 하나가 플래시백이잖아요. 저도 실제로 플래시백을 많이 겪기도 했고, 그 감각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비트는 굉장히 퍼지고 우울하고 몽환적이고 느긋해서, 현실에 없는 꿈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가 건조한 스킷이 갑자기 탁 튀어나와요. 그 과정이 기억의 침투이고, 의도한 것이예요. 무의식에 있는 송곳 같은 것들이 제가 그냥 사는 와중에 갑자기 튀어나와서 망쳐놓는 느낌.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그 음성은 당시 실제로 겪은 상황을 녹음한 것인가요, 아니면 앨범을 위해 연출한 것인가요?
실제 녹음이에요. 아버지가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릴 때, 제가 맞고 있을 때 녹음했어요. 신고할 목적이 아니라 앨범에 쓰려고 녹음했습니다. 5년 동안 이 앨범을 준비했다고 했잖아요. 그때부터 녹음한 기록이 한 100개 정도 쌓여 있었고, 그중에서 3개 정도를 골라서 넣었어요.
당연히 가족 몰래 녹음했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A3’가 인터루드이고, 그 뒤 ‘A4’와 ‘A5’가 이어지는 흐름도 의도적으로 설계하신 건가요?
이걸 좀 가이드 같은 느낌으로 쉽게 설명해드리자면, 저스디스의 2 MANY HOMES 4 1 KID가 1번 트랙이 끝나고 의사를 통해서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A2’의 실존적인 공포가 끝난 뒤 ‘A3’를 통해서 꿈이나 초현실적인 세계로 접속하는 내용이에요. ‘A3’는 앨범에서 가장 베이퍼웨이브스러운 트랙이고, 마지막에 스킷이 나오면서 기억에 침투하면서 ‘A4’가 튀어나오는 거죠
‘A4’가 다시 천천히 클로즈 아웃되면서 스킷이 나오고, ‘A5’는 제 악몽을 표현한 트랙이에요. 비트도 실제로 악몽 같고 (웃음), 잘 나오다가 갑자기 막 뒤틀리고, 중간에 비트가 바뀌면서 갑자기 시를 읊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걸 굉장히 좋아해서, 그 요소들이 다 하나의 내용처럼 이어질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Outro.
2006년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힙합을 접한 계기와 처음 좋아했던 앨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당했거든요. 저를 괴롭히던 애들이 듣던 음악이 <쇼미더머니> 음악이었어요. 그때 래퍼들이 가사를 쓰는 걸 보면서 ‘왜 이렇게 솔직하게 쓰지? 왜 생각을 안 거치고 말을 하지?’ 싶은 것이 좋았어요. 힙합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되고, 도덕적인 제한이 없는 것처럼 말해도 된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다른 예술도 그렇겠지만, 제가 그걸 처음 느낀 게 힙합이었으니까 ‘힙합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하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피타입의 Street Poetry를 진짜 많이 들었고, 저스디스 1집도 많이 들었어요. Khundi Panda의 쾌락설계도나 이현준의 끓는 물의 개구리도 되게 좋아했고요. Kendrick Lamar의 good kid, m.A.A.d city도 되게 좋아했는데, 그걸 들으면서 ‘나는 무조건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2학년쯤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음 음악에 눈을 뜬 게 힙합이어서, 이후에 다른 음악을 좋아하게 돼도 제 중심에는 힙합이 계속 있었고, 자연스럽게 다시 힙합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작년에 발매했던 medley 1도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정규 1집을 준비하면서 나온 습작에 가까운 작품인가요?
네, 맞습니다. 1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트랙들이랑 탈락한 곡들을 모아둔 습작이에요. 비트는 정말 마음에 드는데, 가사나 랩은 아직 설익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 앨범도 살을 그대로 드러낸 느낌이지만 [medley 1]은 더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부끄럽기도 해요.
그래도 추억으로는 인정해요. 모든 아티스트가 처음부터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 저한테 [medley 1]은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죠. 지금은 내리긴 했지만,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나중에 리마스터를 하거나 다시 올릴 수도 있어요.
앨범 커버도 전형적인 베이퍼웨이브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 감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뜻과 감성을 담았나요?
저는 아트워크를 볼 때 뜻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보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한 없이 최소한의 의도만 있었어요. 첫 번째는 ‘장르가 드러나게끔, 베이퍼웨이브스럽게 만들자’였고, 두 번째는 ‘색깔을 무조건 초록색이랑 보라색으로 하자’였어요. 그 색들이 우울하고 병든 느낌도 주고, 독 같은 것도 연상시키잖아요.
이 ‘독’이라는 게 앨범에서는 술이에요. 술은 화자한테 굉장히 사건적인 이미지이고, 아버지의 존재랑도 연결돼요. 화자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자기혐오를 느끼게 하는 존재에요. 또 아버지와 아들을 연결시키는 매개이기도 하고요. 술을 은유할 이미지를 고민하다 독을 떠올렸고, 그래서 초록색과 보라색을 채택했습니다.
힙합의 앱스트랙트 힙합이 락에서는 포스트록과 성향이 겹친다고 생각하는데, 포스트록이나 슈게이즈에는 하나의 신과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고, 최근에는 여러 아티스트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앱스트랙트 힙합은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뚜렷한 흐름이나 커뮤니티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현재의 신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직설적으로 말하면, 저는 크루 ‘서리(30)’가 앱스트랙트 힙합 신을 만들면서 죽였다고 생각해요. 정말 만들면서 죽였어요. 가장 먼저, 손 심바가 장르를 오독했어요. 실제로는 앱스트랙트가 아니라 하드코어를 했잖아요. Khundi Panda는 제대로 했지만요. 또, 서리가 컨셔스한 앱스트랙트 힙합을 전면으로 내세웠다가 죽어버렸잖아요. 그렇게 리스너들에게 ‘이런 음악은 퇴물들이나 하는 장르야’ 하는 인식을 생기게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디지코어가 한국에 들어오고, ‘20세기 출생들은 이제 좀 꺼져봐’라는 말이 유행하죠. 저는 그 세대가 아니긴 하지만, 그 신을 동경하고 커왔던 입장에서 슬프긴 하죠. 저는 제발 앱스트랙트 신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힙합 공연을 없어서 못가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앱스트랙트 힙합 공연으로 NAVY EGO와 Xaoil (451)이 주최했던 ‘CATACOMB Vol.2’가 마지막이었어요. 다 다른 장르예요. 제가 최근에 했던 공연도 디지코어 쪽이었어요. 그 정도로 씬이 죽었어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신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는 노이즈나 하드코어 펑크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는데, 그런 공연을 보면서 솔직히 열패감이나 질투를 많이 느껴요. 한국 앱스트랙트 힙합에도 파란노을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신에서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아티스트가 있나요?
솔직히 거의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다 오래 활동한 분들이에요. 그나마 새로운 얼굴이라고 하면 저랑 Leon Tarantino 정도가 먼저 떠오릅니다. 또, 최근에는 Oyat Jeong 님이랑도 작업했고, 광태수키라는 아티스트도 주목하고 있어요.
물론 제가 모르면서 하는 모독일 수도 있어요. 있으면 제발 나와주세요. 같이 작업합시다. 저는 당신이 필요하고, 신이 필요해요. 할 수만 있으면 제가 주도하고 싶어요. 진짜 하고 싶은 사람은 연락 주세요. 신을 만들고 싶어요.
장르 자체의 매력이 부족해서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인지, 신을 만들고 조명하는 구조가 부족한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또 문제라고 생각하는게, 기존 힙합 매체나 평론이 새로운 음악을 잘 주목 안 해줘요. 저는 아까 언급했던 Sun Gin 님과 격 님의 패솔로지, KWAII의 엔트로피라는 앨범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아무도 언급해주지 않았어요. 리드머가 짧게 언급하긴 했지만… 커뮤니티에서도 당연히 없어요. 많은 평론이 이미 모두가 아는 작품을 뒤늦게 가져와서 리뷰하고 끝나는 느낌이 너무 강해요. 저는 각성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리뷰해 주세요. (웃음)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인디 아티스트를 직접 디깅해서 리뷰해야죠. 음악은 아티스트 개인으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리뷰도 그 연장이라고 봐요. 파란노을도 RYM 같은 리스너 커뮤니티의 주목이 있었고, 여러 평론가가 리뷰를 했기 때문에 더 넓게 알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좋은 음악을 발견하고 언어화하는 리뷰도 결국 신을 만드는 일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선 체급을 키워야 해요. 제가 지금 당장 다음 앨범을 만들어서 내도 솔직히 그렇게 크게 하입을 받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라는 아티스트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 훨씬 많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공연부터 열심히 다니고, 여기저기 사람들과 소통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지금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힙합 씬에 있는 사람보다는 노이즈락, EAI 등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분들이에요. 저는 그런 분들까지 다 친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힙합 쪽 분들은 수가 적어요. 그 이유는 힙합하는 분들이 디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만드는 음악도 너무 템플릿화 돼 있고요. 컨셔스 힙합도 ‘이거 녹색이념, 가로사옥 같은데?’ 싶은 식으로 정해진 형식 안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요. 질적 부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런 모독적인 얘기를 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에요. 더 많은 음악을 듣고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좋은 음악이 많거든요. 저도 아직 부족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다들 너무 디깅을 안하기 때문이에요. 당장 디지코어만 해도, SOPHIE도 안 들어보고 특정 아티스트만 좋아해서 표면만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하이퍼팝도 사실 굉장히 젠더 해체적이고 퀴어한 맥락이 있는 음악이잖아요.
근데 그런 정신은 빠지고 껍데기만 남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장르가 대중화되면서 껍데기만 남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긴 해요. 근데 당연하다고 해서 그냥 자행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런 사람이 더 많아요. 그런 질적 부족이 한국 힙합의 패착이라고 봅니다. 각성이 필요합니다. 질적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역시도 ‘미국 힙합을 숭고하게 따라야 한다’는 말에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너무 가두는 것 같아요. 진짜 ‘성공했다’라는 표현을 하려면 외국이랑 싸워야 하죠. ‘한국에서 내가 1등이다’라고 하는게, ‘그럼 외국에서는 안 먹힌다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마케팅 자체가 저에게는 스스로 한계를 가두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이라 느껴져요.
저는 Kanye West나 Kendrick Lamar를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어쨌든 경쟁자라고 생각해요. 물론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는데, 허무맹랑한 말이어도 그 정신의 차이에서 오는 게 있다고 봐요. 제가 반문화적인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팬보이스러운 문화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국이라고 무조건 칭송하고, 흑인 친구 자랑하고 하는 것들이 다 대상화이고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전유를 걱정하기 이전에, 그런 패배주의적인 생각부터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짜 한국 힙합이 한국 힙합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새로운 사운드’라고 소개되는 것들도 사실 해외에서는 몇 년 전에 다 나온 경우가 많아요. 전혀 새롭지가 않아요. 정말로 신선함을 만들고 싶다면, 공부를 해서 새로운 걸 직접 만드세요. 물론 음악에 새로운 건 없지만, 뻔한 음악과 뻔하지 않은 음악은 있잖아요. 못 만든 음악이었어도 뻔하지 않은 음악이면 좋겠어요.
K-FLIP이 ‘한국적이다’라고 하입을 받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한국 시장의 현실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은 한국을 문화 강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엔 허상이거든요. 실제의 ‘문화’로 기능을 하지 않아요. 문화라는 것은 그 안에 고유성과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KPOP은 문화라기보단 산업이잖아요. 외국의 것을 빨리 가져와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K-FLIP]을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체급을 키우고 싶습니다. 이걸로 돈을 벌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물론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면 좋죠. 하지만 저는 ‘Move the Crowd’를 하고 싶어요.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해요. 전위적인 음악을 하려는 사람이 필요해요. 록만 봐도 우륵과 풍각쟁이들처럼 과감한 팀들도 보이는데, 힙합에는 그런 전위적인 음악을 하던 분들이 크게 주목을 못 받고 오독 받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최근에 참 좋게 들은 음악이 있을까요?
최근에는 Robert Turman의 [Way Down]이라는 인더스트리얼 앨범을 되게 좋아하고, Einstürzende Neubauten의 초기 작품도 많이 듣고 있어요. James Ferraro의 [Rerex]도 좋아하고요.
힙합에서는 요즘 Dälek이랑 El-P를 많이 들어요. 저는 앱스트랙트 힙합의 왕이 El-P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최고예요. Cities Aviv의 [Electric Chair]도 요즘 많이 듣고 있고요. 이미 제 앨범을 냈으니까 영향받을 걱정이 없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좋아하는 음악을 좀 더 편하게 많이 듣고 있어요.
[Across the Ceiling... A1-9]을 참 좋게 들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밴드캠프에서 풀 볼륨으로 들으면 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다음 앨범은 또 다른 스타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단하게 스포일러해 주실 수 있나요?
전자음악이 섞인 앨범이 될 것 같아요. 누군가는 트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트랩이라기보다는 앰비언트 테크노에 더 가까워요. 트랩의 하위 장르인 트레드 리듬도 좀 섞이고, 아트모스피어릭하고, 앰비언트 플럭이나 글리치 합, 예전 LA 비트 신, Yayayi, Arca 같은 아티스트의 영향도 있고요. 그런 글리치스러운 앨범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 주의가 ‘못 만든 음악을 내더라도 새로운 음악, 재미있는 음악을 내자’이고, 이것이 예술가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해요. 예술이잖아요. 뻔하면 안되죠. 좋은 것을 못 만들더라도, 물론 만들면 좋지만, 어쨋든 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이미 들어본 음악을 한 번 더 하는 것만큼 뻔한 게 없어요. 그렇기에 저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는 것이에요. 시도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말만 들어도 이번 앨범 역시 작업이 힘들 것 같네요.
그래서 EP로 냅니다. (웃음) 샘플링이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요. 저도 물론 샘플링으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샘플링의 한계를 넘고 싶어서 도전을 한 것인데, 그래도 힘들 긴 해서 EP로 내려고요.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기 많아지고 싶어요. 인기 많아져서 새로운 시도 많이 해보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제가 힙합만 할 것도 아닐 것 같고, 밴드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디 골방에서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하고 있어도 그것 역시 저예요. 제가 무슨 음악을 하든 제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작가가 똑같은 작품을 여러 개로 나눠서 만든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무슨 음악을 하든 제 기준에서 만들 거고, 결국 저라는 사람 안에서 나올 겁니다. 모든 것이 저랑 관련이 돼있을 거예요. 남보다는 제가 먼저죠.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요. 인기가 많아져서, 아까도 말했듯 관중도 움직이고 싶고, 이 신도 좀 뒤집고 싶어요. 프라이팬처럼 (웃음)
다른 신을 보다 힙합 신을 보면 한숨만 나오고 너무 초라해 보여요. 물론 규모는 크고 유명하긴 하지만, 내실이 없어요. 너무 속물적이고 자본에 너무나도 휩쓸리는 것 같고요.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요. 진짜 도전하고 진정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인기가 없어요. 그래서 더더욱 팝스러운 음악의 비중이 늘어지고, 이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죠.
그렇기에 저는 힘을 원합니다. 화나 ‘POWER’의 가사처럼, ‘힘을 원해’요. 저는 ‘어글리 정션을 유지시킬 돈’을 만들고 싶어요. 막 차를 사고 과시할 돈이 아니라, 어글리 정션 같은 정신을 유지시킬 돈을 얻고 싶고, 이를 통해 한국 힙합 신을 재미있게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너무 노잼이에요. 다 하던 거 하고.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발 저 많이 응원해주세요. 이 시도가 시도뿐인 흔적으로만 남아도 어쩃든 계속 도전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좋은 음악이 나올 수도 있겠죠. 1집은 성공했어요. 앞으로도 그렇다면 좋겠지만 늘 좋은 음악은 만들 수는 없겠죠. 그래도 1집은 좋았으니 됐어요.
팬분들 항상 고맙고, 저 열심히 지켜봐 주세요. 제가 ‘힙합스럽지 않은 행동’을 한다고 화내지 마시고요. 사실 뭐가 힙합스럽고 힙합스럽지 않은지를 따지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고... 저를 조금 더 좋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물론 감사하지만, 저를 더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필요해요. 저는 진짜 한국 힙합을 바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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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 가사는 전부 실화 바탕이라고 한다.
- 앨범 만들 때 내내 약 기운 때문에 졸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 스트리밍 버전에는 유통사가 실수로 앨범 제목의 따옴표를 빼고 Across the Ceiling... A1-A9라고 바꿔 버렸다고 한다. 추가로, 2번 트랙의 피쳐링인 격의 크레딧도 정상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유통사가 무능하다.인디 아티스트의 설움
- 2026년 5월 28일, Nest blurim의 인스타를 통해 한정반 CD가 발매되었다. 가격은 11,000원에, 사인도 원하면 받을 수 있다.
- 2026년 7월 10일, CD가 2차로 발매되었다. 저번과 달리 가격이 15,000원으로 올랐고, 사인도 받을 수 없다.[1]
- 2026년 8월 21일, 갑작스럽게 유튜브에 올라와 있던 리릭 비디오가 정지 당했었다. 네스트 블루림 본인이 올린 본인 앨범임에도 저작권 침해로 내려갔다고 한다. 유튜브가 잘못 판단한 듯하다.
[1] 11,000원으로 판매했을 때는 적자를 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