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2-30 06:21:28

베이브 루스

Babe Ruth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32448>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뉴욕 양키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91919,#fff
<rowcolor=#fff> 1936 1939 1946 1948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Ruth%20Babe%20Plaque_NBL.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Gehrig%20Lou%20Plaque%20169_NBL.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Keeler%20Willie%20Plaque_NBL.png 파일:Jack Chesbro HOF.webp 파일:Herb Pennock HOF.png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윌리 킬러[1] 잭 체스브로 허브 페녹[2]
<rowcolor=#fff> 1953 1954 1955 1957 1964
파일:Ed Barrow HOF.webp 파일:Dickey BIll Plaque 279_NBL_0.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DiMaggio%20Joe%20Plaque%20281_NB_0.png 파일:Joe McCarthy HOF.png 파일:Miller Huggins HOF.webp
에드 배로 빌 디키 조 디마지오 조 맥카시 밀러 허긴스
<rowcolor=#fff> 1966 1967 1969 1970 1971
파일:Stengel Casey Plaque 295_N.png 파일:Red Ruffing HOF.png 파일:Waite Hoyt HOF.png 파일:Earle Combs HOF.webp 파일:George Weiss HOF.webp
케이시 스텡겔 레드 러핑 웨이트 호이트 얼 콤스 조지 와이스
<rowcolor=#fff> 1972 1974 1978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Berra%20Yogi%20Plaque%2074_NBL_0.png 파일:Lefty_Gomez_HOF.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Ford%20Whitey%20Plaque_NBL.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Mantle%20Mickey%20Plaque_NBL.png 파일:Larry MacPhail HOF.webp
요기 베라 레프티 고메즈 화이티 포드 미키 맨틀 래리 맥페일
<rowcolor=#fff> 1991 1994 2001 2008 2009
파일:Tony Lazzeri HOF.webp 파일:Rizzuto Phil Plaque_NBL.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Winfield%20Dave%20Plaque_NBL.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Gossage%2C%20Rich.png 파일:Joe Gordon HOF.png
토니 라제리 필 리주토 데이브 윈필드[3] 구스 고시지 조 고든
<rowcolor=#fff> 2013 2014 2019 2020 2025
파일:Jacob Ruppert HOF.webp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torre_plaque.png 파일:MR42.png 파일:A149F1AA-75EC-492A-A447-171785AEB6CA.jpg 파일:사바시아HOF.webp
제이콥 루퍼트 조 토레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 CC 사바시아

[1] 모자는 브루클린 슈퍼배스 모자를 쓰고 입성했다.[2] 모자는 보스턴 레드삭스 모자를 쓰고 입성했다.[3] 모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모자를 쓰고 입성했다.
}}}}}}}}}}}}

<colbgcolor=#082574><colcolor=#fff> 파일: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로고.svg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if 결과 == null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Ruth%20Babe%20Plaque_NBL.png
<colcolor=#fff> 베이브 루스
Babe Ruth
<colbgcolor=#082574> 헌액 연도 1936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파일: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로고.svg
}}}
#!if 결과 != null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tablecolor=#373a3c,#ddd><nopad>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Ruth%20Babe%20Plaque_NBL.png|width=250]] ||
||<-2><bgcolor=#cf000a><colcolor=#fff> '''{{{+2 베이브 루스}}}[br]Babe Ruth''' ||
||<colbgcolor=#082574> '''헌액 연도''' || [[1936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95.13% (1회) ||
||<-2> [[https://baseballhall.org/hall-of-famers/Ruth-Babe|[[파일: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로고.svg|width=25]]]] ||

}}}}}}}}} ||
파일:베이브루스.jpg
<colbgcolor=#132448><colcolor=#ffffff> 뉴욕 양키스 No.3
베이브 루스
Babe Ruth
본명 조지 허먼 루스
George Herman Ruth
출생 1895년 2월 6일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사망 1948년 8월 16일 (향년 53세)
뉴욕주 뉴욕시
국적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틀:깃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기 명칭}}}{{{#!if 출력 != null
}}}}}}]]
#!if 기 == null && 문서 == null
[[틀:깃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깃발.svg|width=24]]}}} {{{#!if 출력 == null
깃발 명칭}}}{{{#!if 출력 != null
}}}}}}]]
#!if 기 == null && 깃발 == null
[[미국|{{{#!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width=24]]}}} {{{#!if 출력 == null
미국}}}{{{#!if 출력 != null
}}}}}}]]
학력 세인트 메리스 고등학교
신체 188cm | 97kg
포지션 투수투타겸업(투수, 좌익수[1])우익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14년 현금 트레이드 (BOS)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 (1914~1919)
뉴욕 양키스 (1920~1934)

보스턴 브레이브스 (1935)
지도자 브루클린 다저스 코치 (1938)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4. 위상과 영향력
4.1. MLB에 미친 영향4.2. 루스빠4.3. 루스의 그늘에 가려진 스타
5. 후일담6. 어록7. 통산 성적
7.1. 투수 기록7.2. 타자 기록7.3. 통산 1위 기록
8. 여담
8.1. 선수 시절 관련
8.1.1. 예고 홈런(Called Shot)8.1.2. 베이브 루스와 삼진
8.2. 개인사 관련
8.2.1. 여성 관련
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1. 개요


“The most important thing that a young athlete must do is pick the right sport. Not one that they like just a little bit, but one that they love. Because if they don’t really love their sport, they won’t work as hard as they should. Me? I loved to hit.”
"어린 운동 선수들이 반드시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종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냥 조금 좋아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택해야 합니다. 그 종목을 그닥 사랑하지 않는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요? 저는 공 치는 걸 가장 사랑했습니다." #
미국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 前 야구 선수. 포지션은 경력 초기에는 투수, 이후 우익수였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아이콘 격으로 인식되는 선수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최초의 5인으로 헌액되었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베이브 루스/생애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베이브 루스/생애#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베이브 루스/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베이브 루스 157 340 417 79[2]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Right Field (1st)
career WAR7yr-peak WARJAWS
베이브 루스 163.1 84.7 123.9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73.2 43.0 58.1

4. 위상과 영향력

역사상 최고의 통산 성적, 투수/타자 모두 리그 최정상급의 활약을 보이며 성공을 거두었다는 임팩트[3] 이외에도 단타 위주의 타격 접근법이 유행했던 데드볼 시대에서 장타 위주의 타격 접근법이 유행하기 시작한 라이브볼 시대를 개막시킨 장본인으로서, 야구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이자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 # # # #

그는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영향력과 통계적 지표 모두 야구 역사상 최고로 평가받는다. 우선 세이버메트릭스로 분석한 루스의 투타 통산 WAR은 fWAR 179.4, bWAR 182.5인데 시대를 풍미한 명전급 선수가 보통 6~80 정도의 WAR를 기록하고 랜디 존슨, 그렉 매덕스, 루 게릭, 스탠 뮤지얼 같은 자기 포지션에서 역사상 TOP 5 내에 드는 위대한 선수가 100 초반대를 기록한 것을 볼 때 루스의 WAR은 범접 불가 수준이라 볼 수 있다. WAR을 고려하면 이론적으로는 그를 셋으로 갈라도 셋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이 가능하다. 루스의 타격 WAR은 160 정도로, 이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2위로 자주 여겨지는 윌리 메이스보다 조금 높은 수치이다.[4] 그러나 루스는 투수까지 했으므로 그것까지 합치면 메이스와 무려 25 가까이 차이나며, 약물의 힘을 빌린 본즈보다도 20 가까이 더 높다. 야구에서 WAR 25가 가지는 가치를 생각해보면 루스의 GOAT 자리가 얼마나 굳건한지 알 수 있다.

2020년대 이후로 축구, 미식축구 등 다른 스포츠에서 GOAT가 갱신되거나 도전받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으나 야구는 현재 패러다임의 변화, 투타겸업의 어려움, 리그 수준 상승 등 엄청난 제약 조건이 많기 때문에 GOAT가 교체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고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루스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라이브볼 시대 개막이라는, 야구라는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꾼 정신 나간 업적으로 인해 상징성마저 야구 스포츠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루스의 야구 GOAT 자리가 완전히 교체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루스의 통산 WAR를 넘어서는 것밖에 없다. 이마저도 루스는 그 종목의 상징이 된지 오래이기에 축구의 펠레처럼 루스를 넘어서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나오더라도 GOAT 라인에서 루스가 빠질 확률은 없다. 훗날의 오타니 쇼헤이처럼 투타겸업을 더 높은 수준으로 성공시켜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으나, 그것은 이미 루스가 과거 성공시켰던 바이다.

배리 본즈가 루스급 성적을 기록하고 약물 의혹이 터졌을 때 모두가 약물 복용 사실을 믿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본즈가 말년에 갑자기 낸 루스급 성적이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약본즈가 냈던 성적이 루스를 능가하는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이후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해 루스의 최전성기 성적은 타격에서 약본즈랑 별로 차이가 나지 않고, 수비는 1998년까지의 본즈에 비하면 한참 밑이더라도 최소한 약본즈보다는 우위에 있는 것으로 드러나 그 위상이 재확인되었다.

이후 시간이 더 지난 2020년대에는 투타겸업의 후계자인 오타니 쇼헤이와 본인급으로 리그를 지배하는 타격 성적을 올리는 까마득한 팀 후배 애런 저지가 등장하며 야구 GOAT인 루스의 이름이 100년 만에 본격적으로 다시금 야구 팬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그런데 루스는 오타니처럼 투타겸업을 하면서, 타자로 전향한 뒤에는 저지 이상의 타격성적을 매 시즌 올렸다는 사실[5]이 밝혀지며 현존하는 야구계 최고의 두 선수이자 야구 역사에도 유의미한 임팩트를 남긴 두 선수의 장점만을 합친 선수로 현대에도 평가가 떨어지기는커녕 더 높아지고 있다.

또한 단순히 야구를 넘어서 분야 불문 미국 사회가 최전성기를 보내던 당시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북미 스포츠 사상 유이한 선수이기에[6] 자연스레 북미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루스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최고였지만, 특히나 홈런을 치는 능력은 역대 최고였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홈런 생산력을 보여주었는데, 매년 기록한 홈런 개수가 다른 선수들이 아니라 다른 웬만한 구단보다 많았을 정도이다. 단타 위주의 시대였던[7] 데드볼 시대를 끝내고 '홈런의 시대'인 라이브볼 시대를 열었으며, 소속 팀 뉴욕 양키스도 그의 활약과 관중 동원력을 바탕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1920년부터 도입된 라이브볼 때문에 루스가 아니더라도 홈런의 시대가 왔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들도 루스가 그 시작을 훨씬 앞당겼다는 것만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데드볼 시대 말기인 1919년에 29홈런을 쳤는데, 그 전까지 다른 선수들은 기껏해야 두 자릿수 홈런을 겨우 쳐내는 수준이었다.

이렇듯 루스는 앞으로 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역대 최고의 성적, 야구라는 스포츠에 남긴 불멸의 영향력, 심지어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 당대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역사적 상징성까지 합쳐 야구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남았기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에게 는 앞으로도 그와 비견되거나 그를 능가할 수 있는 선수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4.1. MLB에 미친 영향

파일:5zb4gXR.gif
1923년 4월 18일, 양키 스타디움 구장의 첫번째 홈런을 날린 순간

그가 MLB에 남긴 영향은 엄청났다.
  • 먼저 그는 MLB를 미국 최고의 스포츠로 만들었다. 1910년대 MLB는 블랙삭스 스캔들레이 채프먼 빈볼 사망 사건으로 분위기가 굉장히 어수선했다. 그리고 당시 슈퍼 스타인 타이 콥 역시 선수로서 말년이었는데 루스가 타자로서 등장하면서 홈런을 뻥뻥 때려내더니 급기야 50홈런을 돌파하자 사람들은 루스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이는 MLB의 인기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야구는 미국 최고의 스포츠가 되었다.
  • 그리고 홈런을 대중화시켰다. 루스를 인기 스타로 만든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시 MLB는 데드볼 시대로 극단적인 투고타저 시대였고 그 만큼 유명 투수들은 많았으나[8] 타격 쪽으로는 상당히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타자들은 배트를 짧게 잡으며 단타와 도루 위주의 야구를 펼쳤고, 홈런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투수들이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1점을 내기 위해선 여러 명의 선수가 안타를 치면서 협력하는 것이 야구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루스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루스는 배트를 길게 잡고 풀 파워로 휘두르며 1점을 내기 위해 연속 안타나 상대의 실수가 필요했던 야구에서 마치 일발역전의 필살기처럼 단 한 번의 스윙으로 점수를 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루스는 이렇게 홈런를 위시한 장타 위주의 타격을 하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와 흥분을 더했으며 타구 하나에 최대 4점을 내는 스포츠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1920년대 후반 이후 홈런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루 게릭, 지미 폭스, 행크 그린버그, 테드 윌리엄스, 미키 맨틀, 행크 애런, 윌리 메이스, 배리 본즈, 켄 그리피 주니어, 알버트 푸홀스 등의 홈런 타자들이 대거 등장해 홈런과 장타에 관한 여러 기록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거기에다 최근 세이버메트릭스의 발전으로 장타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며 루스는 시대를 앞서간 타격을 한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루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토니 그윈 같은 타자들만 보고 있었을 수도 있다.[9]
  • 세 번째로는 선수들의 연봉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슈퍼스타 루스의 연봉은 천정부지로 올라갔으며 이는 동시에 같은 팀, 같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 인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아래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명예의 전당 투수이자 동료였던 웨이트 호이트는 "루스에게 행운이 있기를"이라면서 기도 했을 정도로 루스의 성적은 다른 선수들의 연봉과도 직결됐다. 1920년대부터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만큼 프로 야구 선수들의 연봉은 동시대 그 어느 스포츠 선수들보다 비교적으로 높았으며 현재까지도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이 MLB이다.
  • 뉴욕 양키스를 강팀으로 만들었다. 루스가 영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양키스는 현재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약팀이었다. 그런데 루스가 들어오자 엄청난 돈을 거둬들였고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은 팀 중 하나로 발돋움하였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야구 팬이 아닌데도 NY 마크가 있는 모자를 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우승을 27번이나 한 초강팀으로 매 시즌 우승 후보로 등극할 수 있게 기틀을 다진 것 역시 루스가 양키스에 입단한 1920년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4.2. 루스빠

워낙 남긴 기록이 엄청난 데다, 광란의 시기라 불리던 대호황의 1920년대를 대표하던 미국만의 스포츠에서[10] 황제의 자리에 오른 백인 선수다 보니 미국 내 보수적인 백인들, 특히 북부의 중산층 백인들 중심으로 자연스레 루스 빠돌이들이 형성되었고, 그게 미국의 자존심처럼 변질되어서 한때 루스의 홈런 기록을 넘어서려는 선수들에게는 온갖 원색적인 비난과 협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로저 매리스의 시즌 61호 홈런

이에 대한 대표적 사례가 바로 로저 매리스. 매리스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61개로 홈런 신기록을 세웠을 때, 다른 곳도 아닌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루스는 151게임 만에 60개 쳤는데, 매리스는 161게임 만에 61개 쳤으니까 신기록이 아니다"라고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으며, 그해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음에도 상처와 비난만 잔뜩 받은 채 시즌을 끝냈다. 오죽하면 매리스는 나중에 "내가 61홈런을 치고 얻은 게 뭔지 아는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매리스의 61홈런 기록에 별표(*)를 붙여 역대 기록에서 루스와 차별했다고 많이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11] "별표를 각주 위치를 표시하는 데 사용하는 야구 기록 분야의 관행상, 오히려 신기록이라는 뜻으로 붙였던 게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주장도 있으나, 당시의 모든 기록에는 별표가 붙어 있었고 매리스 자신도 인정했으니 굳이 얼버무릴 것 없다. 매리스와 미키 맨틀, M&M 듀오의 활약을 그린 HBO의 드라마 '61'도 정식 제목은 별표를 붙인 61*이다. 결국 매리스 사후인 1994년에야 당시 커미셔너 페이 빈센트가 별표를 떼어 주었다. 매리스의 홈런 기록을 둘러싼 이 루머는 의미가 확장되어, 현대 야구에서도 비공식적인 기록이나 약물 복용 등 불명예스러운 방법을 통해 달성한 기록에 별표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974년에 행크 애런이 통산 714홈런 기록을 넘어설 땐 마침 행크 애런이 흑인이기도 해서, 인종 문제까지 들어가면서 루스 빠돌이들이 하루에도 수천 통에 달하는 살해 협박 편지를 보냈다. 그러니까 대략 "깜둥이 주제에 감히 베이브 루스 님의 기록을 넘는다면 죽을 줄 알아라" 따위의 협박을 한 것. 베이브 루스의 아내인 클레어 매릿 루스(1900~1976)는 남편 기록이 깨지는 걸 남편이 가장 기대할 것이라면서 이런 협박은 그만두라는 말로 응수했다. 그리고 실제로 애런이 715번째 홈런을 쳤을 때 베이스를 돌던 중 백인 관중 2명이 난입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는데, 당시 경기장에서 지켜보던 애런의 아버지는 그 관중이 애런을 칼로 찌를까 봐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물론 난입한 백인 관중 2명은 다행히 인종차별주의자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애런의 홈런 기록에 기쁨을 이기지 못해 난입한 팬일 뿐이었고, 애런이 베이스를 돌 때 같이 방방 뛰며 크게 기뻐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루스는 백인이었지만 두툼한 입술에 흑인 같은 모습이라서 상대 선수들이 "깜둥이가 흰 칠하면 저놈이다"라며 야유했었다는 것. 선수 시절에 루스와 사이가 나빴던 타이 콥 같은 경우는[12] "너 정말 백인 맞냐?" 하고 비꼬는 바람에, 루스가 "나를 돼지라고 하면 모를까 깜둥이라고 하면 죽여버린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그를 포함한 메이저리그 올스타를 초청하여 일본 올스타 팀과 함께 친선 경기를 열기도 했다. 이때 루스는 대학생 선수에게 두 번이나 삼진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일본군에 "천황 폐하께 저주를"이라고 도발하자, 일본군이 이에 대응하여 "베이브 루스에게 저주를"이라고 맞받아친 일화도 유명하다. 지금도 도쿄 돔 지하에 있는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는 베이브 루스의 몇 안 되는 친필 사인 볼이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와 친선 경기를 가졌던 일본 올스타 팀은 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체가 되며, 일본 측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선수가 바로 일본 사와무라상에 이름이 붙여진 사와무라 에이지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오타니 쇼헤이의 인기도 루스의 후광을 무시할 수 없다. 오타니의 투타겸업을 미국의 매체들은 'Japanese Babe Ruth'로 포장했고 실제로 루스 이후 100년 만에 다시 시도하는 도전이다 보니 루스의 재림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이 매우 성공적이었고 실제로 오타니의 각종 기록들로 인해 약 90여년전의 루스의 기록들이 다시금 회자되고있고 , 그 덕에 리그 전체가 상당한 흥행을 맛보고 있다.

4.3. 루스의 그늘에 가려진 스타

이렇게 루스가 엄청난 활약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활약상이 덜 부각되거나 부당하게 폄하된 이들도 있었다. 그것도 같은 양키스 팀 출신으로서.
  • 루 게릭: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루스보다 이 선수의 이름을 훨씬 많이 알고 있다. 이 선수의 이름을 딴 루게릭병이 있기 때문. 선수 시절에는 3번 루스와 함께 4번 타자로서 4~5년 동안 양키스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다. 1927년에는 47홈런에 단일 시즌 역대 5위에 해당하는 173타점, OPS 1.240 등으로 MVP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같은 해에 루스가 그 유명한 단일 시즌 60홈런을 기록해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다. 이후 루스가 하향세에 들어선 1933년부터는 게릭이 팀의 타선을 이끌며 1934년 트리플 크라운, 1936년에는 MVP를 수상했다.
  • 로저 매리스: 1961 시즌에 61홈런을 달성하며 베이브 루스의 단일 시즌 60개 홈런 기록을 넘어섰던 선수로, 61년이 지난 2022년에 팀 후배 애런 저지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아메리칸 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자였으며, 금지약물 복용 선수를 제외하고 진정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자였다. 그러나, 베이브 루스를 넘었다는 점에서 받은 비난과 너무나도 짧은 전성기, 호지킨 림프종으로 인한 요절 등 개인사는 상당히 불행한 인물이었다.

5. 후일담

2000년대 들어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배리 본즈 등의 홈런 쇼로 루스도 점점 묻혀가나 했으나, 이들의 기록이 약물 복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짙어지면서, 다시 '진정한 홈런왕은 루스와 애런이다'라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애런 역시 자서전에서 암페타민 복용을 시인했고, 루스에게도 약물 복용 루머가 있다.

어느 시대나 시대적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 차이를 무시하고 다른 시대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1 대 1로 비교해선 안 된다. 루스의 60홈런은 현대 기준으로도 물론 그 위엔 약쟁이들밖에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록이지만, 당시 기준으론 그야말로 불멸의 기록이었다. 현대 기준으로 초라한 기록을 낸 데드볼 시대의 타자들이 다 쓰레기였다고 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기준에서 경쟁을 했고 그 중에서 홈런왕, 타격왕을 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업적이다. 지금 기준으로도 뛰어난 기록을 남긴 사이 영은 추앙하면서, 루스보다 앞선 시기에 4년 연속 홈런왕을 기록한 존 프랭클린 베이커를 통산 96홈런이란 이유로 허접 취급한다면 그야말로 코미디다.

물론 사이 영이 더 위대한 레전드란 차이는 있겠지만 포인트는 당시의 업적은 당시의 기준으로 봐야지, 후대의 기준을 갖대다는 건 말이 안된다. 설령 애런이 엠페타민을 복용하고 루스가 양의 고환 추출물을 주사했다고 해도 당시 선수들에겐 이게 부정행위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한국 선수들 중에는 보약을 먹는 선수들도 있고 안 먹는 선수들도 있다. 실제로 허재도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었으며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면 이들은 보약을 먹는 게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당당히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 보약이 불법 약물 취급된다면, 갑자기 허재가 소급해서 약쟁이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의 기록은 보약을 실제로 먹었던 안 먹었던 먹을 수 있는 동일한 자격을 갖춘 선수들 사이에서 동등하게 경쟁하며 이뤄낸 것이기 때문이다. 애런과 루스도 마찬가지다. 이 선수들이 활동할 당시 이런 약품들은 불법이나 부정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다. 불법도 전혀 아니며, 이 때문에 그들이 남긴 기록에 수상한 눈초리를 보낼 이유도 없다. 추가로 애런이나 루스가 "시대를 잘 타고나서" 경기력 향상 약물을 해서 기록에 이득을 봤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들은 그런 원시적 약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수생활에 득이 되는 현대 수준의 체계적인 영양 관리와 체력 관리 시스템을 받지 못했다. 즉, 현대 선수들처럼 경기 전후에 철저하게 단백질 보충과 영양사가 관리한 식단, 마사지와 사우나 찜질로 피로 풀기, 최고급 전용기, 최고급 호텔, 전문 트레이너의 운동 지도 및 관리, 트랙맨 시스템을 비롯한 최첨단 과학이 적용된 운동 분석 장비, 전문가들의 비디오, 세이버메트릭스 분석, 건강검진 등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서 이득을 보는 것은 상대 투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당시 타자들이 경기력 면에서 딱히 손해를 봤다고 보긴 힘들겠지만, 저렇게 관리를 받으면 선수 생활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통산 기록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1세기 최고의 슈퍼스타인 알버트 푸홀스는 3-4살 정도 나이를 속였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아왔는데도 불구하고 22년차이자 공식 나이로 만 42세 시즌인 2022년에 시즌 20홈런을 넘기며 통산 700홈런까지 달성하였다.

물론 루스 본인도 관리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흔히 오해받는 것과는 다르게 그의 초월적인 신체는 분명 대단했지만 엄연히 과부하와 노화 앞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몸이었다. 1922년 시즌 직후 지미 워커[13] 등의 후원자들이 루스의 불량한 태도를 지적하자, 이를 부끄럽게 여긴 루스는 다음 스프링캠프까지 95kg로 감량하는 것에 성공했고, 그의 양키스 시절 최고의 몸 상태였다고 한다.[14] 30세가 된 1925 시즌에는 이제 더 이상 타고난 신체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PT를 고용해 달리기, 복싱, 핸드볼, 줄넘기, 스프린트, 메디신 볼 등으로 신체를 단련했다. 또다시 하락세가 오던 34세 시즌부터는 부인 클레어가 철저하게 식단과 운동 시간을 관리해서 몇 년 더 리그 최상급 선수로 군림하는데 성공했다. 만 37세 시즌에는 드디어 어찌할 수 없는 완만한 하락세를 겪으며 40세에 은퇴를 했는데, 루스가 만 30세부터 무려 10년 가까이 더 야구를 지배한 것은 그의 철저한 자기 관리 덕분이었다. 즉, 세간에 오해받는 것과는 달리 루스는 신체만 축복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관리도 대단히 철저했던 것이다. 다만 상위 문단에 언급된 온갖 최첨단 몸 관리와는 비교가 부끄러울 정도로 원시적인 것이었고,[15] 루스가 오늘날의 혜택을 받았다면 오히려 더 경쟁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가 죽은 1948년의 이듬해인 1949년부터 월드 시리즈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2007년부터는 월드 시리즈뿐만이 아니라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가장 활약한 선수에게 베이브 루스 상(Babe Ruth Award)을 수여하고 있다. 베이브 루스는 월드 시리즈 통산 투수로서 3경기 31이닝을 던지며 3승 평균 자책점 0.87, 타자로서 타/출/장 326/467/744, 15홈런 33타점을 기록하였으므로 투타 통틀어 최고의 선수였던 것을 기리는 점이다. 월드 시리즈 MVP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월드 시리즈 MVP는 MLB 사무국에서 주는 거고, 베이브 루스 상은 미국 야구 기자 협회(BBWAA)에서 수여한다는 것이 차이점. 또한 1947년 4월 27일은 후두암으로 고생하던 베이브의 쾌유를 위해 베이브 루스의 날로 제정되었다.

참고 자료

6. 어록

앞서 언급했듯이 험하게 자란 베이브 루스인지라 어록 역시도 험한 것이 많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이 벌어들인 이득의 일부를 받아야 합니다. 야구가 은행이나 보드빌 쇼랑 다르다고 하지 말라고요. 말하건대 이건 비즈니스입니다. 고상한 감정 따위 없어요. 잡소리 그만합시다."
ㅡ 1922년, 5만 2천 달러를 요구했을 때.

"What the hell has Hoover got to do with it? Besides, I had a better year than he did."
"(내가 요구한 연봉이) 허버트 후버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오? 게다가, 내 올해 성적은 그 자보다 낫지 않소."
ㅡ 1930년, 연봉 8만 달러가 너무 많지 않냐는 비난에 응답하면서.[16]

"모든 메이저리거의 아내와 아이들은 식사하기 전에 '루스에게 행운이 있기를'이라고 기도해야 한다"
ㅡ 팀 동료였던 웨이트 호이트[17]

"콥은 재수 없는 인간이야. 하지만 공 한번 잘 치지. 하느님 맙소사, 진짜 끝내주게 잘 쳐!"[18]
ㅡ 1920년 7월 12일, 타이 콥을 두고 한 말. 물론 신문에 나갈 때는 검열 처리되었다.[19]

"야구가 아니었다면 저는 교도소나 공동묘지에 있었을 겁니다. (후략)"
ㅡ 1996에 프레드 리브(Fred Lieb)가 쓴 《내가 알고 있는 야구(Baseball as I Have Known It)》에서 발췌된 말. 당연하지만 거기서 일한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을 거라는 말이다.

"애송이, 충고 하나만 해줄까. 놈들이 너에 대해 좋게 쓰든 나쁘게 쓰든 아무것도 믿지 마. 두 번째, 벌이가 좋을 때 벌어놔. 하지만 그걸 억지로 벌려고 고생하지는 말고. 그리고 너무 많이 쏘지 말고!"
ㅡ 레드 그레인지에게 충고를 했을 때.[20]

"저는 최대한 휘두르고, 최대한 공을 맞히려고 합니다. 권투에서 당신의 주먹이 사람을 때릴 때는 대개 멈추게 되지만, 손을 멈추지 않는다면 어렵게나마 맞힐 수 있습니다. 저는 같은 식으로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배트를 단단히 잡을수록 공을 잘 맞힐 수 있으며 멀리 날아가게 합니다. 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세게 휘둘렀습니다. 전 세게 치거나 크게 놓쳤습니다. 전 가능한 한 크게 사는 걸 좋아합니다."

"스트라이크를 먹을 수록 나는 다음번 홈런에 가까워진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여러분 들으시기에 제 목소리가 영 좋지 않지요. 뭐 저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랍니다. 우리네들의 야구 경기는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되지요.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말이에요. 그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야구 경기란 어떤 것인가를 배우고, 또 이렇게 선수가 되어 팀들을 대표해서 뛰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관람하러 경기장을 찾기도 하지요. 제 생각에 이 세상에서 진정한 운동 경기란 야구가 아닐까 합니다.[21]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에게 풋볼 공이나 야구공 같은 것을 던져 주고, 금세 자연스레 운동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요. 하지만 야구에서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아요. 야구는 예닐곱 살 시절부터 저 아래 바닥에서 시작해야만 합니다. 열네다섯 살이 되기까지 기다려서는 안 되지요. 어렸을 때부터 야구와 함께 자라나야 합니다. 만약 정말 열심히 한다면, 여기 함께한 이들처럼 마침내 꼭대기의 자리에까지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 저에게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렇게 모두에게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쁩니다.(Thank you very much, ladies and gentlemen. You know how bad my voice sounds. Well, it feels just as bad. You know, this baseball game of ours comes up from the youth. That means the boys. And after you're a boy and grow up to play ball, then you come to the boys you see representing clubs today in your national pastime. The only real game in the world, I think, is baseball. As a rule, people think that if you give boys a football or a baseball or something like that, they naturally become athletes right away. But you can't do that in baseball. You got to start from way down, at the bottom, when the boys are six or seven years of age. You can't wait until they're 14 or 15. You got to let it grow up with you, if you're the boy. And if you try hard enough, you're bound to come out on top, just as these boys here have come to the top now. There have been so many lovely things said about me today that I'm glad to have had the opportunity to thank everybody.)"
ㅡ 1947년 4월 27일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고별사 중.

7. 통산 성적

7.1. 투수 기록

파일:MLB 로고.svg 베이브 루스의 역대 MLB 투수 기록
<rowcolor=#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14 BOS 4 2 1 0 0 23 3.91 21 1 7 0 3 1.217 70 0.0 -0.3
1915 32 18 8 0 0 217⅔ 2.44 166 3 85 6 112 1.153 114 2.5 2.4
1916 44 23 12 1 0 323⅔ 1.75 230 0 118 8 170 1.075 158 4.5 8.8
1917 41 24 13 2 0 326⅓ 2.01 244 2 108 11 128 1.079 128 3.3 6.5
1918 20 13 7 0 1 166⅓ 2.22 125 1 49 2 40 1.046 122 1.5 2.3
1919 17 9 5 1 0 133⅓ 2.97 148 2 58 2 30 1.545 102 0.5 0.8
<rowcolor=#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20 NYY 1 1 0 0 0 4 4.50 3 0 2 0 0 1.250 94 0.0 -0.1
1921 2 2 0 0 0 9 9.00 14 1 9 0 2 2.556 49 -0.2 -0.3
1930 1 1 0 0 0 9 3.00 11 0 2 0 3 1.444 150 0.2 0.2
1933 1 1 0 0 0 9 5.00 12 0 3 0 0 1.667 81 0.1 0.0
<rowcolor=#000> MLB 통산
(10시즌)
163 94 46 4 1 1221⅓ 2.28 974 10 441 29 488 1.159 122 12.4 20.4

7.2. 타자 기록

파일:MLB 로고.svg 베이브 루스의 역대 MLB 타자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14 BOS 5 10 2 1 0 0 1 0 0 0 4 .200 .200 .300 .500 0.0 0.0
1915 42 103 29 10 1 4 16 20 0 9 23 .315 .376 .576 .952 1.4 1.7
1916 67 152 37 5 3 3 18 16 0 10 23 .272 .322 .419 .741 0.9 1.6
1917 52 142 40 6 3 2 14 14 0 12 18 .325 .385 .472 .857 1.5 2.1
1918 95 382 95 26 11 11 50 61 6 58 58 .300 .411 .555 .966 5.2 4.7
1919 130 543 139 34 12 29 103 113 7 101 58 .322 .456 .657 1.114 9.4 9.1
BOS 통산
(6시즌)
391 1332 342 82 30 49 202 224 13 190 184 .308 .413 .568 .981 18.4 19.2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20 NYY 142 616 172 36 9 54 158 135 14 150 80 .376 .532 .847 1.379 13.1 11.9
1921 152 693 204 44 16 59 177 171 17 145 81 .378 .512 .846 1.359 13.7 12.9
1922 110 496 128 24 8 35 94 96 2 84 80 .315 .434 .672 1.106 6.4 6.4
1923 152 697 205 45 13 41 151 130 17 170 93 .393 .545 .764 1.309 14.7 14.1
1924 151 691 200 39 7 46 143 124 9 142 81 .378 .513 .739 1.252 12.3 11.4
1925 98 426 104 12 2 25 61 67 2 59 68 .290 .393 .543 .936 3.5 3.5
1926 152 652 184 30 5 47 139 153 22 144 76 .372 .516 .737 1.253 11.8 11.4
1927 151 691 192 29 8 60 158 165 7 137 89 .356 .486 .772 1.258 12.9 12.6
1928 154 684 173 29 8 54 163 146 4 137 87 .323 .463 .709 1.172 10.5 10.2
1929 135 587 172 26 6 46 121 154 5 72 60 .345 .430 .697 1.128 7.7 8.1
1930 145 676 186 28 9 49 150 153 10 136 61 .359 .493 .732 1.225 10.5 10.3
1931 145 663 199 31 3 46 149 162 5 128 51 .373 .495 .700 1.195 10.7 10.5
1932 133 589 156 13 5 41 120 137 5 130 62 .341 .489 .661 1.150 8.7 8.5
1933 137 576 138 21 3 34 97 104 4 114 90 .301 .442 .582 1.023 6.7 6.2
1934 125 472 105 17 4 22 78 84 1 104 63 .288 .448 .537 .985 5.2 5.0
NYY 통산
(15시즌)
2084 9199 2518 424 106 659 1959 1978 110 1852 1122 .349 .484 .711 1.195 149.9 142.9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35 BSN 28 92 13 0 0 6 13 12 0 20 24 .181 .359 .431 .789 0.2 0.1
MLB 통산
(22시즌)
2503 10623 2873 506 136 714 2174 2214 123 2062 1330 .342 .474 .690 1.164 167.0 162.2

파란색은 팀 내 역대 1위. 빨간색은 MLB 역대 1위. 참고로 투수 WAR는 제외한 스탯이다.[22]

7.3. 통산 1위 기록

  • 통산 장타율(.690)
  • 통산 OPS(1.164)
  • 시즌 총루타(1921, 457루타)
  • 통산 WAR(팬그래프 179.4, 레퍼런스 182.6)
    • 팬그래프 기준 타자 WAR 167.0/투수 WAR 12.4, 레퍼런스 기준 타자 WAR 162.2/투수 WAR 20.4
  • 시즌 WAR(1923, 팬그래프 14.7, 레퍼런스 14.1)
  • 통산 wOBA(.513)
  • 시즌 wOBA(1920, .598)
  • 통산 wRC+(194)

8. 여담

8.1. 선수 시절 관련

  • 현 시대 MLB 슈퍼스타들에 비하면 루스가 받던 고액 연봉은 오늘날 환율로 환산해도 적은 액수지만[23], 당시에는 그의 실력 못지않게 상식을 초월하는 연봉 인플레였다. 그가 1922년에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받은 연봉은 5만 2천 불이었는데, 바로 전년도 최고 연봉자 타이 콥의 2만 불을 아득히 넘는 액수였다.[24] 극히 단순한 비유로, 2023년 최고 연봉자 맥스 슈어저의 연봉이 무려 4,333만 달러인데 바로 다음 해인 2024년에 1억 1천을 넘기는 연봉자가 갑툭튀하는 것과 다름없다.[25] 이후 루스는 13년이나 최고 연봉자였고 절정 때는 8만 불이라는 연봉을 받으며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가 은퇴한 후 물가는 상승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8만 불을 뛰어넘는 고액 연봉자가[26] 나오는 데까지는 무려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MLB의 연도별 최고 연봉자 목록
  • 미국 ESPN에서 베이브 루스의 기록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내놓았는데, 베이브 루스가 현역으로 뛴다면 13년 계약 시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10억 6천만 달러를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WAR 1당 600만 달러로 쳐서 계산했으며, 최근 다년 계약의 일반적인 현상인 연간 연봉 5% 상승 등을 고려해 산출했다. 이 계산법으로 치면, 메이저리그 통산 660홈런을 친 윌리 메이스는 13년 총 9억 3천 100만 달러, 배리 본즈는 13년 총 9억 1천 600만 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 타이 콥은 은퇴 후 인터뷰에서 '가장 강하게 치는 타자'로 루스를 뽑았다: "그 분야에서 베이브를 이길 자는 없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스윙하면서 정확하게 컨택하는 자는 드물죠. (공을 맞추는) 타이밍이 완벽했어요." 출처
  • 베이브 루스가 기록적인 홈런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추측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라이브볼 도입, 당시의 타격 기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배터 박스 앞에서 무게중심을 최대한 앞으로 당기는 파워 스윙,[27] 놉(knob)을 감싸는 타격을 한 것 등이 지목되고 있다. 베이브 루스가 최초로 놉이 있는 배트를 사용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는데, 배트의 놉은 검의 폼멜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별다른 규칙이 없던 야구 초창기부터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하지만, 루스 시대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놉이 만들어졌고, 루스가 새끼손가락으로 이를 감싸는 그립을 최초로 사용했다.
    이들 추측은 결과적인 분석이고 정설은 아니다. 애초에 베이브 루스가 홈런왕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시점은 데드볼 시기의 말기이고, 전술했듯 놉을 감싸는 그립을 사용한 타자는 루스가 처음이었다. 타이 콥의 타격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데드볼 시대의 타자들은 애초에 배트를 한참 올려 잡았고, 장타 따위는 노리지도 않았다. 라이브볼 시대여서 루스가 유명해졌느냐, 루스가 유명해져서 라이브볼 시대가 열렸느냐에 대한 논란도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
  • 한 대학에서 루스의 신체 능력에 대해 조사했는데, 세분화된 거의 모든 항목에서 500명 중 1등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 흔히 베이브 루스가 게으른 천재로만 알려져 있지만, 이것 또한 위인전 못지않게 편향된 평가다. 그는 축복받은 신체를 가졌지만 그것만 믿고 몇 년 반짝이다가 사라진 선수들과는 비교를 불허하게 꾸준하게 노력했다. 물론 선수 생활 내내 어마어마한 성생활, 폭식, 폭음을 하긴 했지만 그게 선수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선을 넘은 것은 1925년 시즌뿐이었고,[28] 그때부터 PT를 고용해 달리기, 복싱, 핸드볼, 줄넘기, 스프린트, 메디신 볼 등으로 신체를 단련하며 스윙 연습 이외에도 몸 관리에 신경을 썼다.[29] 다시 하락세가 오던 34세부터는 그해에 결혼한 두 번째 부인 클레어가 철저하게 그의 식단과 운동 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잘 따른 루스는 마지막으로 두 번의 몬스터 시즌을 기록한다. 그 결과, 에이징 커브가 오는 30대의 나이부터 40 가까이 되는 시기까지 절정의 기량을 유지했고, 그의 전설적인 60홈런 시즌도 이때 있었다. 그의 양키스 시절 149.9라는 괴물 같은 fWAR 누적의 절반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고, 30대에 fWAR 10 이상의 시즌을 다섯 번이나 기록한 것도 그가 유일할 뿐만 아니라 그에 범접하는 기록조차도 없다. 그를 야구의 신이라고 부르게 해준, 무려 20여 년을 아우르는 압도적인 누적과 비율 스탯은 결코 타고난 재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정말 게으른 천재였다면 적어도 30세 시즌에 퍼지면서 꾸준히 하락세였을 것이고, 결코 범접할 수 없는 fWAR 180.8의 전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양키 스타디움이 좌타자이던 그를 위해 우측 펜스도 짧게 지어주고, 우익수 쪽에 차양막도 쳐줬다. 하지만 원정 경기에서 우익수 쪽에 햇빛이 비치면, 좌익수였던 밥 뮤젤이랑 자리를 바꿔서 루스가 좌익수로 뛰었다.
  • 안타를 치고 1루를 향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비둘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비둘기 걸음'이라고 불렸다.
    파일:f0rbiL8.gif파일:Xno6is4.gif

    뒤뚱뒤뚱 쫄래쫄래 월터 존슨과의 맞대결
  • 거구의 뚱뚱한 몸으로 달리기가 많이 느렸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투수를 자극하기 위한 도루 시도를 많이 해서 통산 123도루를 달성했다. 그러나 도루자가 117개로, 50%가 겨우 넘는, 51.3%라는 낮은 도루 성공률이다. 참고로 도루 성공률은 대부분의 전문가가 최소 65~80%는 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낮은 기준으로 말하는 경우도 63~64%다. 그 이하는 도루 시도를 안 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1923년에는 아메리칸 리그 도루 실패 2위를 한 적도 있다.
    참고로 1926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끝내기 도루 실패를 당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상대 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월드 시리즈 최종 7차전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에서 도루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것이어서 더욱 진기록으로 남았다. 무모함을 논하기 전에 그의 엄청난 배짱을 보여주는 일화. 경기 후 그의 해명은 "그 누구도 설마 그 상황에서 주자가 뛸 거라고 예상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도했다." 맞는 말이긴 하나 그것을 월드 시리즈 최종 7차전 9회말 2아웃에서 실행한 강심장의 사례는 그가 유일하다.
  • 이 글 내내 루스가 뚱뚱하다고 쓰여 있고, 또 잘 알려진 루스의 인상도 뚱뚱한 모습이라 오해하기 쉬운데, 커리어 중반까지의 루스는 그다지 뚱뚱하지 않았다. 188cm의 큰 키에 215파운드(100kg이 조금 안 되는) 몸무게를 유지했으며, 심지어 투수로 뛰었던 선수 생활 초반에는 180파운드(81kg)였다. 양키스로 이적하던 해의 몸무게가 100kg이었고, 자기 관리를 망치면서 본격적으로 뚱뚱해지는 1925년 이전까지 이 몸무게를 유지했다. 뚱뚱하지 않았던 시절의 루스는 주력도 메이저리그 평균 이상이었고, 때문에 수비 범위도 넓은 외야수였다. 루스는 뛰어난 투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깨도 좋아서 좋은 수비수였다. 하지만 루스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관리였는데, 비시즌 기간에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식욕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비시즌 기간에는 250파운드(약 110kg)까지도 불어났고, 커리어 후반에는 시즌 중에도 저 정도 몸무게를 유지했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배불뚝이 루스가 만들어졌다.
  • EqA 등 시대를 고려해서 절대적 기량을 계산하는 스탯들이 존재하는데, 이걸 통해서 베이브 루스를 그 모양 그대로 현대 야구에 던져 놓아도 주전 외야수로 활약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은 나온다. 70년의 세월이 흐르고, 선수 관리와 영양 관리, 훈련법, 투수 이론과 변화구의 개발과 구속의 증가, 타격 이론과 코칭 이론 등의 발전이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성적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상대적 시대 보정을 하면 단순한 1위다. 클래식 스탯이건, 세이버 스탯이건 무슨 기준을 가져다 들이밀어도 베이브 루스 보다 위에 위치하는 선수가 없다. 그 뒤를 잇는 것이 테드 윌리엄스루 게릭, #배리 본즈, 로저스 혼스비 정도.
  • 무식할 정도로 무거운 방망이를 썼다. 600홈런을 달성한 짐 토미 조차도 이런 걸 어떻게 시즌 내내 쓰냐고 할 정도. 그 무게는 무려 1.2kg. 루이빌슬러거 제품으로 21세기 현대 야구 선수들은 보통 900그램 전후를 쓴다. 장타자들이 900그램을 넘는 것을 쓰고, 교타자들은 800그램대를 쓰는 편.
    [kakaotv(389607209)]

    이는 이런 배트를 다룰 수 있었던 루스의 파워가 뛰어난 것도 있지만, 야구의 발전과 목재 가공 기술의 발달과도 연관이 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기계로 배트를 깎는 것이 아니라 잉여 중량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며, 건조 및 가공 기술도 발달하지 않아 가볍고 단단한 배트를 만드는 것이 힘들어 공에 맞아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려면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저 당시에는 평균 구속이 느렸기에 무거운 배트로 하는 느릿느릿한 스윙으로도 투구에 대응이 가능했지만 지금 선수들이 던지는 강속구는 800그램대의 가벼운 배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대처할 수 없는 등의 이유로, 점점 배트의 무게는 가벼워지는 추세. 멀리 갈 것 없이 한 20년 전으로만 올라가도 거포들은 1㎏를 썼다.
  •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수비에 나갈 때 모자 안에 양배추를 넣고 다녔다. KBS2 스펀지 2004년 7월 10일자에서 방영하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해당 사연은 지식의 별 4개 반을 받았다. 이를 본 야구선수 박명환의 아내가 남편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그렇게 박명환이 모자에 양배추를 넣고 다니다가 모자가 벗겨지면서 적발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박배추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8.1.1. 예고 홈런(Called Shot)

파일:external/lh3.ggpht.com/157773822_b2ec05000a.jpg
일명 '예고 홈런(Called Shot)'이라는 퍼포먼스가 유명하다. 1932년 10월 1일,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 4 대 4로 동점인 상황에서, 상대 투수 찰리 루트를 상대로 홈런을 친다. 당시 상황은 투 스트라이크에서 배트로 센터 펜스를 가리킨 후 컵스 포수 개비 하트넷에게 "홈런을 날리는 데는 공 하나면 충분하다"라는 말을 한 후 149m 홈런을 쳤다고 한다. 이때 홈런을 맞은 투수는 다음날 선발로 나와 루스를 빈볼로 맞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며, 당시 정황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가장 신빙성 있는 말은, 경기 전에 그런 내용의 장담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배트로 센터 펜스를 가리키거나 한 적은 없었다는 것. 기자가 별 생각 없이 끼워 넣은 일화였다는 설이 대세다. 한편 루스의 뒤에서 타격을 준비 중이던 게릭은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상대 선수가 루스를 약 올리는 말을 해서 홧김에, "네 머리를 날려버리겠다"라는 말과 함께 배트로 상대 선수를 가리킨 것뿐인데, 우연히 타구가 그 선수 뒤쪽으로 날아가 홈런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파일:external/www.thecalledshot.com/shapeimage_2.png
그러던 중 1970년에 발견된 한 필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당 영상은 1932년 10월 1일 경기가 찍힌 유일한 필름으로, 아마추어 영화감독이었던 맷 밀러(Matt Miller)가 3루에서 촬영한 영상인데, 베이브 루스로 보이는 인물이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펜스 뒤를 가리키거나 하지는 않았고, 손으로 무언가를 쿡쿡 찌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 때문에, 예고 홈런 장면이 아니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찌 되었건 병상에 있던 어린 팬과의 만남 후 예고 홈런을 날렸다는 설은 만들어냈다는 의혹이 짙으며, 주변인들은 말이 많았지만, 정작 베이브 루스 본인이 남긴 말이 별로 없었기에 홈런왕의 신화성을 부각시켜 주는 장치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베이브 루스는 실제로도 어린 팬들에게 친절했었던 만큼,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야구계의 전설적인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여담으로 저 시즌에 사용한 방망이는 대한민국에 있다. 소장품 수집으로 유명한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낙찰받은 것.

8.1.2. 베이브 루스와 삼진

후배 테드 윌리엄스가 "베이브 루스도 홈런보다 삼진을 훨씬 많이 당했으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발언을 했던 것, 베이브 루스 자신이 했던 "스트라이크를 당할수록 나는 홈런에 가까워진다"라는 발언, 그리고 기타 야구인들의 발언 때문에 그가 삼진을 무척 많이 당한 단순한 공갈포였던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유명 영화배우 박중훈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베이브 루스가 홈런을 많이 쳤지만 그 3배에 가까운 삼진을 당했다고 하더라. 아마 그는 (삼진이라는) 그런 실패에서 성공을 배운 것 같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그런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선 박중훈의 말 자체는 테드의 발언 의도와 정확히 부합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루스는 700개가 넘는 홈런을 치는 동안 삼진은 그 2배도 안 되는 1,330개 당했으므로 세 배에 가까운 삼진 수라는 말은 틀렸다고 볼 수는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파고들면, 당대의 삼진율이 전체 타석 대비 6.9%인데 반해 루스는 12.5%였으므로 루스가 객관적으로 삼진을 많이 당한 것은 맞다. 당대에는 삼진을 수치스럽게 여겨서, 같은 아웃을 당하더라도 삼진보다는 차라리 택도 없는 공일지라도 건드리기라도 해서 땅볼 아웃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에 저렇게 삼진율이 낮았던 것이다. 리그 평균의 두배 가까운 양의 삼진을 기록했으니, 루스 본인을 포함한 당대 사람들에게 루스는 전체 삼진율이 20%를 넘어가는 요즘 시대의 시각으로 볼 때 피삼진율 30%를 넘어가는 조이 갈로 그 이상으로 삼진을 많이 당하는 이미지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홈런에 비해 삼진을 거의 두 배 가까이 많이 당했으므로 홈런에 비해 삼진이 훨씬 많았던 것 자체도 사실이고, 이에 더해 다소 비대한 체격에서 나오는 헛스윙 장면들도 이에 기여했다.

그러나 문제는 삼진이 많았다는 사실 자체에서 파생되는 공갈포 이미지다. 베이브 루스는 역대 홈런 3위-타점 2위-장타율 1위를 마크하고 있는 MLB 역대 최고의 거포지만, 이와 동시에 수많은 데드볼 시대의 레전드들을 제치고 통산 타율 10위를 기록한 정교한 타자였으며 여기에 통산 볼넷 3위을 기록하면서 통산 출루율 2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루스가 삼진으로 당한 아웃 카운트들을 데드볼 시대의 다른 타자들은 땅볼 아웃으로 당했으니, 겉으로 보이는 삼진 숫자만 적었을 뿐 결국 생산성 자체로는 루스를 이기지 못했던 것. 즉, 루스는 비율 스탯으로 테드 윌리엄스, 누적 스탯으로 행크 애런과 모두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대 최고의 완성형 타자로, '실패를 감수하고 도전하라'는 격언의 예시로는 심히 부적절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8.2. 개인사 관련

  •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한 인물들 중 자신의 과거에 대한 큰 트라우마나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도 많지만 루스는 성공하고 나서도 가난했던 유년기를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을 성장시킨 곳이라며 성모 마리아 직업학교에 깊은 애착을 가졌고 금전적으로 많이 지원해줬다. 양키스에 있을 때 모교에 불이 났다는 얘기를 듣자 자신의 인기를 십분 활용해 재건을 위한 모금을 했다고도 한다. 특히 그를 지도했던 머사이어스 신부를 매우 존경해서, 1926년에는 신부에게 5천 불짜리 캐딜락을 사줬고[30] 게다가 그 차가 사고로 파손되자 한 대를 새로 더 사줬다고 한다.[31]
  • 베이브는 어릴 적에 자신이 힘든 소년기를 보낸 만큼 아이들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선수가 된 이후에도, 그만둔 이후에도 종종 아이들을 찾아서 야구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아이들을 돕는 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관심을 쏟은 만큼,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다.[32] 한창 방탕한 생활을 보내던 시절에, 시즌이 끝나고 집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이때의 손님들 중 훗날 뉴욕 시 의원으로 당선되는 사람이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무렵에 대뜸 그는, "자네(루스)는 길거리에서 흙투성이 얼굴을 한 아이들이 자네를 신으로 여긴다는 걸 아는가?"라고 질문을 했다. 루스가 할 말을 잃자, "그런 자네가 이런 생활을 보내야 되겠는가!"라고 꾸짖었고, 생활 습관을 고쳤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또는 루스가 한참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야구에 처음 입문하게 해주었던 머사이어스 보틀리어 신부가 찾아와서 위의 시 의원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며 꾸짖었고, 그 후에 루스는 생활 습관을 고쳤다는 내용의 에피소드를 담은 어린이용 위인전도 있다. 또한 루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유해가 운구된 양키 스타디움에는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홈런왕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그런데 그중 절반이 소년들이었다. 하여튼 아이들을 어지간히도 사랑했는지, 심지어 그의 무덤에조차 어린아이를 감싸고 있는 예수의 부조상이 루스 본인의 묘비보다 더 크게 새겨져 있다.
    파일:external/s3-us-west-2.amazonaws.com/919_132640785092.jpg
  • 베이브 루스는 어린이용 위인전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데, 그의 전기는 어린이용 위인전답게 불량한 삶을 살던 베이브가 정신을 차리고 매우 열심히 살아서 인품과 실력이 모두 훌륭한 위대한 야구선수가 되었다고 나와 있다. 실제로는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무절제한 음주, 식습관, 성생활 등으로 세간에서 말이 많았다.[33] 문란한 생활로 인해 첫 부인 헬렌 우드포드(Helen Woodford)와는 이혼했고,[34] 두 번째 부인 클레어 메릿 호지슨(Claire Merritt Hodgson)과는 죽을 때까지 잘 살았고 그녀의 딸 줄리아도 결혼할 때 입양했다. 위키백과 영문판에 의하면 클레어는 당시 양키스 감독이었던 밀러 허긴스와 함께 루스를 엄청나게 챙겨줬다고 한다.
  • 야구계의 전설이다 보니, 1992년,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베이브》가 제작되었다.
    파일:external/36442f51a62b6e093f274dc090516c8397b66e590dc1f2ea3d593dbaad308499.jpg

    러브 스토리》로 알려진 아서 힐러가 감독했고, 주연은 실제 베이브 루스와 닮은 뚱뚱한 외모로 유명한 배우 존 굿맨.[35] 다만 구글에서 'babe movie' 키워드로 검색하면 새끼 돼지가 나오는 동명의 영화가 더 많이 걸린다. 베이브 루스의 전기 영화는 《The Babe》로 돼지 영화와는 제목이 다르다. 당연히 the를 넣어서 검색하면 제대로 된 검색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1,200만 달러라는 저렴한 제작비로 만들어졌음에도, 전 세계 흥행 수익은 1,700만 달러를 겨우 넘겨 흥행은 실패했다.

8.2.1. 여성 관련

당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야구선수 답게 여성 편력도 대단했는데, 어찌 보면 20세기 초반 그 시대의 슈퍼 스타이자 엘리트 운동선수에 걸맞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도 있다. 루스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남겼는데, 몇 가지 소개하자면,
  • 뉴욕 양키스에서 루스가 시카고에서 무얼 하는지 보려고 사람을 몰래 보내기도 했는데, 돌아와서는 루스는 여섯 명의 여자와 함께 있었다 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 핑 보디는 투어 중 루스의 룸메이트가 아니라며 "나는 그의 캐리어와 같은 방을 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호텔에 캐리어만 놓고는 밤새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
  • 팀 동료들이 말하기를, 그의 야구 선수 생활동안 "친해질" 여성을 찾지 못한 날은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그는 야구만큼이나 여성을 좋아했고, 필요할 땐 매춘도 자주 했으며, 또 매춘부가 아니더라도 여성들은 선수 생활 내내 끊임없이 루스에게 달려들었다. 이는 팀 동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는데, 그곳엔 언제나 루스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여성이 있었고, 그녀들은 기꺼이 백업 선수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루스는 시가를 사랑했는데, 본인의 말에 따르면 '얼굴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시가를 피우곤 했고, 가장 많이 필 때는 큐반 시가를 하루에 20개비도 넘게 피기도 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가를 피우는 경우도 많았는데, 일례로 한번은 래리 가드너라는 팀 동료가 방에 들어갔을 때 루스는 시가를 피우며 땅콩을 먹고 있었고, 그 밑에서 어떤 여자가 그를 애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 베이브 루스는 4B에 특화되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Baseball(야구), Booze(술), Buffets(뷔페)[36] 그리고 Bimbos(여자)였다. 후에 무절제한 생활이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자 팀 공동 구단주 틸링해스트 '캡' 휴스턴이 생활 방식 관리를 요청했고 루스는 '술은 줄이고 일찍 잠자리에 들겠다. 하지만 당신 때문이든, 5만 달러든, 25만 달러든, 절대 여자를 포기하진 않을거다. 그들은 너무 재밌거든.' 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후 루스는 구단이 내민 음주 절제와 시즌 중 새벽 1시 이후로 깨어있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계약 부록에 서명하기도 했다.
  • 특이 사항으로 루스는 어떤 여자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키 큰 여자, 작은 여자, 뚱뚱한 여자, 마른 여자, 아주 예쁜 여자, 아주 못생긴 여자 등 그 어떤 여자라도 마다하지 않고 잠자리를 가졌고, 오직 여자라는 하나에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
  • 루스의 두 번째 아내가 되는 전직 코러스 걸 클레어 호지슨 역시 첫 번째 아내였던 헬렌이 있을 때 만나던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이후 안타깝게도 헬렌이 자택 화재로 사망한 후 1929년 클레어와 재혼했고, 생활 방식을 바꿔 부인의 철저한 식단과 자기 관리 시스템을 따라 에이징 커브를 극복했으며,[37] 덧붙여 예전만큼 극단적인 플레이보이 기질을 드러내지는 않게된다. 물론 시즌 투어 중에 가끔 바람을 피우곤 했지만, 집에서는 충실한 남편이였고, 베이브의 다른 여자들에 대해 대체로 알고 있었던 클레어였기에 그 상황이 그들에게는 잘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 1930년대에 양키스에서 루스와 함께 뛰었던 빌리 워버가 밝히기로 템파에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할 무렵, 루스가 현지에서 만난 어떤 여자애와 관계를 맺었고 이후 스프링 캠프가 곧 시작될 테니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진짜 이유는 더 나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였는데, 탬파 근처 템플 테라스 컨트리 클럽에서 "더 나은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섰을 때 그 여자가 눈빛이 불타는 모습으로 다가와 핸드백에서 리볼버를 꺼내 루스를 쐈고, 루스는 간신히 달아났다고 한다. 이후 루스는 그 여자가 좋은 사람이니 체포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tablebordercolor=#bd3039> 파일:보스턴 레드삭스 엠블럼.svg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fff> 1901 1902 1903 1904~1908 1909
윈 켈럼 사이 영 조지 윈터 사이 영 프랭크 아렐라네스
<rowcolor=#ffffff> 1910 1911~1913 1914 1915 1916~1918
에디 시콧 스모키 조 우드 레이 콜린스 어니 쇼어 베이브 루스
<rowcolor=#ffffff> 1919 1920 1921 1922 1923~1924
칼 메이스 앨런 러셀 새드 샘 존스 잭 퀸 하워드 엠키
<rowcolor=#ffffff> 1925 1926 1927 1928 1929
알렉스 퍼거슨 하워드 엠키 슬림 해리스 대니 맥페이덴 레드 러핑
<rowcolor=#ffffff> 1930 1931 1932 1933 1934
대니 맥페이덴 윌시 무어 대니 맥페이덴 아이비 앤드류스 고든 로즈
<rowcolor=#ffffff> 1935~1937 1938 1939~1940 1941 1942
웨스 페럴 짐 배그비 레프티 그로브 잭 윌슨 딕 뉴섬
<rowcolor=#ffffff> 1943 1944 1945 1946~1947 1948~1949
텍스 휴슨 양크 테리 렉스 세실 텍스 휴슨 조 돕슨
<rowcolor=#ffffff> 1950 1951 1952~1954 1955~1956 1957
멜 파넬 빌 라이트 멜 파넬 프랭크 설리반 톰 브루어
<rowcolor=#ffffff> 1958 1959 1960 1961 1962
프랭크 설리반 톰 브루어 톰 스터디반트 빌 몬부켓 돈 슈월
<rowcolor=#ffffff> 1963~1965 1966 1967 1968 1969
빌 몬부켓 얼 윌슨 짐 론보그 딕 엘스워스 짐 론보그
<rowcolor=#ffffff> 1970 1971 1972 1973~1975 1976~1977
게리 피터스 레이 컬프 마티 패틴 루이스 티안트 퍼거슨 젠킨스
<rowcolor=#ffffff> 1978 1979~1983 1984 1985 1986
마이크 토레스 데니스 에커슬리 브루스 허스트 오일 캔 보이드 브루스 허스트
<rowcolor=#ffffff> 1987 1988~1994 1995 1996 1997
밥 스탠리 로저 클레멘스 애런 셀레 로저 클레멘스 톰 고든
<rowcolor=#ffffff> 1998~2004 2005 2006~2007 2008 2009~2010
페드로 마르티네스 데이비드 웰스 커트 실링 마쓰자카 다이스케 조시 베켓
<rowcolor=#ffffff> 2011~2014 2015 2016 2017 2018~2019
존 레스터 클레이 벅홀츠 데이비드 프라이스 릭 포셀로 크리스 세일
<rowcolor=#ffffff> 2020~2022 2023 2024 2025
네이선 이볼디 코리 클루버 브라이언 베요 개럿 크로셰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132448>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뉴욕 양키스
영구결번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파일:빌리 마틴.jpg 파일:데릭 지터.jpg 파일:베이브 루스.jpg 파일:루 게릭.jpg 파일:조 디마지오.jpg 파일:조 토레.jpg 파일:미키 맨틀.jpg 파일:빌 디키&요기 베라.jpg
빌리 마틴 데릭 지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조 토레 미키 맨틀 빌 디키
파일:빌 디키&요기 베라.jpg 파일:로저 매리스.jpg 파일:필 리주토.jpg 파일:서머 먼슨.jpg 파일:화이티 포드.jpg 파일:호르헤 포사다.jpg 파일:폴 오닐.jpg 파일:돈 매팅리.jpg
요기 베라 로저 매리스 필 리주토 서먼 먼슨 화이티 포드 호르헤 포사다 폴 오닐 돈 매팅리
파일:엘스턴 하워드.jpg 파일:케이시 스탱겔 감독.jpg 파일:마리아노 리베라.jpg 파일:재키 로빈슨.jpg 파일:래지 잭슨.jpg 파일:앤디 패팃.jpg 파일:론 기드리.jpg 파일:버니 윌리엄스.jpg
엘스턴 하워드 케이시 스텡겔 마리아노 리베라 재키 로빈슨 레지 잭슨 앤디 페티트 론 기드리 버니 윌리엄스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132448>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뉴욕 양키스
모뉴먼트 파크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밀러 허긴스 루 게릭 제이콥 루퍼트 베이브 루스 에드 배로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조 맥카시 케이시 스텡겔 서먼 먼슨
엘스턴 하워드 로저 매리스 필 리주토 빌리 마틴 레프티 고메즈
화이티 포드 빌 디키 요기 베라 앨리 레이놀즈 돈 매팅리
멜 앨런 밥 셰퍼드 레지 잭슨 론 기드리 레드 러핑
재키 로빈슨 조지 스타인브레너 마리아노 리베라 티노 마르티네스 구스 고시지
폴 오닐 조 토레 버니 윌리엄스 윌리 랜돌프 멜 스토틀마이어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데릭 지터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bordercolor=#bd3039> 파일:보스턴 레드삭스 엠블럼.svg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에디 콜린스 지미 콜린스 조 크로닌 바비 도어 릭 페럴
지미 폭스 레프티 그로브 해리 후퍼 허브 페녹 레드 러핑
베이브 루스 트리스 스피커 테드 윌리엄스 칼 야스트렘스키 톰 요키
사이 영 토니 코니글리아로 돔 디마지오 프랭크 말존 자니 페스키
짐 라이스 스모키 조 우드 진 R. 요키 칼튼 피스크 딕 오코넬
멜 파넬 리코 페트로첼리 딕 래디츠 루이스 티안트 켄 콜먼
드와이트 에반스 래리 가드너 커트 가우디 재키 젠슨 네드 마틴
빌 몬부켓 레지 스미스 밥 스탠리 릭 벌레슨 데이브 페리스
루 고먼 존 해링턴 텍스 휴슨 더피 루이스 짐 론보그
프레드 린 웨이드 보그스 빌 캐리건 데니스 에커슬리 빌리 굿맨
브루스 허스트 벤 몬도어 피트 러널스 헤이우드 설리반 딕 브레시아니
엘리스 카인더 조 모건 제리 레미 조지 스캇 번 스티븐스
딕 윌리엄스 조지 딕비 웨스 페럴 마이크 그린웰 에드워드 F. 케네디 시니어
빌 리 에버렛 스캇 프랭크 설리반 모 본 토미 하퍼
에디 카스코 짐 피어설 존 발렌틴 돈 짐머 마티 배럿
엘리스 버크스 조 돕슨 더치 레너드 조 무니 커트 실링
존 I. 테일러 조 카스티길론 로저 클레멘스 노마 가르시아파라 페드로 마르티네스
아이라 플래그스테드 래리 루치노 제이슨 배리텍 팀 에이크필드 벅 프리먼
알 그린 데릭 로우 마이크 로웰 케빈 유킬리스 빌 디닌
댄 듀켓 리치 겟맨 데이비드 오티즈 매니 라미레즈 더스틴 페드로이아
}}}}}}}}}}}} ||

※ 1936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생기자마자 처음으로 입성한 5명의 선수.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Cobb%20Ty%20Plaque_NBL_0.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Wagner%20Honus%20Plaque_NBL.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Ruth%20Babe%20Plaque_NBL.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Mathewson%20Christy%20Plaque_N_0.png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Johnson%20Walter%20Plaque_NBL_0.png
타이 콥
(98.23%)
호너스 와그너
(95.13%)
베이브 루스
(95.13%)
크리스티 매튜슨
(90.71%)
월터 존슨
(83.63%)
※ 퍼센트는 투표 당시 투표율.
베이브 루스의 주요 수훈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LIFE_LOGO.pn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90년 미국의 시사잡지인 라이프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100인을 선정했다. 순위는 없으며, 만장일치로 선정된 인물은 헨리 포드라이트 형제뿐이다.
제인 애덤스
<사회 개혁가>
무하마드 알리
<권투선수, 인권 운동가>
엘리자베스 아덴
<사업가>
룬 알레지
<방송 경영자>
루이 암스트롱
<재즈 뮤지션>
조지 발란신
<안무가>
존 바딘
<물리학자>
어빙 벌린
<작곡가>
에드워드 버네이스
<홍보 책임자>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가, 지휘자>
말론 브란도
<배우>
베르너 폰 브라운
<로켓 공학자>
데일 카네기
<작가>
월리스 캐러더스
<발명가, 화학자>
윌리스 캐리어
<에어컨 발명가>
레이첼 카슨
<작가, 해양생물학자>
빙 크로스비
<가수, 배우>
클래런스 대로
<변호사>
유진 데브스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자>
로버트 더그래프
<포켓북 창업자>
존 듀이
<철학자>
월트 디즈니
<기업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W. E. B. 듀보이스
<NAACP 설립자>
앨런 덜레스
<CIA 국장>
밥 딜런
<포크 뮤지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물리학자>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시인>
윌리엄 포크너
<소설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교육자>
헨리 포드
<기업가>
존 포드
<영화감독>
베티 프리댄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
밀턴 프리드먼
<경제학자>
조지 갤럽
<여론 분석가>
아마데오 지아니니
<은행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
마사 그레이엄
<댄서, 안무가>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영화감독>
조이스 홀
<사업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가>
올리버 홈스 주니어
<법학자>
존 에드거 후버
<FBI 초대 국장>
로버트 허친스
<교육자>
헬렌 켈러
<인권 운동가>
잭 케루악
<시인, 작가>
빌리 진 킹
<인권 운동가, 테니스 선수>
마틴 루터 킹
<목사, 인권 운동가>
알프레드 킨제이
<성과학자, 생물학자>
빌렘 콜프
<생명과학자>
레이 크록
<맥도날드 창업자>
에드윈 랜드
<과학자, 발명가>
윌리엄 레빗
<부동산 개발업자>
존 L. 루이스
<노동당 지도자>
찰스 린드버그
<비행기 조종사>
레이먼드 로이
<산업 디자이너>
헨리 루스
<편집자>
더글러스 맥아더
<군인, 정치인>
조지 C. 마셜
<군인, 정치인>
루이스 B. 메이어
<영화 제작자>
클레어 매카델
<패션 디자이너>
조지프 매카시
<변호사, 정치인>
프랭크 맥너마라
<신용카드 발명가>
마거릿 미드
<인류학자>
칼 메닝거
<정신과 의사>
찰스 E. 메릴
<주식 중개인>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가>
로버트 모세
<공무원>
윌리엄 멀홀랜드
<토목 기사>
에드워드 머로
<종군기자>
랠프 네이더
<소비자 보호가, 환경보호가>
라인홀드 니부어
<윤리학자>
존 폰 노이만
<물리학자, 수학자>
유진 오닐
<극작가, 작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물리학자>
윌리엄 S. 페일리
<방송 경영자>
잭슨 폴록
<화가>
에밀리 포스트
<소설가, 작가>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재키 로빈슨
<야구선수>
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
<기업가>
리처드 로저스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뮤지컬 작곡가, 작사가>
윌 로저스
<배우, 작가>
엘리너 루스벨트
<FDR의 아내, 사회운동가>
베이브 루스
<야구선수>
조너스 소크
<소아마비 백신 개발자>
마거릿 생어
<사회운동가>
앨프리드 P. 슬론
<사업가, 산업가>
벤자민 스팍
<소아과 의사>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사진작가>
로이 스트라이커
<공무원, 사진작가>
빌 윌슨
<AA 창립자>
앤디 워홀
<화가>
얼 워런
<대법원장>
제임스 듀이 왓슨
<생물학자, 유전학자>
토머스 왓슨 주니어
<사업가, 정치인>
테네시 윌리엄스
<극작가>
월터 윈첼
<신문기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라이트 형제
<최초의 비행기 제작자>
말콤 엑스
<인권 운동가>
출처 }}}}}}}}}

<colkeepall> 파일:E8379242-641F-4E16-9EC4-4DDE7A61F63B.png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2014년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마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 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놀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출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1998년 미국 스포팅뉴스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 목록으로 약 25년 전 기록이기 때문에 21세기 스타들이 없는 것을 감안하며 보아야 한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타이 콥 월터 존슨 행크 애런
6위 7위 8위 9위 10위
루 게릭 크리스티 매튜슨 테드 윌리엄스 로저스 혼스비 스탠 뮤지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조 디마지오 피트 알렉산더 호너스 와그너 사이 영 지미 폭스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자니 벤치 미키 맨틀 조시 깁슨 사첼 페이지 로베르토 클레멘테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1997년 전미 미국 야구 작가 협회 36명이 뽑은 각 포지션(지명타자,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외야수, 좌완투수, 우완투수, 릴리프 피쳐) 중 투표수 1위를 기록한 선수들을 선정했다.
좌완투수 우완투수 릴리프 피쳐 1루수 2루수 유격수
샌디 코팩스 월터 존슨 데니스 에커슬리 루 게릭 로저스 혼스비 호너스 와그너
3루수 지명타자 포수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마이크 슈미트 폴 몰리터 자니 벤치 테드 윌리엄스 윌리 메이스 베이브 루스
}}}}}}}}} ||

파일:ESPN 로고.svg 올타임 MLBRank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22년 2월 ESPN의 패널들이 선정한 역대 메이저 리거 랭킹. 금지 약물 복용자들이 버젓이 선정됐고 기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와는 다른 부분들이 있으므로 참고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타이 콥 테드 윌리엄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루 게릭 미키 맨틀 배리 본즈 월터 존슨 스탠 뮤지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페드로 마르티네즈 호너스 와그너 켄 그리피 주니어 그렉 매덕스 마이크 트라웃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조 디마지오 로저 클레멘스 마이크 슈미트 프랭크 로빈슨 로저스 혼스비
}}}}}}}}} ||
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름 베이브 루스
Babe Ruth
포지션 외야수
득표수 1,158,044 }}}
}}} ||
베이브 루스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보스턴 레드삭스 엠블럼(1912~1923).png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1915~1946).sv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15 1916 1918 1923
1927 1928 193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33 1934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조지 시슬러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베이브 루스
(뉴욕 양키스)
월터 존슨
(워싱턴 세너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해리 헤일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베이브 루스
(뉴욕 양키스)
해리 헤일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1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월리 피프
(뉴욕 양키스)
베이브 루스
(보스턴 레드삭스)

틸리 워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베이브 루스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19년 ~ 192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베이브 루스
(보스턴 레드삭스)
틸리 워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베이브 루스
(보스턴 레드삭스 / 뉴욕 양키스)
켄 윌리엄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3년 ~ 192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켄 윌리엄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베이브 루스
(뉴욕 양키스)
밥 뮤젤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6년 ~ 193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밥 뮤젤
(뉴욕 양키스)
베이브 루스
(뉴욕 양키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3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베이브 루스
(뉴욕 양키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뉴욕 양키스)
지미 폭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19년 ~ 192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바비 비치
(보스턴 레드삭스)
베이브 루스
(보스턴 레드삭스 / 뉴욕 양키스)
켄 윌리엄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켄 윌리엄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베이브 루스
(뉴욕 양키스)
구스 고슬린
(워싱턴 세네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밥 뮤젤
(뉴욕 양키스)
베이브 루스
(뉴욕 양키스)
루 게릭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2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루 게릭
(뉴욕 양키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뉴욕 양키스)
알 시몬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1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스모키 조 우드
(보스턴 레드삭스)
베이브 루스
(보스턴 레드삭스)
에디 시콧
(시카고 화이트삭스)
}}}
베이브 루스의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보유 기록
통산 장타율 1위 0.690
통산 OPS 1위 1.164
최다 홈런왕 시즌 12회
최다 장타율 1위 시즌 13회
단일 시즌 총루타 1위[38] 457루타 }}}
베이브 루스의 역임 직책
[ 펼치기 · 접기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32448>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뉴욕 양키스
역대 주장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903~1905 1906~1907 1908~1909 1910~1912 1913
클락 그리피스 키드 엘버펠드 윌리 킬러 할 체이스 프랭크 찬스
<rowcolor=#fff> 1914~1921 1922 1922~1925 1935~1939 1976~1979
로저 페킨포 베이브 루스 에버렛 스캇 루 게릭 서먼 먼슨
<rowcolor=#fff> 1982~1984 1986~1988 1991~1995 2003~2014 2023~
그렉 네틀스 윌리 랜돌프
론 기드리
돈 매팅리 데릭 지터 애런 저지
출처 : # }}}}}}}}}
베이브 루스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뉴욕 양키스 등번호 3번
결번 베이브 루스
(1929~1934)
조지 셀커크
(1935~1942)
클리프 메피스
(1948)
영구결번
보스턴 브레이브스 등번호 3번
월리 버거
(1932~1934)
베이브 루스
(1935)
토니 커치넬로
(1936~1939)
브루클린 다저스 등번호 35번
로지 라이언
(1933)
베이브 루스
(1938)
구디 로센
(1944~1946)
}}} ||
[1] 투타겸업을 수행하는 동안 가장 많이 소화한 야수 포지션. 1루수 혹은 중견수도 어느 정도 소화했다.[2] 투수 34[3] 물론 타자로서는 종합적으로 올타임 No.1급 타자인 것에 비하면 투수로서는 수많은 훌륭한 투수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라는 차이점은 존재한다. 실제로 루스가 야구의 GOAT라고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도 타자로서 쌓은 압도적인 고점 및 누적 성적과 라이브볼 시대 개막이라는 상징성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루스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투타겸업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당장 투타겸업으로 따지면 확실하게 루스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오타니 쇼헤이가 존재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성공이라는 평이 나올 만큼 투수로서 루스의 활약상도 절대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전성기가 짧고 일찌감치 타자로 전향해서 그렇지, 투수로도 bWAR 20.4/fWAR 12.4를 기록했다.[4] 스테로이드 사용으로 인해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만 배리 본즈보다도 조금 더 낮다.[5] 사실 2020년대의 저지를 넘어서서, 루스는 10년 이상을 배리 본즈 전성기 4년 수준의 타격성적을 유지했다. 또한 타점 개수는 본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차이가 난다.[6] 베이브 루스는 광란의 20년대로 불리는 1920년대 당시 단순히 인기 있는 야구선수를 넘어서 광란의 20년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자 미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의 아이콘 중 하나로 꼽혔다. 이런 평가를 받은 또다른 한 명은 마이클 조던인데, 조던은 잘 알려진 대로 농구의 GOAT이지만, 동시에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시작되던 종전 이후 미국의 최전성기, 즉 1980년대 말-1990년대 미국 사회의 상징 격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농구를 넘어 북미 스포츠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 중에서 농구와 야구가 미국에서 압도적인 스포츠이기도 하고. 이러한 점 때문에 역시나 야구의 GOAT가 교체되기 힘들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7] 예를 들자면, 이 시대의 대표적 전설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로 평가받는 타이 콥이다. 콥은 무려 4할 타자인 데다가 도박약물 복용으로 제명된 피트 로즈를 제외하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안타 2위 기록자이다.[8] 사이 영,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 키드 니콜스, 모데카이 브라운,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며, 모두 현재까지도 최고의 투수라 뽑히는 선수들이다.[9] 물론 그윈 역시 통산 3할 3푼이 넘는 타율에 홈런도 데드볼 시대 타자들보단 훨씬 많이 친 타자였다. 때문에 동시대 선수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기도 했고.[10]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미식축구는 대학 풋볼 위주로 돌아가다가 막 NFL이 생긴 초창기였기 때문에, 미국의 대중들 기준으로 미식축구는 아직 대학 스포츠였고 상대적으로 풋볼이 인기 있던 남부와 달리 북부의 중산층 백인들이 여흥으로 즐기지는 않고 있었다. 농구는 이때만 해도 가난한 유대인들이나 청년들이 하는 공놀이 취급이었다.[11] 만약에 로저 매리스가 뉴욕 양키스 프랜차이즈 스타였다면 별표가 붙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 디마지오나 베이브 루스의 후계자라고 널리 인정받은 미키 맨틀이 61홈런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61홈런을 기록하기 전까지는 무명이었던 로저 매리스가 기록을 경신해서 별표가 붙었을 가능성이 크다.[12] 후술되겠지만 은퇴 이후에는 둘이 자주 골프를 치러 갈 정도로 친해졌다.[13] 몇 년 뒤 뉴욕 시장까지 지낼 정도로 거물이었다.[14] Stout, Glenn (2002). Yankee Century: 100 Years of New York Yankees Baseball. New York: Houghton Mifflin Company. ISBN 978-0-618-08527-9.[15] 구글에 검색해도 그가 몸 관리하는 영상, 사진, 글은 많이 기록되어 있다.[16] 당시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연봉이 7만 5천 달러였고, 당시 1달러는 현 가치로 19달러 정도 된다. 미국은 막 대공황의 불황으로 접어든 상태였다.[17]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루스의 연봉은 매년 폭등했는데, 그것은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 선수 전체의 연봉 상승을 불러왔었다.[18] 출처: 《My Life In Baseball: The True Record》(1961), 214페이지. 타이 콥 & 알 스텀프 공동 저서.[19] 데드볼 시기에 베이브 루스보다도 더 많은 인기와 위상을 가지고 있던 타이 콥은 루스에게 선배면서 대스타였지만, 신인시절 투수에서 타자로 전환하며 혜성처럼 빛나던 후배인 루스를 '반검둥이'라고 놀리며 모욕하는 농담을 하는 등 많이 견제했었고, 덩치에 비해 많이 예민했던 베이브 루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어 타이 콥을 미워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4할 타자를 3시즌이나 하며 100년 넘게 깨지지 않을 역대 최고의 통산 타율을 만든 타이 콥의 타격을 부정할 수는 없었고, 타이 콥의 업적과 능력에 대해선 당연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가네다 마사이치오치아이 히로미츠가 인정하듯이. 저기서 루스가 콥에 대해 재수없지만 잘 친다는 말을 자꾸한 건 루스가 홈런 행진을 이어가서 주목받을 때 타이 콥이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4할도 못 칠 놈이 나댄다"라며 타율로 자꾸 깠기 때문이다. 루스 데뷔 전에 2년 연속 4할을 쳐본 타이 콥은, 심지어 루스의 슬럼프 시즌인 1922년에 감독 겸 선수로 활동하던 베테랑의 나이로 4할을 또 쳤고, 루스를 깔보는 언론 인터뷰를 또 해서 루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루스도 화가 나서 "단타만 치려고 했으면 나도 6할은 쳤을 거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고, 커리어 하이 시즌 중 하나이자 저 다음 해인 1923년에 4할에 도전했지만 3할 9푼대로 실패했다. 물론 둘의 안 좋은 사이는 현역 시절 한정이고 은퇴 뒤에 둘은 자주 만나서 골프 치고 밤늦게까지 같이 술을 마시는 등 매우 친하게 지냈다. 출처 구글에 'ty cobb babe ruth'를 검색하면 둘이 놀러다니는 사진이 꽤 많다. 여담으로 1961년, 타이 콥이 죽기 전에 쓴 자서전 《야구에서의 나의 생애: 진정한 기록(My life in Baseball: The True Record)》에서 16장 "베이브와 나"에서 "솔직히 난 그가 -과학적인 경기에서부터 그의 강력한 강타의 확장까지- 야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평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야구를) 타고났으며 진실한 사람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인생을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많은 아이들을 분발시킨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의 놀라운 능력에 존경을 표한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며 경의를 표했다.[20] 실제로 베이브 루스는 앞서 본 대로 슬럼프가 잦았는데, 이를 가속시킨 사람들이 바로 기자들이었다. 베이브가 한 번 실수하면 "그렇습니다, 양키스는 망했습니다."라는 식으로 깎아내리기에 바빴던 것. 이 때문에 베이브는 한 스포츠 기자를 죽이려 들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21] 영상 사이트에 들어가서 들어보면 알겠지만, 당시 베이브 루스의 목소리 상태는 상당히 거칠었다. 이때 베이브 루스는 후두암으로 사망하기 불과 열 몇 달 전이었던 시기로, 그는 이미 목소리를 잃어 인공 후두를 사용하고 있었다.[22] 투수 WAR을 합산할 시 fWAR 179.4, bWAR 182.6다.[23] 루스가 커리어 하이 연봉인 8만 달러를 받던 1931년 당시 달러를 구매력 기준으로 2024년 환율로 환산하면 대략 160만 달러 정도 된다. 그의 루키 시즌부터 은퇴 시즌까지 가는 동안 대공황이 시작되어 달러의 구매력이 2/3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그가 평생 받은 연봉인 85만 6천 달러를 달러 가치가 가장 높을 때 기준으로 환산해도 3천만 달러에 못 미친다. 당시는 프로 스포츠가 엄청난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시대라 당연히 선수들이 가져가는 몫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24] 자존심 강했던 콥이 루스의 존재를 불편해한 것에 당연히 크게 한몫했을 걸로 추정된다.[25] 아이러니하게도 이 2023년 예시의 바로 다음해인 2024 시즌부터 오타니가 연봉 7,000만 달러를 받게 되었지만 1억을 상회하지는 않고, 이마저도 무려 97%(!)라는 전례없는 디퍼에 관심이 더 쏠렸다.[26] 조 디마지오, 1949년.[27] 브라이스 하퍼 문서의 타격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28] 그의 나이 30, 보통 선수라면 하락세가 진행되는 시기다. 즉, 아무리 축복받은 신체라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던 것.[29] http://baseballstrength.org/babe-ruth/ 이때 운동하는 루스의 모습은 구글 이미지에 많이 남아 있다.[30] 2023년 기준으로 8만 불을 상회하는 금액인데, 당시 1,500불도 안 되던 미국의 평균 연봉을 고려하면 훨씬 더 엄청난 거액이었다. 게다가 1926년 당시에 차라는 것은 미국 전체에서 한 해에 4천 대(!)도 생산하지 않을 정도로 드물고 비싼 물건이었다.출처 그해 최고 연봉자였던 루스의 연봉이 5만 2천 불이었으니, 정말 크게 쏜 셈이다. 오늘날 MLB 고액 연봉자들에게 웬만한 차 한대 정도는 일반인들 기준에선 좀 비싼 한 끼 식사 값에 불과하지만, 요즘으로 비교하면 300만 불을 상회하는 부가티 시론을 사준 셈이다.[31] Montville, Leigh (2006). The Big Bam: The Life and Times of Babe Ruth. New York: Broadway Books. ISBN 978-0-7679-1971-5.[32] 이는 테드 윌리엄스와도 유사하다. 테드도 루스처럼 기자들과의 사이는 드럽게 안 좋았지만, 어린이들만큼은 끔찍이도 사랑했다고 한다.[33] 하지만 상단에 서술되어 있듯이 그의 30대 이후의 기록은 철저한 자기 관리의 산물이다.[34] 이후 화재 사고로 사망했다.[35] 만화 《플린스톤 가족》을 영화화한 작품에서도 주연을 맡아, 연기력뿐만 아니라 외모도 만화 속 주인공 인물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36] 엄청나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뜻.[37] 1929년 당시 34세의 루스의 성적도 약간이나마 떨어지고 있었고,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던 양키스 역시 코니 맥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게 18경기 차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내어주게 된다. 이후 루스는 관리를 통해 몇 년은 더 양키스의 간판이자 최정상급의 선수로 군림한다.[38] 19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