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Oswald Ludwig Pohl 오스발트 루트비히 폴 |
출생 | 1892년 6월 30일 |
독일국 프로이센 왕국 뒤스부르크 | |
사망 | 1951년 6월 7일 (향년 58세) |
서독 바이에른주 란츠베르크 형무소 | |
복무 | 슈츠슈타펠 (1933년 ~ 1945년) |
최종계급 |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대장 (상급집단지도자)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clearfix]
1. 개요
오스발트 루트비히 폴 (Oswald Ludwig Pohl) | 왼쪽이 오스발트 폴, 오른쪽은 리하르트 베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사령관이다. |
2. 초기 행적
뒤스부르크에서 대장장이의 5번째 아들로 태어난 폴은 1912년에 학교를 졸업한 후 독일 해군에 입대했다.3. 제1차 세계 대전
킬과 빌헬름스하펜에서 근무하면서 서인도 제도와 동남아시아 식민지까지도 갔던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발트해와 플랑드르에서 종군하다가 1918년 4월에 회계장교가 되어 해군 회계대위 계급으로 패전을 맞이했다.4. 나치당에서의 행적
전후 킬 대학에서 법률과 국학을 공부한 후 재건된 바이마르 공화국 치하의 해군에 들어갔는데 1924년부터 스비네뮌데(현재의 폴란드령)에서 근무하다가 1934년 1월 31일에 해군대령으로 제대했는데, 그 전인 1923년에 나치당에 입당한 후 1926년부터 돌격대 대원이 되었다가 이후 킬 시의 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후인 1933년 5월에 하인리히 힘러와 폴은 서로 만났는데, 힘러는 폴의 경제학 지식을 높이 평가하여 친위대 상급대령의 계급을 주어 그를 친위대로 끌어들였다. 친위대본부 관리국 소속으로 1934년 2월 1일에 관리국 국장으로 취임한 폴은 산하에 친위대 특무부대와 강제수용소가 있었기에 경제담당의 입장에서 이들을 감독했다. 1939년 4월 30일에 폴의 경제부분은 친위대 본부에서 독립하여 <관리 및 경제본부>로서 폴이 그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미 내무성 차관자리에도 올랐던 폴은 내무성 내의 <예산 및 건설본부>장관도 겸임했다. 그리고 친위대의 기업을 이끌며 그 경영에도 관여해 강제수용소의 인력을 동원하기도 했다.5. 제2차 세계 대전
폴과 고위장교들[1] |
6. 전후 재판과 최후
법정에서의 오스발트 폴 |