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30 11:09:24

후안 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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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피에르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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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LA_2003_WSChampion.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03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도루왕
루이스 카스티요
(플로리다 말린스)
후안 피에르
(콜로라도 로키스)

지미 롤린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루이스 카스티요
(플로리다 말린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도루왕
루이스 카스티요
(플로리다 말린스)
후안 피에르
(플로리다 말린스)
스캇 포세드닉
(밀워키 브루어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1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도루왕
자코비 엘스버리
(보스턴 레드삭스)
후안 피에르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코 크리스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브렛 가드너
(뉴욕 양키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안타왕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후안 피에르
(플로리다 말린스)
데릭 리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안타왕
데릭 리
(시카고 컵스)
후안 피에르
(시카고 컵스)
맷 홀리데이
(콜로라도 로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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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uan_Pierre.jpg
후안 드본 피에
Juan D'Vaughn Pierre
생년월일 1977년 8월 14일 ([age(1977-08-14)]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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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앨라배마 주 알렉산드리아 시
포지션 중견수,좌익수
투타 좌투좌타
신체 178cm, 81kg
종교 개신교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13라운드 (전체 390번 COL)
소속팀 콜로라도 로키스 (2000~2002)
플로리다 말린스 (2003~2005)
시카고 컵스(2006)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07~2009)
시카고 화이트삭스(2010~2011)
필라델피아 필리스(2012)
마이애미 말린스(2013)

1. 개요2. 선수생활3. 플레이 스타일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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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좌투좌타 외야수. 별명은 폭발적인 주력에서 비롯된 '총알탄'.

2. 선수생활

2.1. 마이너에서 메이저 데뷔

1977년 앨러배마 주에서 태어난 후안 피에르는 1998년 드래프트 13라운드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의 지명을 받고 마이너리그를 거쳐 2000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다. 2000년 중견수로 50경기에 출장하여 0.310의 타율과 7도루를 기록했으며 16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2001년에 풀타임 출장한 피에르는 0.327의 타율과 46도루 202안타를 기록하며 도루 1위, 최다안타 2위에 올랐으며, 2002년에는 47도루와 170개의 안타를 기록하였고 수비에서 경험이 쌓이면서 리그 평균수비율을 넘어서는 안정된 수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2.2. 플로리다 말린스

2003년 피에르는 전설의 먹튀 마이크 햄튼 처분 트레이드에 엮여서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한다. 당시 말린스의 주전 중견수 프레스턴 윌슨과 맞트레이드 되어 말린스의 중견수 자리에 무혈입성한 피에르는 0.305의 타율과 204안타 65도루를 기록하며 도루 1위, 안타 3위의 성적을 올렸으며 과거에 비해 볼넷이 증가하고 삼진이 감소하며 선구안에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에르는 젊은선수들 위주로 재편이 된 말린스에서 일약 활약을 하게되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0.303의 타율, 월드시리즈에서 0.333의 타율로 맹활약하여 팀의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함과 동시에 자신의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획득한다.

2004년엔 221안타를 기록 하여 내셔널 리그 안타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루이스 카스티요와 리그 최고 수준의 쌕쌕이 테이블 세터진으로 명성을 날렸다.

2.3. 시카고 컵스

하지만 2003년 월드시리즈 우승에도 돈이 없었던 플로리다 말린스는 FA를 1년 앞둔 후안 피에르를 처리하려 했고, 당시 중견수 자리에 약점이 있던 시카고 컵스로 팀을 옮긴다. 2006년에도 204안타를 기록하여 역시 NL 1위를 기록하였다. 그렇게 FA가 된 후안 피에르는 컵스를 떠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한다.

2.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당시 다저스는 중견수로 39세의 노장 케니 로프턴을 쓰고 있었다. 때문에 중견수 자리 보강을 위해 피에르에게 5년 44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견수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다저스로 옮긴 뒤 채 1년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계약자체가 대형계약이고 2006년 다저스의 외야진에 맷 켐프라는 초특급 유망주가 포텐셜을 터뜨리면서 '(좋은 선수인 것은 맞는데)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인가?'라는 비판이 따라 다녔고, 후안 피에르의 대형 계약 건은 당시 다저스 프런트의 최대 실책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피에르, 안드레 이디어, 켐프만으로도 외야가 꽉 차는데 이듬해인 2008년에는 앤드루 존스까지 영입. 결국은 존스에 밀려 주 포지션인 중견수에서 좌익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플래툰의 희생양이 되어 2008시즌 개막전에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바람에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이어진 연속경기 출전이 좌절[1]되기도 하였다. 2008년 시즌 막판에는 매니 라미레즈까지 트레이드되어 와서 아예 대주자요원으로 밀려나면서 연봉 900만달러짜리 대주자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2009년 시즌에도 출발은 벤치에서 시작했으나 매니가 약물 검사에서 걸려 50경기 출전정지를 당한 덕분에 비게 된 좌익수 자리에 복귀. 아이러니하게도 후안 피에르가 좌익수를 맡으면서 맹타를 휘두르며 쾌속질주했다. 원래 좌익수 자리에 매니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었던 '매니우드'가 '후안피에르우드'로 변경되고 티셔츠 등의 관련상품이 만들어질 정도.

그러나 정작 매니가 복귀하면서 다저스는 기세가 꺾였고 일찌감치 지구우승을 결정지을 것 같던 초반 기세와는 달리 시즌 종료 2게임을 남긴 시점에서 겨우 지구우승을 결정지을 정도로 고전했다. 그리고 한시즌 내내 골칫거리로 전락한 매니 라미레즈 덕분에 결국은 다저스는 그 전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고배를 들었다.

2.5. 시카고 화이트삭스

다저스 에서 수모를 겪은 피에르는 09 시즌 종료후 구단에 프런트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외야진의 교통정리가 필요했던 다저스도 피에르를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하여 2010 시즌엔 타격은 .275로 부진했지만 68도루를 기록하여 AL 1위를 기록 한다. 2011년 9월 9일엔 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전에서 2000안타를 기록 하였다.

2.6.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1시즌 종료후 FA로 풀렸으나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하였고, 2012년 1월말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하고 나서, 스프링 캠프에 초대선수로 입단하였으며 개막전 로스터에 진입하여 정식으로 8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해 필리스 소속이 되었다. 시즌 내내 좌익수로 출장하였으며, 최종 성적은 .307 121안타 25타점 37도루(팀 내 최다)/7실패로 몸값을 생각하면 쏠쏠한 활약을 해줬다.

2.7. 마이애미 말린스

2012년 시즌이 끝나고 다시금 FA가 되었고 과거에 한 시절을 보냈던 팀인 마이애미 말린스로 복귀하였다. 계약 조건은 1년 160만 달러. 또 한 차례의 파이어세일 이후 뎁스가 약해 빠진 마이애미의 주전 좌익수로 뛰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2013년 5월 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3루도루를 성공시켜 600 도루 기록을 달성하였다. 이는 MLB 18번째 기록이다.

2013시즌에는 23도루를 기록하는 등 여전한 스피드를 보여줬으나, 타율이 0.247까지 떨어지면서 노쇠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모습을 보였다. 말린스와의 1년 계약이 끝난 뒤에는 팀을 구하지 못한 채 1년을 보냈고, 결국 2015년 2월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를 선언한 후 통산 20홈런을 못 채운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전형적인 올드타입 리드오프 타자이며 뛰어난 스피드, 꾸준한 플레이 능력를 가진 선수였다. 엄청난 노력파 선수로 파워가 약한 자신의 약점을 스피드와 뛰어난 수비능력으로 커버한 선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송구 불안은 그의 최대 약점으로 꼽혔으며, 발이 빨랐지만 주루 센스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연평균 40도루 이상을 보장하는 선수임에도 풀타임 이후 매년 도루 실패도 두자릿 수를 기록했고, 도루자 리그 1위를 기록한 시즌은 무려 7번이나 된다. 그래도 통산 도루 성공률이 75%를 넘는 우수한 주자였다.[2]

통산 성적은 14시즌 통합('00~'13) - 타율 .295 출루율 .343 안타 2217개 도루 614개(역대 18위), 홈런 18개. 50삼진 이상 당한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적극적인 타격을 한 전형적인 배드볼 히터 계열의 리드오프 타자다. 그런 만큼 볼넷도 적은지라 출루율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다.

통산 성적으로 보면 2000년대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만큼 꾸준하면서도 튼튼한 몸을 가진 안타제조기 리드오프, 도루 스페셜리스트는 명전이 예약된 스즈키 이치로를 뺀다면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파워가 약하다, 어깨가 약하다 등으로 항상 저평가당해온 선수. 수천만 달러의 다년계약 시절이나, 수십만 달러의 단년계약 시절이나 꾸준한 기량을 보여준 선수였기에 어느 한 팀에서 오래 뛰었다면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하서 좀 더 나은 위상이었을 선수[3]. 고타율에 비해 낮은 출루율-장타율, 폭발적인 주루능력에 비해 많은 도루자, 넓은 수비범위에 비해 약한 어깨 등 항상 단서조항이 따라붙었던 선수였다. 커리어 초창기를 홈런이 뻥뻥 터지던 스테로이드 시대에 보내고, 커리어 중후반에 들어서는 공격능력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평가가 가능해진 세이버매트릭스가 대중화되며[4] 전형적인 슬랩히터인 피에르에 대한 평가도 낮아진,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수. 아마 투고타저가 만연하고 타율과 스피드가 강조되던 70~80년대의 환경에서 뛰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단타자는 포드를 몰지만 홈런타자는 캐딜락을 몬다'라는 격언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커리어 통틀어 최다연봉을 수령할 적에도 딱 1천만 달러였을 만큼 이 선수에 대한 대접은 포드만도 못했다.

4. 여담

  • 이름은 '후안'이고 성도 라틴스러운 '피에르'이지만 라티노는 아니다. 그냥 남부지방 출신의 미국 흑인이다. 이름은 태어날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명투수 후안 마리샬의 팬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마리샬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었다.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는 꽤 많은 팀을 옮겨다니면서 준수한 컨택/월등한 스피드 능력치로 레어카드를 뽑아 주었기에 팀올유저들이 주전 중견수로 애용한다. 대표적으론 플로리다/시카고 컵스 올스타에 많이 쓰인다.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첫해인 2019년 득표에서 0표를 기록, 곧바로 광탈했다.

5. 관련 문서





[1] 162경기씩 5년, 즉 810경기 연속출전[2] 세이버매트릭스가 퍼져나가며 도루의 가치가 감소했고 도루성공률이 75%를 넘지 못하면 주자가 도루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되면서 도루를 많이 기록한 선수들에 대하여 재평가가 일어났는데, 피에르는 세이버매트릭스 관점에서 봐도 확실히 좋은 주자는 맞았다.[3] 비슷한 이유로 저평가받은 저니맨 리드오프로는 팀 레인스, 케니 로프턴 등이 있다. 다만 이들은 피에르보다 출루, 도루능력이 뛰어났기에 이후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커리어 재평가로 명예의 전당 입성 지지 여론이 강해져 레인스같은 경우는 턱걸이로 입성하기까지 한, 피에르보다 한 급수 높은 선수들이다.[4] 재미있게도 동시대에 피에르와 정 반대의 플레이스타일(저타율/고출루율+장타율의 OPS 히터, 인플레이 타구가 적고 홈런/삼진/볼넷이 많음, 절망적 수비주루 능력의 코너 외야수/1루수/지명타자)을 갖고 플레이한 애덤 던과 커리어 통산 WAR이 거의 동일하다. https://grantland.com/the-triangle/adam-dunn-juan-pierre-why-we-need-wins-above-replacement-stat/ 물론 WAR을 쌓아올린 경로(던은 공격 WAR을 수비/주루/포지션 보정이 깎아먹은 반면 피에르는 그 반대였다) 는 매우 다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