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9 04:53:06

충무로(은어)


1. 개요2. 역사 및 특징3. 현재

1. 개요

충무로에서 한국 영화 산업이 발달한 사실에서 착안하여, 오늘날 한국 영화판을 일컫는 말. 마찬가지로 지역 이름인 할리우드가 마치 미국 영화판의 동의어인 양 자리잡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충무로의 별명 자체가 한국의 할리우드라고 보면 된다.

1983년 초반에 첫 선을 보인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의 첫 방송 소재가 이 충무로 영화가를 소재를 다루었는데 "한국의 헐리우드, 충무로 영화가"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2. 역사 및 특징

과거 충무로라 불리던 한국 영화계의 전통적인 사업의 형태는 8.15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대부분의 영화제작사와 배급망의 뒤에는 정권과 연계된 조폭들이 숨어있었고, 당시 단관 형태였던 상당수 지방극장들도 조폭들과 연계된 지역유지들의 소유였다. 그래서 연예인 기획사들도 조폭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의 문화진흥정책을 등에 업고 이들이 헐리우드식의 체계적인 영화제작과 배급시스템을 구축하였고, 극장도 몇 년 만에 멀티플렉스 체인망으로 급속도로 재편되면서 조폭들은 2000년대 초반을 마지막으로 영화판에서 모두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런 과도기에 일어난 해프닝이 1996년 애니깽 사태곽정환 서울극장 대표와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가 탈세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특히 곽정환의 구속은 그동안 영화판에서 음성적으로 자행되던 탈세와 자금횡령 등 검은돈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서 이후 모든 극장 관객입장이 전산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금 흐름이 투명해지니 자연히 조폭들이 설자리가 사라지게 되었다.

심형래는 충무로는 감독, 스태프, 기획자, 투자자, 영화배우평론가로 이루어진 이들은 학연, 지연과 같은 인맥으로 똘똘 뭉쳐서 친목질을 벌이는 기득권 세력이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서로 빨고 핥으면서 내놓는 물건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저질 조폭물이요, 피칠갑 잔혹물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유망하되 다만 자기네 이너서클에 들지 못한 뉴비가 영화판에 나타나면, 그가 독자적으로 커서 자기네 이권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일제히 보이콧을 펼쳐서 자라나는 새싹을 짓밟는다고 주장했다.[1]

그러나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영화판이 그렇게 일사불란한 집단적 의지와 행동 방침을 가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웬만큼 성공한 제작자, 감독끼리 사업상 이득이 돼서 친분을 쌓을 수는 있지만, 이권을 지키기 위한 연계는 일어나기 힘든데. 왜냐하면 이권 자체가 나눌 정도로 크지 않아 서로를 배신하는 일이 많기 때문.특히 개인회사와 사업자가 많은 당시 충무로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CJ 같은 대기업이 봐주거나 투자해주는 영화사라면 모를까,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창립된 영화사는 한 작품 망하면 그냥 해체될 확률이 높고, 한작품 망한 다음에 어떻게 버틴다고 쳐도 두 작품 연속으로 망하면 버틸 수가 없다. 대기업의 투자를 받는 영화사도 세 작품 이상 망하거나, 이익을 못 내고 본전치기만 하면 그냥 사업 철수다. 이렇다보니 업계 관계자들도 여유가 없고, 당연히 끈끈한 연대를 기대하기가 힘들다.[2]PD의 말에 의하면 영화판 사람들은 뭔 굶주린 개떼 같다고 말할 정도.

결론적으로 충무로는 한때 한국 영화계의 인물들이 모였던 곳은 맞고, 이곳에서 많은 감독과 극본작가들이 실력과 꿈을 키워나갔지만, 그만큼이나 한국 영화계의 흑역사 또한 함께 가지고 있었던 곳이라 볼 수 있다.

3. 현재

사실 충무로라는 명칭 자체는 한국 영화판의 대명사일 뿐, 정작 영화사 사무실은 충무로에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영화사는 이미 강남이나 상암동 일대로 옮겨간 지 오래이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충무로에 영화사들이 몰려있었으나, 당시 존재한 영화사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하나도 없다.

물론 여전히 충무로에서 영화 연출을 배우고 현역을 뛰는 감독도 많이 있으나, 이들조차 적어도 90년대에 데뷔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현재로서는 충무로 하면 영화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과거로 잊힌 추억이 되었다. 기껏해야 현재 유명해진 감독들이 힘든 시절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정도.

한편 2020년 10월에 CJ ENM MOVIE가 과거 CJ제일제당으로부터 매입한 'CJ 인재원' 건물로 사옥을 이전하여, 그야말로 충무로에 자리잡은 유일한 메이저 영화사가 되었다.
[1] 다만 정작 심형래는 코미디언으로서는 최고의 커리어를 달성했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한국 영화계에 흑역사를 남겼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짓을 많이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직원 폭행, 도박, 임금체불 등으로 문제가 여럿 생겼으며, 오죽하면 나무위키 문서에도 심형래 망언이 따로 제작되어 있을 정도. 다만 해당 문서에 나와 있듯 심형래에 대해서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쓰여진 부분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2] 실제로 꾸준히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감독은 나름 영화 문화가 잘 정착된 한국에서도 드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