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02 09:36:47

최규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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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808080><colbgcolor=#f5f5f5,#2d2f34> 구성 인사 · 통일주체국민회의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타임라인
1979년 제10대 대통령 선거 최규하 당선 · 긴급조치 9호 해제 · 12.12 군사반란 (하나회 실권 장악)
1980년 1980년 의주 지진 · 5.17 내란 ·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 5.18 민주화운동 ·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 · 김재규 사형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조직 · 최규하 대통령 하야최규하 정부 해산
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최규하 개인과 관련된 문서는 틀:최규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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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808080> 제4공화국
최규하 정부
崔圭夏 政府 | Choi Kyu-hah Government
파일:최규하 취임식 사진.png
▲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취임 선서
1979년 12월 6일 ~ 1980년 8월 16일
<rowcolor=#fff> 출범 이전 출범 이후
박정희 정부 박충훈 권한대행 체제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전두환 정부
대통령 최규하 ,/ 제10대,
국무총리 신현확 ,/ 제13대 (1979.12.13.~1980.5.21.),
박충훈 ,/ 서리 (1980.5.22.~),
여당 없음 (위기관리정부)
연립여당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 로고(1978~1980) 화이트.svg
]]

[[유신정우회|
파일:유신정우회_한글로고.svg
]]
1. 개요2. 역사3. 국무위원4. 여담

1. 개요

당시 국무총리로서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최규하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출범한 정부. 제4공화국, 즉 유신헌법상의 두 번째 정부이지만, 임기 중 개헌을 목표로 했기에 대개는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 사이의 과도정부로 본다. 그러나 후에 12.12 군사반란으로 실질적으로 기능이 정지된다. 즉, 최규하 대통령이 외압 없이 실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기간은 6일 정도였다.[1]

2. 역사

2.1. 출범

파일:0104201711081752145301145012967.jpg
▲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취임 선서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이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을 통해 최규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을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최규하 정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윤보선[2] 등 원로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최규하 전 대통령은 선출 후 이틀 뒤인 12월 8일, 악명 높았던 긴급조치 9호를 해제해 그간 금지됐던 개헌 논의를 허락하며 이에 호응했다. 하지만, 이 순간까지도 누구도 4일 뒤에 있을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2.2. 12.12 군사반란

간선을 통한 정부 출범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전두환, 노태우 등이 주도하는 신군부의 군사반란으로 아직 정식 취임식조차 치르지 못한 최규하 정부는 실질적으로 기능이 정지된다.

2.3. 5.18 민주화운동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에 의해 이미 실권을 빼앗긴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이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막지 못했다.

2.4. 사퇴

12.12 군사반란으로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가 대한민국의 권력을 장악한 후,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뒤 최규하 전 대통령에게 사퇴를 종용하여 최규하 대통령은 사퇴하였고, 동시에 최규하 정부 또한 해산했다.

3. 국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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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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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제4대 대통령 윤보선과 자주 비교된다. 윤보선은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이다 보니 당시 실권자였던 장면 전 총리에게 묻힌다. 그러나, 윤보선은 대통령 시절 민주당 구파의 수장으로 국정에 관여해왔고 정치인이었기에 김창숙, 박정희 등과 모두 선거에서 맞붙은 전적이 있다.

반면에 최규하는 정치인이 아닌 외교관이었다. 김종필의 후임자 추천으로 국무총리 직책에 올랐으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며, 10.26 사건이 없었다면 대통령이 되지 않고 그 직책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을 인물이었다.


[1] 권한대행이 아닌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은 대통령에 선출된 12월 6일부터 가졌기 때문이다.[2] 당시 생존중이던 전직 대통령은 윤보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