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다케다 츠네야스 竹田恒泰 |Tsuneyasu Taked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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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다케다 츠네야스([ruby(竹田恒泰, ruby=たけだつねやす)]) | |
출생 | 1975년 10월 24일 ([age(1975-10-24)]세) | |
도쿄도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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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1px -10px" | 증외고조할아버지 메이지 천황(1852~1912) 친증조할머니 마사코 내친왕(1888~1940) 친할아버지 다케다 쓰네요시(1909~1992) |
진외고조할아버지 산조 사네토미(1837~1891) 진외증조할아버지 산조 킨테루(1882~1945) 친할머니 다케다 미츠코(1915~2013) | ||
아버지 다케다 츠네카즈(1947년생) 어머니 다케다 마사코 여동생 다케다 츠네시(1978년생) | ||
아내(2015년 4월 19일 결혼) 딸(2016년생) | }}}}}} | |
직업 | 정치평론가, 작가, 자영업자 | |
학력 | 게이오기주쿠 유치사(졸업) 게이오기주쿠 보통부(졸업)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졸업)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법률학과 / 학사) | |
직업 | 주식회사 익스체인져스 CEO | |
링크 |
1. 개요
일본의 정치평론가이다. 게이오기주쿠 계열의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케이오주쿠는 일관제 학교라서 초→중→고로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진학하고, 대학도 내부진학이라는 명목으로 따로 입학시험을 보지 않고도[1] 게이오기주쿠대학으로 입학이 가능하다.[2] 법학부 법률학과로 입학해서 학사 졸업했다.오사카 ytv의 '거기까지 말해도 되는 위원회인가?'(そこまで言って委員會)('좋은건가?, 되는건가?'라는 의미의 (いいんかい이인카이)와 위원회의 발음(이인카이)가 같은 것을 이용한 이름)[3], DHC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2. 집안
부계 세계표(世系表)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스코 천황(북조 제3대) (1334~1398) | |
후시미노미야 요시히토 친왕 ([ruby(伏見宮榮仁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よしひとしんのう)]) (후시미 초대, 1351~1416) | ||
후시미노미야 사다후사 친왕(추존 천황, 후시미 제3대) (1372~1456) | ||
고하나조노 천황(제102대) (1419~1471) | 후시미노미야 사다츠네 친왕 ([ruby(伏見宮貞常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つねしんのう)]) (후시미 제4대, 1426~1474) | |
고쓰치미카도 천황(제103대) (1442~1500) | 후시미노미야 쿠니타카 친왕 ([ruby(伏見宮邦高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たかしんのう)]) (후시미 제5대, 1456~1532) | |
고카시와바라 천황(제104대) (1464~1526) | 후시미노미야 사다아츠 친왕 ([ruby(伏見宮貞敦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あつしんのう)]) (후시미 제6대, 1488~1572) | |
고나라 천황(제105대) (1497~1557) | 후시미노미야 쿠니스케 친왕 ([ruby(伏見宮邦輔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すけしんのう)]) (후시미 제7대, 1513~1563) | |
오기마치 천황(제106대) (1517~1593) | 후시미노미야 사다야스 친왕 ([ruby(伏見宮貞康親王, ruby=ふしみのみや さだやすしんのう)]) (후시미 제8대, 1547~1568) | |
사네히토 친왕(추존 천황) (1552~1586) | 후시미노미야 쿠니노부 친왕 ([ruby(伏見宮邦房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のぶしんのう)]) (후시미 제9대, 1566~1622) | |
고요제이 천황(제107대) (1571~1617) | 후시미노미야 사다키요 친왕 ([ruby(伏見宮貞淸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きよしんのう)]) (후시미 제10대, 1596~1654) | |
고미즈노오 천황(제108대) (1596~1680) | 후시미노미야 사다유키 친왕 ([ruby(伏見宮貞致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ゆきしんのう)]) (후시미 제13대, 1632~1694) | |
레이겐 천황(제112대) (1654~1732) | 후시미노미야 쿠니나가 친왕 ([ruby(伏見宮邦永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なが)]) (후시미 제14대, 1676~1726) | |
히가시야마 천황(제113대) (1675~1710) | 후시미노미야 사다타케 친왕 ([ruby(伏見宮貞建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たけしんのう)]) (후시미 제15대, 1701~1754) | |
간인노미야 나오히토 친왕 ([ruby(閑院宮直仁親王, ruby=かんいんのみやなほひとしんのう)], 1704~1753) | 후시미노미야 쿠니요리 친왕 ([ruby(伏見宮邦賴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よりしんのう)]) (후시미 제18대, 1733~1802) | |
간인노미야 스케히토 친왕(추존 천황) (1733~1794) | 후시미노미야 사다요시 친왕 ([ruby(伏見宮貞敬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よししんのう)]) (후시미 제19대, 1776~1841) | |
고카쿠 천황(제119대) (1771~1840) |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 (후시미 제20대, 1802~1872) | |
닌코 천황(제120대) (1800~1846) |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 (기타시라카와 제2대, 1847~1895) | |
고메이 천황(제121대) (1831~1867) | 다케다노미야 츠네히사 왕 ([ruby(竹田宮恒久王, ruby=たけだのみやつねひさおう)]) (다케다 초대, 1882~1919)[4] | |
메이지 천황(제122대) (1852~1912) | 다케다 쓰네요시 (다케다 제2대, 1909~1992) | |
다이쇼 천황(제123대) (1879~1926) | 다케다 츠네카즈 ([ruby(竹田恒和, ruby=たけだつねかず)], 1947년생) | |
쇼와 천황(제124대) (1901~1989) | 다케다 츠네야스[5] (1975년생) | |
상황 아키히토(제125대) (1933년생) | ||
천황 나루히토(제126대) (1960년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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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천황(제124대) (1901~1989) | 다케다 쓰네요시 (1909~1992) | |
상황 아키히토(제125대) (1933년생) | 다케다 츠네카즈 ([ruby(竹田恒和, ruby=たけだつねかず)], 1947년생) | |
천황 나루히토(제126대) (1960년생) | 다케다 츠네야스 (1975년생) | }}}}}}}}} |
본래 황실의 종친이며 다케다노미야의 일원이다. 부계로는 스코 천황의 장남 요시히토 친왕(榮仁親王)의 18대손으로 나루히토의 38촌 황야(皇爺, 조부 향렬의 종족)이며, 모계로는 다케다노미야 츠네히사 왕(恒久王)에게 시집간 메이지 천황의 딸 마사코 내친왕의 증손자이기에 메이지 천황의 외현손자로 모계로는 나루히토에게 삼종제(三從弟)[6]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본인이 구황족 집안 출신임을 엄청 자랑하며 책도 천황제에 대한 책도 출판할 정도로 천황과의 관계를 강조하지만 알고 보면 한국 기준으로도 남남에 가까운 매우 먼 친척이며, 일본은 종법(宗法)이 없고 항렬을 안 따져서 길카리는 거의 남이나 다름없이 지내는 사회에서는 굳이 자신을 천황과 엮는 것을 오히려 더 이상하게 여긴다. 1975년에 태어난 전주 이씨 41세손[7]이 고종 황제의 먼 친척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닌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보는 것과 비슷하다.
다케다노미야 가문은 1947년에 황적이탈을 당한 구황족 가문이다. 할아버지인 다케다 쓰네요시는 악명 높은 731 부대에 부대원으로 복무했다는 이력이 있다. 아버지는 일본올림픽 위원회 회장이었는데 2020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뇌물죄 의혹을 받고 2019년 3월에 관련 직에서 모두 퇴임/사임하는 식으로 대충 처리하였다.
본인 책을 출판할 때는 소개말에 '구황족의 자손'. '메이지 천황의 현손'이라는 선전문구를 집어넣고, 『구황족이 말하는 천황의 일본사(舊皇族が語る天皇の日本史)』에서는 스스로 구황족이라고 자칭했는데, 정확히 따지면 츠네야스는 구황족도, 화족도 아니다.[8] 츠네야스는 결국 조상이 구황족이었던 것을 들먹이며 구황족의 자손이니 하는 식으로 핏줄을 자랑하며 자기 포장술로 이용하고, 극우들은 이러한 모순을 알면서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하니 믿어주는 척을 하는 것일 뿐이다.
3. 행적
극우 인사로 유명하다.[9]2003년 일수회라는 반미 우익 단체에서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한 바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황족에 관한 글이나 천황의 주권을 논하는 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010년대부터 혐한이 유행하자 본격적으로 혐한 속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옛날부터 한국과 단교해야 하고, 어쩌다 한국과 만나더라도 아주 철저하게 무시해야 하며 굳이 얘기 나눌 거면 눈 인사에서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본이 한국을 영구적으로 식민지배하지 못해서 아쉬워한다.# 혐한 서적도 썼다. # 한국에서는 김경주 교수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주제에서 한국을 폭력단이라 비유한 것과#, 한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등의 발언으로 유명하다.
과거 유튜브에서 정치 극단주의 컨텐츠로 채널 구독자가 15만에 달했지만 증오표현 등을 이유로 삭제당한 적이 있다. # 자기는 "출신 민족 차별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것은 언론 테러"라며 채널을 다시 만들었으며 다시 구독자 수 20만을 넘었다. 물론 유튜브에는 예상대로 한국을 모욕하는 내용이 수시로 올라온다.#
유튜브의 본인 채널에서는 역사학 전공도 아닌데도 일본과 한국의 고대사 강의를 하고 있다. 그 출전도 인터넷 혐한 자료를 주워 모은 것에 불과하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弥生時代編⑥~半島に先行した日本の稲作文化~ 한반도보다 일본이 먼저 벼농사를 지었고, 그 당시 발전한 일본이 한반도로 건너가서 철기 문화도 전파하고, 한반도는 일본에 복종하는 꼬붕 국가였다는 식이다.[10] 패전 이후 일본 고대 사학계에서 비판받고 논파된 황국사관을 아직도 주장하는 격이니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들으면 혀를 찰 만한 내용들 뿐이다.
2020년 6월 5일, 나고야 CBC의 고고스마 -GO GO!Smile!-의 월요일 고정패널에서 하차한다고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밝혔다. 얼마 전 아이치현 지사인 오무라 히데아키[11]를 소환하자고 외치는 단체에 주요 회원으로 참여하였는데, 이후 나고야 CBC 측에서 출연을 삼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CBC와 모기업인 주니치신문의 논조를 감안하면 더 이상 극우 인사가 자신들 방송국에 출연하는 걸 못 참아주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4. 비판 및 논란
4.1. 혐한 발언
"한국인은 자국 맥주는 너무 맛이 없어서 인기가 없고 일본 맥주가 맛있어서 잘 팔리고 인기가 있는데, 일본 맥주를 못 마시면 발광한다"는 식의 발언 영상 으로 한국 커뮤니티에서 웃음거리가 된 바 있다. 그런데 이후 2019년 일본 불매 운동에서 일본 맥주가 사실상 제 1타깃이 되면서 일본 맥주 수출이 0원이 되었다. 일본 맥주는 상표에 일본어가 써있어서 알아보기 쉽고, 유럽 맥주나 크래프트 맥주[12]라는 대체제가 워낙 많다. 일본에서는 그 원인을 제공한 놈으로 지목받고 '일본 맥주회사들은 이 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며, SNS상에서 실컷 욕을 먹었고, 한국 인터넷에선 맥주좌라고 불리게 되었다. 다케다는 이에 대해 무반응으로 일관했다.2020년 2월 코로나 19 사태로 한국의 대구광역시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한국의 의료붕괴가 일어났다고 기뻐 날뛰었다. 그리고 햐쿠타 나오키와 함께 "일본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가 인구수 대비로 전세계에서 가장 낮다."[13] "이런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서로 자화자찬을 했다.[14] 그러나 12월 말에 일본의 감염확진자 수는 2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도 3천 명을 넘어서면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인구수 대비 감염 확진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에 대해 다케다는 맥주 수출 사건 때에서도 그랬듯이 마치 코로나 사태는 애당초 아예 없었던 것처럼 언급을 회피했다.
그런데 한 한국 영화[15]를 보고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한 적도 있다. 그리고 밑에 있던 우익 패널에게 배신자 소리 들었다. 영상뉴스 기사.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위안부 동상을 보고 '있지도 않은 것'이라며 위안부 사실을 부정하였고 # 코딱지 형(刑) 집행(執行)# 이라며 조롱하였다. 관련 일본 뉴스 기사 2014년 한국을 방문하여 소녀상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트위터에 올리면서 위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했던 행동과 비슷한 짓을 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
자기가 나온 JTBC 뉴스 영상도 본 모양이다. JTBC 뉴스 영상을 보며주며 한국 지상파 방송에 진출하였다며 영상을 올렸다. #
사실 다케다 츠네야스는 혐한 행보와 별개로 일본 내에서도 구설수에 많이 올랐던 인물인데, 자신의 부친이 일본 올림픽 위원회 회장인데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 도중 본인 트위터에 "메달을 깨무는 행위는 메달에 대한 모욕일 뿐더러 품위도 없다[16]", "메달을 못 땄으면서 즐거웠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된다", "국비로 선수를 육성하는 목적은 선수 개인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올림픽의 기본 정신을 무시하는 망언을 하기도 했을 뿐더러, 2018년에는 2020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의 뇌물 혐의로 부친이 수사를 받게 되자 "닛산의 전 회장인 카를로스 곤의 보복"이라는 등 망언[17]을 거침없이 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부친이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애를 쓴 이유가 고작 한국보다 먼저 아시아에서 하계 올림픽을 두 번 개최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고 쓴 트윗이 발굴되어[18] 여러 사람의 어이를 날려버렸다.출처[19] 이 외에도 연예인들과의 스캔들이 여러 번 있었던 등, 사생활과 언행에서 논란거리를 자주 빚어 구황족의 이미지를 악화시킨 탓에 일본 내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 심지어 열차에서 옆에 앉은 여고생을 몰래 도촬하고 블로그에 당당하게 인증을 했다.
2020년 4월 19일에는 <そこまで言って委員会NP>에 출연해서 올림픽 연기에 대해 "올림픽은 기원전 8세기에 시작했는데 올림픽을 한 이유가 올림픽을 하면 역병이 멈췄기 때문"이라면서, "올림픽을 하면 역병을 막을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그런 만큼 함께 출연한 패널도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하냐"는 식으로 웃어 넘겼다.
위와 같은 행적 때문에 일본 언론에서는 그를 소개할 때 '넷 우익의 아이돌', '넷 우익들에게 유명한' 이란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을 넷 우익과 연관지어 칭하는 걸 달갑지 않아하는 듯 하다. 이건 다른 극우들도 마찬가지인데, 넷 우익은 같은 우익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고 일본 내에서도 평판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봐도 넷 우익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넷 우익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 자신은 인터넷이 아닌 지상파 중심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넷 우익하고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신은 우익이 아니라 중립인데, 세상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우익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당 발언 이후에 언론 등을 통해서 하는 말들은 그냥 넷 우익들의 주장들을 그대로 답습했으니 설득력은 없다.
4.2. 황족 관련 언행
특히 가장 큰 비판거리는 본인이 그렇게 서열이 높은 황족도 아니면서 걸핏하면 황실을 팔아먹는 것으로, 이러한 지적은 일본의 우익들 사이에서도 나올 정도다. 이러한 황실팔이 예로 표현의 부자유전이란 전시회에서 쇼와 천황의 사진이 타는 영상을 전시하자 이것을 두고 "나는 쇼와의 친척이라 깊은 상처를 받았고 다른 황족도 마찬가지며 일반인이면 유족이 소송을 할 건데 황족이니까 소송을 안 거는 걸 악용하는 비겁한 짓"이라고 분노하였다. 한편으로 천황제가 일본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 건지 보여주면서 이렇게 일본 황실을 들먹이는 것이 일본 황실의 평판에 도움이 될지는...#여계 천황을 적극적으로 반대해서 여성 차별자라는 비판도 듣는다. 2019년 11월 5일에 테레비 아사히의 모닝 뉴스(モーニングショー, Morning News)에 나와서 변호사 칸노 토모코(菅野朋子)가 "여계 계승을 부인하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하자, 그는 "여계 계승을 인정하는 것은 천황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일갈하였다. 다만 전통 문화에서 모계 계승이 역성혁명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20] 본인은 여성 차별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반론하기도 하였다.#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결혼 문제가 발생한 이후로는 코무로에게 황실을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등 강하게 비난하면서 이번 결혼 문제를 핑계 삼아 여성 궁가, 여성 / 여계 천황[21]은 결사불가를 외치며 구황족의 전면 복귀만을 강하게 주장했다. 당연하지만 본인은 전술했듯 구황족조차도 아니고 오히려 여계 황족으로 따져야 그나마 촌수가 가까워지는 상황[22]에서 황족 출신 운운하는 마케팅을 적극 팔아먹고 있다 보니 일본 우익들 사이에조차 다케다도 코무로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조롱받고 있다.
5. 저서
책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놓고 국뽕을 들이키는 책이다. 일본인은 자국이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지를 모르다며,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에 자긍심을 갖자는 내용이다. 놀랍게도 그 해에만 3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성질이 나쁜 한국 이야기 (2014)
6. 기타
- 라멘집을 경영하고 있다. 한창 일본 불매운동을 전개할 때는 유튜브에서 한국인은 불매운동은 겉으로만 하는 것이고 요즘도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은 자신이 경영하는 라멘집에 와서 잘도 라멘을 먹는다고 불매운동을 비웃은 적이 있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 주소는 여기다. 타베로그 평점은 3.59점으로 평범한 편이다.
- 아베 신조 총리가 "나라에 공헌한 사람을 초대"한다는 명목으로 국민 세금으로 본인 지지자와 후원자들끼리 파티를 벌린 사실이 밝혀져서 논란이 된 '벚꽃을 보는 모임'에 평소 아베 총리와는 친한 사이인 햐쿠타 나오키와 함께 초대객으로 참석했다.
- 2019년 10월 한 언론 보도에서 아베 총리가 자민당이 야당이던 시절에 한 황족 관계자와 친분을 쌓아서 황실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소리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일본 내에서는 해당 기사에서 나오는 황족 관계자를 이 사람으로 사실상 확정하고 있을 정도로 아베와의 친분을 대놓고 어필하고 다니는 인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베 총리가 건강 문제로 총리를 사임한 이후 자신이 출연하는 방송에서 아베의 근황 같은 걸 종종 전달하기도 했고, 다시 총리에 오른 이후 본인이 출연하는 방송에 게스트로 와달라고 부탁하자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게스트로 올 정도로 서로 상당히 친한 관계는 맞는 것으로 보인다.
[1] 정확히 말하면 내부진학시험이라고 해서 교내에서 면접과 시험을 보기는 한다.[2] 이런 시스템 때문에 일본의 일관제 학교는 유치원 입학부터 한국의 대학입시를 능가하는 정도의 입시경쟁이 벌어지고, 치맛바람이 엄청나다. 즉 그만한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상류층, 부유층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그들만의 리그이다. 일본 정재계의 고위층은 대부분 이런 일관제 시스템을 타고 성장한 족벌들이다.[3] 요미우리 TV는 일본 지상파 방송국들 중에서 가장 강경한 우파 성향의 논조를 보인다.[4] 서장자[5] 보다시피 항렬과 나이의 괴리가 매우 심해서 츠네야스가 나루히토 천황보다 15살이나 어린데 항렬만 2대가 높아 조부뻘이다.[6] 8촌 아우[7] 이회창, 이외수와 같은 항렬이니 이 연령대에서는 꽤나 높은 항렬이지만 찾자면 몇몇 있긴 하다.[8] 츠네야스의 아버지 츠네카즈는 1947년 황적이탈로 집안이 황족을 이탈한 후에 태어났고, 화족은 장자 세습이라 3남인 츠네카즈가 태어날 때 여전히 세습친왕가나 화족이 존재했어도 그가 화족이 될 가능성은 적었다.[9] 사실 구황족들이 황적이탈을 당한 것도 현 일본 황실이 막장이 된 것도 전부 극우파들이 추종하는 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이다 보니 일본 제국 복고주의자들은 구황족들 입장에서는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존재들일 텐데, 그런 이들과 영합한다는 점에서 츠네야스의 황족 마케팅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알 수 있다. 특히 현 황족들 중에서는 그나마 잠정적 극우 의혹이 있는 후미히토조차 단순히 아들 히사히토의 천황 즉위를 위한 지지 기반을 만들 의도로 그들과 접촉하고 있을 뿐, 그 이데올로기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까지는 아니어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다.[10] 이런 주장은 최근에 생긴 것은 아니고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에도 시대에 시작한 국학(國學)이라 해서 중국과 조선의 세계관과 유교에서 탈피해서 고대 일본사의 프로파간다용 역사책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숭상하며 일본은 신(神)의 나라로 일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이고 가장 훌륭한 나라라며 국수주의에 취한 역사관이 있었다.[11] 자민당 출신이며 현재는 무소속이다. 중도우파 성향이긴 하나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도 하였고,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위안부 소녀상 전시 중단 문제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면서 전시 중단 반대 입장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 극우 세력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12] 특히 국내 크래프트 맥주가 2010년대 들어 성장한 것도 있다.[13] 전체 인구수에서 사망자수를 나눈 것으로 10만명 당 일본은 0.3명이라며 자랑했다. 그러나 14억 인구의 중국은 도시를 봉쇄하고 의료붕괴까지 온 참담한 사태를 겪고 8만 5천여 명의 확진자에 5천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했는데도, 인구수로 나누면 0.2명이라서 일본보다 더 낮은 결과가 나온다.[14] 그러나 4월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감염 확진자 수가 1자리 수로 낮아졌는데 반해 일본은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가 한국을 넘어서고 심지어는 21일 자로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은 변사자가 코로나로 죽은 것으로 판명되는 사건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자택이나 노상에서 사망하고 그 후에 코로나 양성으로 판명난 변사자 숫자가 3월 중순에서 22일까지 15명이나 된다. 심지어 12월 쯤에 3차 대유행이 시작되어 한국에서 확진자 수가 천 명 안팎으로 나올 때도, 일본은 나라 전체도 아니고, 도쿄 한 곳에서만 천 명 단위로 확진자가 나오는 등,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니다.[15] 몽타주(영화)[16] 실제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에 메달을 깨무는 행위가 일시 금지된 적은 있는데, 품위 때문이 아니라 은메달을 딴 선수가 시상식에서 메달을 깨무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치아가 나가는 사고가 벌어져서 금지했을 뿐이다. 이런 규제도 당대에만 잠깐 있었을 뿐이니, 모욕이니 품위없는 짓이니 하는 것부터가 올림픽에 대해 쥐뿔도 모른다고 인증하는 멍청한 짓이다.[17] 이 부친은 IOC 위원 및 JOC 회장 자리를 2019년에 임기 완료라는 형식으로 사임하였다.[18] 역설적으로 일본의 상류사회가 얼마나 한국을 신경쓰는지를 자백한 셈이다.[19] 그래도 어머어마한 빚으로 대한민국을 이기긴 이겼다.[20] 동아시아는 모계 성 따르기를 모성(冒姓)이라고 부르며 평민조차 그릇되게 여겼다. 당연히 왕조의 여계 계승은 없었고 여계를 계승이라고 생각하기는 더욱 없었다.[21] 참고로 이쪽은 전통적 우익 측에서는 구황족 출신자를 부마로 삼는다면 허용할 수 있다는 타협안도 나온 상태다. 다만 여계라면 다케다의 말도 아주 틀리지는 않은데, 여계 천황을 인정할 경우 다케다 본인을 포함해 황적이탈된 후손들의 계승권도 전부 인정해줘야 한다.[22] 그의 주장처럼 부계로만 황족을 따지자면 본인은 무려 남북조시대인 1370년대의 스코 천황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현 황족과의 접점이 생기며, 다케다는 스코 천황의 20대손이자 나루히토와는 직계로 38촌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