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18:10:50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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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규모3. 해외의 우크라이나인
3.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인3.2. 중앙아시아의 우크라이나인3.3. 미국의 우크라이나인3.4. 캐나다의 우크라이나인3.5. 아르헨티나의 우크라이나인3.6. 브라질의 우크라이나인3.7. 폴란드의 우크라이나인3.8. 영국의 우크라이나인3.9. 독일의 우크라이나인3.10. 프랑스의 우크라이나인
4. 우크라이나의 소수 민족
4.1.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4.2. 폴란드계 우크라이나인4.3. 루마니아계 우크라이나인4.4. 불가리아계 우크라이나인4.5. 헝가리계 우크라이나인4.6. 아르메니아계 우크라이나인4.7. 튀르키예계 우크라이나인
5. 언어6. 문화
6.1. 고대 스키타이 문화의 계승자6.2. 음주
7. 종교8. 기원9. 러시아인과의 관계10. 우크라이나식 이름11. 우크라이나인 인물12. 우크라이나인 캐릭터
12.1. 한국 작품12.2. 일본 작품12.3. 미국 작품12.4. 기타 국가 작품
13. 관련 문서14. 외부 링크

1. 개요

파일:DEF4E692-1E07-4D2D-AE4A-72E7B2C68D12.jpg

파일:우크라이나 대학생.jpg

우크라이나인이란 동슬라브계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슬라브 민족을 말한다. 유전적으로는 동슬라브족에 속하고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루신인과 매우 가깝다. 우크라이나라는 말은 근세에 생긴 어휘이며, 중세에는 루테니아인(Ruthenians)이라는 말로 더 자주 칭해졌다.[1]

2. 규모

우크라이나 본국의 4천 2백만 인구 가운데 3천 7백만명이 우크라이나인이며 나머지 인구 대다수는 러시아인 또는 기타 소수 민족이다. 그 외에도 세계 각지에 우크라이나인이 거주하는데 이웃 국가인 러시아에 3백만명 이상[2] 폴란드에 120만명[3], 벨라루스에 22만명, 몰도바에 32만명이 거주하며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코사크 후손이나 스탈린 대숙청 시기에 유배간 사람들을 중심으로 카자흐스탄에 33만명, 우즈베키스탄에 12만명 가까이 거주한다. 캐나다미국에도 백만명 이상의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이 있으나, 이들 대다수는 유대계 우크라이나인이다.[4]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이 다시 캐나다나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는 대부분 러시아계로 분류된다. 우크라이나의 열악한 경제 문제로 인해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로 해외에서 일하거나 해외에 정착한 우크라이나인의 규모가 450~600만명에서 최대 700만 이상에 달한다.

3. 해외의 우크라이나인

3.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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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소련 시절에 러시아인이 진출하는 곳에는 어디에나 우크라이나인도 조금씩 섞여서 같이 진출했으므로 과거 러시아의 판도 내에는 아무리 적은 수라도 우크라이나인도 조금씩 섞여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반도 옆에 있고 우크라이나와 별 관련 없을 것 같은 연해주의 인구 중 약 3%는 우크라이나인이고, 알래스카 옆에 있는 추코트카도 전체 인구의 9%가 우크라이나인이다.

3.2. 중앙아시아의 우크라이나인

중앙아시아에도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존재해 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소련 시절 공식적으로 896,000여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하였으며, 그 외에도 카자흐스탄 내 러시아인 상당수가 코사크나 우크라이나계 조상을 두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우크라이나로 귀향하였지만 아직 26만여 명 상당의 우크라이나인이 카자흐스탄에 거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도 극소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내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전반적으로 소련 해체 이후에 대부분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로 재이주했다.

3.3. 미국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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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캐나다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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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르헨티나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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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브라질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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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폴란드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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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영국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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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독일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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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프랑스의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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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크라이나의 소수 민족


우크라이나에 잔류한 아슈케나지 유대인 공동체

아슈케나짐 유대인의 상당수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지방에 이주해서 마름 역할을 하던 유대인들의 후손들이다. 반유대주의 폭동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유대인 상당수는 미국으로 가고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 와중에 대학살을 당하고, 소련의 개방기에는 대부분 이스라엘로 이민가버리는 바람에 오늘날에는 수가 많이 줄었다. 일본 게임회사인 타이토의 창립자가 이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인 미하일 코건인데, 왜냐하면 그가 일본에서 세운 타이토양행이 오늘날 타이토의 전신이기 때문이다. 코건이 왜 일본에 흘러들어왔냐면 복어계획 때문이었다.

이 외에 주요 소수민족으로는 고대부터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에 거주했었던 우룸인[5]흑해 그리스인(루메이카어라는 별개의 흑해 그리스어 방언 사용), 크림 반도크림 타타르, 서부의 루마니아인, 헝가리인, 부자크불가리아인 등이 있다.
르비우의 로마니(집시)를 소개하는 동영상

4.1.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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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폴란드계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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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루마니아계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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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불가리아계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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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헝가리계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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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아르메니아계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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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튀르키예계 우크라이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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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언어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어가 모어이다. 그러나 하지만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영향에다가 우크라이나인 입장에서 러시아어가 배우기 쉬운 편이고, 구소련권에서 취직하는데도 중요하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구사할줄 아는 경우가 많으며, 우크라이나인 대다수가 이중언어 화자이다.[6]

그래서 민족 정체성은 우크라이나인인데 제1언어는 러시아어인 사람도 꽤 많으며, 구소련권에서 주거하는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어가 모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그렇다. 러시아계이거나 친러 성향이라서 러시아어를 쓰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영향을 오래 받아왔기에 자연스레 그런 것이다. 이는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모국어영어인 사람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 그래도 현지어 사멸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인 벨라루스아일랜드에 비하면 우크라이나는 인구가 훨씬 많은 영향으로 우크라이나어를 상용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러시아어의 위상을 두고 논란과 갈등이 많았고, 특히 유로마이단 이후 러시아어를 지방공용어에서 뺐다가 친러 지역이 반발해서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고, 포로셴코가 대통령이 된 후에 반러 기조가 강화되면서 러시아어 서적과 영화, 방송프로그램의 수입을 금지하고, 탈공산화라며 러시아 제국과 소련시절에 붙여진 지명을 다수 변경했다. 다만 이 정책은 당시에도 출판사들이나 방송사들이 반발하는 등 무리수라는 평이 만만치 않게 있었고,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되면서 러시아어의 위상이 다시 올라가는 듯 했다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지자 러시아어 구사자들이 러시아어를 안쓰고 우크라이나어만을 쓰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기존에 친러 지역에 살던 주민들도 동참하고 있으며, 다수지역에서 러시아어 명칭을 우크라이나어 명칭으로 변경되는 등 러시아어가 자발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6.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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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부터 근대까지의 우크라이나의 지식층들은 폴란드인이나 러시아인으로의 동화가 강요되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억압했고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식인들은 니콜라이 고골의 경우처럼 러시아 문화에 직접 기여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대개 러시아 시골을 떠올리는 소박한 시골 문화나 코사크 같은 유목민 문화이다.

6.1. 고대 스키타이 문화의 계승자

스키타이인의 황금에 대한 편애와 관련하여 러시아 학자 리트빈스키는 황금 숭배가 인도·이란어계 사람들의 세계관 및 종교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고대 인도·이란의 신화세계에서는 ‘왕-불(태양)-황금’이라는 삼자가 불가분의 관계로 여겨졌다고 한다. 스키타이인이 이란계 민족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앞서 기술한 스키타이 건국 신화에서 왕권의 상징이 되는 물건이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기물이었다는 설로 뒷받침된다. 일본과의 관련성에 대해 동양사학자 가토 규조는 중국에서 왕권의 상징은 황금이 아니라 ‘옥’인데 반해, 한반도의 금관총(경상북도 경주시)이나 일본의 후지노키 고분(나라현 이카루가정)에서 수려한 황금(또는 금색)관이 발견된 것은 황금 숭배의 관념이 ‘옥의 나라’인 중국 본토를 거치지 않고 북방 초원에서 우회하여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7]

6.2. 음주

일반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알콜 패턴은 러시아, 벨라루스의 구 소련-동슬라브 국가들과 매우 유사하다. WHO에서부터 기존의 우크라이나 알콜 패턴을 오래된 역사적 전통(old historical traditions)으로 칭할 정도다. 러시아인과 비교했을 때, 우크라이나인의 통계상 알콜 소비는 다소 적지만 기록되지 않는 밀주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다.[8]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인의 음주와 건강에 대한 공식 자료들은 신뢰성이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 우크라이나 통계청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2007년에 발생한 전체 사망 중 5%만이 혈중 알코올이 원인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우크라이나와 유사한 러시아, 혹은 소련 붕괴 이후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신뢰성이 낮다. 부검 결과에 따른 사망 진단 비율이 낮으며, 사망자의 친인척의 요청에 따라 사망진단서에서 음주 관련 사망원인을 삭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도스섬에 살던 히에로니무스는 과음하는 행위를 ‘스키타이인처럼 행동한다’라고 표현했으며, 그러한 그들의 음주 풍습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듯 하다.[9]
볼로디미르의 개종 경위에 대해 『원초 연대기』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겼다.(…)이슬람교를 신앙하는 불가르인이 볼로디미르에게 찾아와 이슬람교를 권하며 말했다. "마호메트는 할례를 하라, 돼지고기를 먹지 마라, 술을 마시지 마라, 대신 사후에는 여자들과 음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볼로디미르는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음행에는 만족했지만 할례, 돼지고기, 음주에 대한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루스인은 술 마시는 것이 낙인데 마시지 못한다면 사는 보람이 없다”고 대답했다.[10]

7. 종교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를 믿고 있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향으로 르비우주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을 믿는 인구가 5~6백만명 정도 된다.

8.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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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인들은 3세기 무렵 슬라브족이 오기 전인 기원 전부터 이곳에 정착해서 번성하던 선주 민족인 스키타이, 사르마티아, 알란인과 같은 다수의 이란계 백인 유목민들이 슬라브족과 하자르인, 불가르인, 쿠만인과 같은 투르크계 유목민족들과 통혼하고 결합하면서 형성된 동슬라브 민족이다.

9. 러시아인과의 관계

오늘날의 학자들은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 관계를 잉글랜드인-스코틀랜드인/아일랜드인[11]으로 비유한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의 관계는 밀접하다. 이건 폴란드-리투아니아 시기부터의 폴란드인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유사한 패턴을 띄지만 이쪽과는 카톨릭-정교회, 지주-농민이라는 기준점이 있기에 러시아인보다는 구분이 비교적 되는 편이다.[12]

소러시아/대러시아 구분이 민족적으로든, 지역적으로든 현재의 우크라이나/러시아 구분과 100%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루테니아도 마찬가지. 당대에 이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든 정부 당국이든 각계각층에서 구분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아예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엄밀히 말해서 민족구분을 안했고 1언어 아니면 종교를 구분한 후 그거에 따라 민족성을 부여하는 식이었다. 수 세기 동안 같이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다보니 무의미해졌고, 정부 측에서도 행정력의 부족과 피조사인들의 불순응으로 인해 철처한 조사는 불가능했다. 때문에 폴란드인, 오스트리아인이 루테니아인으로 분류되거나 러시아인, 독일인이 소러시아인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았고, 아니면 민족 구분 상관없이 그 지역 출신자들이 그냥 루테니아인/소러시아인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차라리 우크라이나 SSR이 있던 소련 시대라면 몰라도 그 이전에 아니면 최소한 19세기 이전으로 한정했을 때 절대다수의 하층민들은 딱히 자신들을 러시아인과 엄격하게 구분하거나 배타적인 단일의 우크라이나인이라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상류층, 엘리트층의 대부분은 (설령 민족적인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의식이 있더라도) 확고한 폴란드-리투아니아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인, 러시아 제국인, 소련인이었다. 최소한 지배 국가 체제에 대한 저항도 민족주의적 동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었다는걸 부정하긴 힘들다.

물론 제정 말기부터 일부 민족주의 성향의 엘리트들은 러시아인, 폴란드인들과의 오래되고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차이점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코사크나, 루테니아 왕국 심지어는 키예프 루스 붕괴 때부터 단절 없이 직접적으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했다.[13][14][15] 다만 이 시기의 민족주의는 현대 민족주의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이들도 하나하나 파고들면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은 '다른 민족'이지만 동시에 '형제 민족'이다고 주장하거나, 당시 유행하던 범슬라브주의적 영향을 받아서 "러시아인이랑 다른 민족은 맞는데 국가적으로는 함께 뭉쳐야한다"는 식의 논리가 상당수다.

러시아인은 전제적이고 집단주의적이며, 우크라이나인은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이라는 둥의 추상적인 대조를 자주 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흔히 농노제가 지목된다. 그러나 당시 우크라이나인들을 농노로 착취하고, 이를 위해서는 폴란드/러시아 중앙정부의 간섭에도 맞서 싸웠던 이들이 코사크 상류층을 포함한 우크라이나인 지배층이었으니 의미가 없는 대조이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나 폴란드-리투아니아 민주정 체제 하의 노예/농노들이 전제정인 페르시아, 러시아보다 확실히 더 나았거나 민족의식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보긴 힘들다.

훗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의 기반이 되는 코사크 신화가 정작 코사크 및 정교회와 가장 관련이 없던 갈리치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시사점이 많다. 때문에 어떤 서술이든 간에 최소한 해당 시기에 대해서는 현대 학자들은 대부분 그 자체로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고, 근대적 민족주의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조작된 역사적 신화로 여기고 있다. 고로 이런 역사적 서술이 중요성은 진위여부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역사적 신화는 세계 공통이며 민족형성의 필수적인 단계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민족국가를 형성했던 시기가 매우 최근이니 훨씬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10. 우크라이나식 이름

  • 성 뒤에 '첸코(енко, enko)'나 '옌코(єнко, ienko)'가 붙는 경우[16]나 '코(ко, ko)'가 붙는 경우[17]
  • 성 뒤에 추크(чук, chuk)나 차크(чак, chak)가 붙는 경우[18]가 있다. 여기서 간략화된 식으로는 성에 유크(юк, iuk), 야크(як, iak)가 붙는 경우[19]도 있다.
  • 성 뒤에 이신(ишин, yshyn)이 붙는 경우[20]

위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우크라이나 국적이 아니더라도 우크라이나인이거나 조상 중에 우크라이나계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러시아인, 폴란드인, 벨라루스인들처럼 비치, 스키로 끝나는 성들도 많다.관련문서.

11. 우크라이나인 인물

주의할 점은 구소련 해체 이전에 죽은 인물들 중에서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명확한 분류 체계가 없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가 민족국가로서 존속했던 기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이를 명확하고 배타적으로 정의하려는 것은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병림픽이니 이 점에 유의하며 읽을 것.

기준을 근대 민족주의적 의미에서의 단일하고 배타적인 우크라이나인 정체성으로 정한다면 소련 해체 이전에 태어나고 죽은 사람들 중에 우크라이나인이라고 논란 없이 분류될 수 있는 쪽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래 항목 대부분을 러시아인, 폴란드인으로 옮겨야하고,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다른 구 소련 국가들 혹은 소련처럼 분열된 국가의 인물들도 죄다 재검토해야 하는 판이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민족정체성이 단일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가 없는 이유가 폴란드, 러시아 강경 민족주의자들 중에 우크라이나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이 많고[21] 사회주의 계열 인물들은 우크라이나든 러시아든 민족주의 자체를 배척했기 때문이다.

12. 우크라이나인 캐릭터

※ 해당국 작품 제외. 대중매체에서 우크라이나인 캐릭터는 주로 러시아인 등 구소련 캐릭터의 이미지와 종종 혼용된다.

배우 또는 성우가 우크라이나인인 경우 ☆표시.

12.1. 한국 작품

12.2. 일본 작품

12.3. 미국 작품

12.4. 기타 국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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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관련 문서

14. 외부 링크

* 우크라이나인의 100가지 다양한 모습들


[1] 다만 우크라이나만 지칭하는게 아니라 동슬라브인들인 벨라루스인들과 러시아인들까지 포함하는 어감이 있다.[2] 다만 러시아인 가정 중에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친척이 없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실제 추산치는 이보다 더 많다.[3] 과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당시 우크라이나계 지식인이나 지주들 상당수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어를 배우며 폴란드인이 되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계 조상을 둔 폴란드인은 더 많다. 정교회 신앙을 유지하는 우크라이나계 폴란드인들은 러시아 제국 시절에 러시아 제국 본토에서 러시아령 폴란드로 이주해오거나 냉전 시절에 소련에서 폴란드 인민 공화국으로 이주해온 이들의 후손이 많다.[4] 캐나다내의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들은 미국내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보다 많은 130만명이다.[5] 크림 칸국이 러시아 제국에 정복된 이후 예카테리나 대제가 아조프해 북부로 이주시킴[6] 단, 갈리치아 등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우크라이나 북서부 지역은 중세 이래로 중동부유럽 세력의 통치만을 받았고 러시아 제국의 통치를 겪은 역사가 없기에 타 지역보다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인구 비율이 낮다.[7] 구로카와 유지,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파주 : 글항아리, 2022. pp.33[8] 우크라이나 농촌 지역에서는 자가 양조 생산 전통이 널리 퍼져 있다.[9] 구로카와 유지,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파주 : 글항아리, 2022. pp.27[10] 구로카와 유지,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파주 : 글항아리, 2022. pp.60-61[11] 이 단어 자체도 이중적인 면모를 내포하고 있는데 러시아 제국/소련 체제에 우호적인 면모를 강조할 때는 스코틀랜드인, 반대의 면모를 강조할 때는 아일랜드인이다.[12] 우크라이나인, 정확히는 우크라이나의 루스인들이 존재했지만 농민들은 민족주의 같은거 없었다. 그리고 귀족, 지식인들은 폴란드인으로 동화되거나 아니면 그게 싫어서 러시아로 갔다. 결국 이러한 현상이 수 세기 동안 지속되다보니 폴란드인-지주귀족, 루스인-농민이라는 계급적 구분이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13] 하리코프 대학교의 교수였던 막시모비치(Mykhailo Maksymovych)의 노력으로 1820년대-1830년대의 문학, 민속 작품들은 훨씬 더 정교해졌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민요를 비교 분석한 다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민요를 비교 분석한 다음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별개의 민족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는 ‘소러시아인’이라는 단어 대신 ‘우크라이나인들’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었다. 그는 ‘소러시아 민요’(1827년) ‘우크라이나 민요’(1834년) ‘우크라이나 민요집’(1849년)을 발간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허승철 편역), 파주 : 문예림, 2015.pp.95-96[14]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코스토마로프는 1861년 러시아 제국의 수도인 페테르부르크에서 쓴 <두 러시아 민족>이라는 논문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민족성의 차이를 묘사했다. 그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인은 개인주의 경향이 강하고, 러시아인은 집단주의를 중요시한다. 우크라이나인은 최소한의 통제질서를 가진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 반면, 러시아인은 한 사상으로 통합된 확고한 집단적 체제를 선호한다. 그는 이어 말하기를 러시아적 요소는 거대하고 창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전체주의적 정신, 통일적 의식, 실용적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 러시아인들은 모든 고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행동에 나서기에 가장 좋은 시간과 환경을 선택한다.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러한 특성을 결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정신은 사회적 제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이끌거나, 모든 방향으로 민족적 노력을 분산시키는 소용돌이 같은 기도를 하게 한다. 두 민족의 이러한 특성에 대한 증거는 역사가 제공해 준다고 코스토마로프는 말하고 있다. 허승철, 『우크라이나 현대사 1914-2010 』, 서울: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pp.47-48[15] 남루스인(우크라이나인)들은 개인주의, 대루스인(러시아인)들은 집단주의가 특징적이다. 정치 부문에서 남루스인들은 자신들의 생존에 필요한 정도만 통제하는 자유로운 사회체제를 스스로 만들어낼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루스인들은 단단한 기초 위에 하나의 정신으로 충만한 집단적 구조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 남루스인들은 연방적 구조를 지향하는데 반해, 대루스인들은 전제제와 강력한 군주제를 지향한다. 대루스인들은 거대하고 창조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전체성과 통합적 의식, 실천적 이성의 지배가 특징이다. 대루스인들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으며 행동이 가장 필요하고 여건이 가장 유리한 시간을 고를 줄 안다. 남루스인들은 이러한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들의 자유분방한 즉흥성은 사회적 체제를 파괴하거너 민족적 노력을 온갖 방향으로 분산시키는 소용돌이로 귀결되었다. 두 민족에 대한 이러한 증언은 역사에 의해 증명되었다. 남루스인들과 폴란드인들의 관계는 매우 다르다. 언어적으로 남루스인은 폴란드인보다는 대루스인에 가깝지만, 민족적 특성에 있어서는 폴란드인에 더 가깝다. 물론 폴란드인들과 남루스인들을 구별하는 큰 간극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폴란드인들과 남루스인들은 반대 방향으로 자라는 나뭇가지와 같다. 한 가지는 가지치기가 되어 ‘귀족’이라는 우아한 열매를 맺었고, 다른 가지는 농민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이것을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폴란드인들은 전제적인데 반해 남루스인들은 민주적 민족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가 두 민족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의 전제제는 매우 민주적이고, 남루스인의 민주제는 매우 전제적이다. 폴란드의 귀족은 계급의 범위 내에 머물려고 하는데 반해, 우크라이나에서 주민들은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이 올라가고 많은 것을 획득하는 개인들을 자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뿌리를 둔 민중에 의해 다시 흡수된다.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투쟁은 다른 민족이 높게 가치를 두는 강력한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사회적 구조를 자주 약화시킨다.『우크라이나의 역사』(허승철 편역) pp.98-99에서 재인용[16] 이를테면 셰우첸코(Шевченко), 호르디옌코(Гордієнко), 테레슈첸코(Терещенко).[17] 시르코(Сірко), 파울리치코(Павличко), 보이코(Бойко).[18] 이를테면 폴리슈추크(Поліщук), 팔라마르추크(Паламарчук), 발란추크(Баланчук), 막심차크(Максимчак)가 있으며, 크림차크(Кримчак)와 같이 민족명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19] 팔라흐뉴크(Палагнюк), 모출랴크(Мочуляк), 로마뉴크(Романюк).[20] 판치신(Панчишин), 코스티신(Костишин), 로마니신(Романишин).[21] 자국혐오들이 일뽕, 중뽕, 미뽕에 빠지는 것처럼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문제는 당시 우크라이나인은 폴란드-리투아니아, 러시아의 일부였기에 훨씬 더 보편적이었다는 점이다. 해당 케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의 존재를 인지를 못하거나 안했기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관심 자체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 민족정체성에 더 부정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22] 굳이 추측해본다면 민족정체성 자체가 국가나 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인공적인' 것으로 봤을 가능성이 크다.[23] 볼가 타타르계 우크라이나인 올리가르히이다. 입지전적한 인물로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는 도망쳤지만 전쟁 발발 당일인 2022년 2월 24일에 우크라이나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24] 국내에서 활동하던 모델로 얼굴은 광고에서 많이들 봤는데 이름은 잘 안 알려진 케이스이다. 현재 한국인과 결혼하여 딸을 하나 두었다. 과거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신도들이 자꾸 전도하겠다고 귀찮게 굴어서 힘들어한 적도 있다 하며, 유대계 우크라이나인 출신이다.[25] 파일:DD29A43D-87F7-4BEA-8F6E-1457825CD56C.jpg 다만 해당 내용은 본인 의사를 직접 표시한 게 아닌 각본대로 말하고 편집 과정을 거친 것이라 한다.[26] 그림 작가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는 팬덤 사이의 루머가 있다. 방사능 공포증이 있다는 점이나, 어릴 적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다는 점 등이 이 루머에 근거를 덧붙이기도 한다.[27]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다.[28] 본명은 아나스타샤 젤렌스카로, 탑에 들어오기 전에 우크라이나였던 곳 출신이라고 한다[29] 출생지는 우크라이나이지만 오스만 제국의 하렘으로 팔려왔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 사람이라 불러도 무방하다.[30] 국적은 러시아지만 출생지는 키이우로 되어 있다.(당시 러시아에 합병된 상태라서 그런 듯)[31] 구소련 시절의 우크라이나 출신이다.[32] 이쪽은 추정. 역시 구소련 출신인데 성씨가 우크라이나계이다.[33] 동독군 소속이지만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이다. 해당 번외면 마지막에서 안타깝게 사망한다.[34]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이 이 게임의 모델[35] 작중 내에서 본인 입으로 우크라이나 이민자 출신이라고 언급했다.[36] 키예프 출신. 탄생은 500년 정도 전. 리투아니아 대공국일 때다.[37] 정체는 먼 미래에서 온 렉스 루터의 후손이지만 자란곳은 우크라이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